강남 납치·살인 ‘재력가 부부’, 범행 자금 수천만원 지급···‘청부살인’ 사실상 결론
지난달 말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벌어진 40대 여성 납치·살인 사건은 가상화폐 투자를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로 얽힌 인물들이 반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 저지른 청부살인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 배후로 지목된 유모씨 부부는 주범 이경우(36)로부터 범행을 제안받은 뒤 이를 수락하고 약 7000만원의 범행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유씨 부부가 피해자의 권유로 투자했던 가상자산의 시세가 폭락하자 책임 소재를 두고 갈등을 벌이다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피의자들은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의 남편도 노렸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범행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유씨 부부 중 아내 황모씨에 대해 강도살인교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9일 밝혔다. 남편 유씨는 전날 구속됐다. 유씨 부부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경우가 범행을 계획해 재력가로 알려진 유씨 부부에게 제안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발표와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유씨 부부는 2020년 말 납치·살해 피해자 A씨(48)의 권유로 ‘퓨리에버’라는 가상자산에 1억원가량 투자했다. 이후 ‘다단계’ 방식으로 매수자를 끌어모았다가 물량을 무더기로 팔아넘기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했다. 이에 항의하던 A씨와 이경우가 2021년 3월 유씨 부부가 머무는 강남의 한 호텔에 침입한 뒤 코인을 빼앗아 송사로 얽히기도 했다.
이후 유씨 부부와 A씨는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졌다고 한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녹취록에 따르면 A씨는 숨지기 3개월 전인 지난 1월 퓨리에버 투자자와 통화에서 “(내가 만난 다른 피해자들도) 유씨, (유씨 아내) 황씨한테 너무 질(려서)…걔네를 잡고 싶은 거야. 어쨌든 증거들이 있잖아. 나는 증거가 너무 많아”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또 다른 녹음파일에는 2021년 2월 유씨 부부가 A씨를 두고 “저 x은 내가 직(죽)일 테니까. 직(죽)이는 거 원래 내 전문이다”라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다.
유씨 부부로부터 A씨와 함께 고소당한 이경우는 이들 부부를 찾아가 돈을 받은 뒤 A씨의 소송 정보를 넘기는 등 손을 잡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경우는 지난해 7~8월 친구 황대한(36)에게 A씨와 유씨 부부의 갈등 관계를 설명하며 A씨 부부를 납치해 코인을 빼앗고 유씨 부부에게 현금 세탁을 부탁하자고 제안했다. 이경우로부터 범행 계획을 들은 유씨 부부는 “피해자에게 코인 수십억이 있을 것이다. 일 잘 해보자”라며 범행에 동의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범행 당시 A씨 남편은 구속된 상태여서 화를 면한 것으로 보인다.
유씨 부부는 지난해 9월쯤 이경우에게 범행 자금으로 착수금 2000만원 등 총 7000만원을 제공했다. 이경우는 황대한에게 현금 500만원 등 총 1300여만원을 지급했고, 마취용 주사기·청테이프 등 범행 도구를 준비했다. 황대한은 대포폰을 구입하는 한편 범행을 함께 할 공범 연지호(30) 등을 끌어들였고, A씨 부부를 미행하며 범행 기회를 엿본 것으로 조사됐다.
황대한과 연지호는 지난 3월29일 오후 11시46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아파트 앞에서 귀가하는 A씨를 차량으로 납치했다. 이들은 A씨의 휴대폰 4대, 현금 50만원 등이 든 가방을 빼앗아 경기 용인에서 만난 이경우에게 전달했다. 30일 오전 2시30분쯤 대전시 대청댐 인근에 도착한 이들은 A씨의 코인 계좌 비밀번호를 알아낸 후 계좌를 확인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각 이경우는 용인시 소재 한 호텔에서 유씨와 함께 황대한으로부터 전달받은 비밀번호 등을 이용해 피해자 명의의 코인 계좌를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마저 실패하고 피해자가 소지한 코인이 없다고 판단한 일당은 당초 공모한대로 피해자를 살해한 후 대청댐 부근에 매장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이날 “이경우의 배우자 B씨를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경위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B씨는 남편 이경우에게 범행에 쓰인 마취제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이로써 현재까지 입건된 피의자는 이경우 부부와 황대한·연지호·20대 남성 이씨, 배후로 지목된 유씨 부부이다.
경찰은 이날 이경우·황대한·연지호(강도살인, 사체유기)와 이모씨(강도예비)를 구속 송치했다. 연지호는 취재진과 만나 “(주범인) 이경우와 황대한이 계속 협박하는 바람에 계속 (범행을) 하게 됐다”며 “(범행 대가로) 3억원 조금 넘게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경우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번 사건에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빗속에 모인 시민들···‘윤석열 퇴진·김건희 특검’ 촉구 대규모 집회
- 트럼프에 올라탄 머스크의 ‘우주 질주’…인류에게 약일까 독일까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나도 있다”…‘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 흔드는 경쟁자들
- 제주 제2공항 수천 필지 들여다보니…짙게 드리워진 투기의 그림자
- 말로는 탈북자 위한다며…‘북 가족 송금’은 수사해놓고 왜 나 몰라라
- 경기 안산 6층 상가 건물서 화재…모텔 투숙객 등 52명 구조
- [산업이지] 한국에서 이런 게임이? 지스타에서 읽은 트렌드
- [주간경향이 만난 초선] (10)“이재명 방탄? 민주당은 항상 민생이 최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