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폐사의 역설 … 벌통수 줄었는데 꿀 생산은 되레 늘어

정혁훈 전문기자(moneyjung@mk.co.kr) 2023. 4. 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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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 포커스 ◆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봉평허니농원 전기현 대표가 월동에서 살아남은 벌들을 활용해 아까시 꿀을 본격적으로 채취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벌통 안에 벌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1 우리나라 대표적 딸기 산지인 충남 논산. 이곳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박노두 대표는 올해 딸기 농사가 너무 힘들다고 푸념한다. 그는 "딸기 재배에는 꿀벌을 이용한 수정이 필수"라면서 "예전에는 비닐하우스 한 곳당 벌통 하나면 충분했는데 올해는 두 통을 갖고도 수정이 잘 안 돼 애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꿀벌의 활동성이 과거에 비해 뚜렷하게 약해졌다"고 덧붙였다. 딸기는 저온성 작물이어서 보통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늦봄까지 재배한다.

충남 서산에서 과학딸기농장을 운영하는 선권수 대표도 말을 보탰다. 선 대표는 "요즘은 어렵게 벌통을 구해서 가져다 놓아도 얼마 안 가 상당수가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며 "꿀벌 마릿수가 적고, 살아 있는 벌들도 힘이 없어서인지 수정이 잘 안 돼 기형과가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꿀벌 부족으로 딸기 생산성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는데도 시중 딸기 값이 별로 오르지 않는 걸 보면 경기가 나빠서가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2 경북 경주에서 43년째 양봉업을 하고 있는 신상필 대표. 그는 지난가을 벌통 1500개로 겨울을 맞이했다. 이 정도면 양봉농가들 중에서도 규모가 아주 큰 편에 속한다. 양봉농가들은 꿀벌이 월동을 마치는 2월 초부터 본격적인 꿀 수확에 대비한다. 그런데 올해는 월동에 들어간 벌통 중 무려 1400개에서 벌이 대부분 폐사한 채로 발견됐다. 신 대표는 "평생 양봉을 해오면서 벌을 잘 키우다 보니 양봉협회에서 9년간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며 "이번처럼 월동벌 폐사율이 90%를 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남양주에서 양봉업을 하는 전기현 봉평허니농원 대표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그는 "통상적으로 벌통 200개로 봄을 시작했지만 올해는 벌이 살아남은 통이 90개밖에 되지 않았다"며 "그나마도 벌통당 꿀벌이 4만마리는 있어야 정상적인 꿀 수확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1만5000마리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양봉농가 꿀벌 폐사 피해 많아

꿀벌 폐사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양봉농가들은 작년부터 나타난 꿀벌 폐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수정을 위해 꿀벌을 써야 하는 과일농가들은 건강한 꿀벌 확보에 애먹고 있다. 시중에 꿀벌이 부족해지면서 벌통 하나당 가격이 예년 대비 2배 이상 오르다 보니 비용 부담도 호소하고 있다.

꿀벌 폐사 문제가 표면화한 것은 작년 초부터였다. 갑작스러운 꿀벌 폐사에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2006년 처음 보고된 벌집 군집붕괴현상(CCD)이 한국에서도 발생했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지만 우리 정부는 그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공식 통계만 보면 작년 월동벌 피해를 입은 농가는 4300여 곳으로 전체 양봉농가의 18% 선이다. 벌통 수 기준으로는 40만통으로 전체의 17% 정도다. 올해는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략 전체 벌통 수의 10~20%가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양봉농가 경험치는 이런 평균 숫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크다. 한국양봉협회는 자체 조사에 근거해 전체 양봉농가의 65%가 폐사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봉농가들의 현실적 충격이 더 큰 것은 축산업 중에서도 양봉업이 가장 영세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다른 축산업에 비해 투자비가 적게 드는 데다 가족 노동으로 대응할 수 있어 영세농 비중이 크다. 국내 전체 양봉농가 2만7583가구(2021년 말 기준)의 평균 벌통 보유 숫자는 10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전기현 대표는 "5000만원이면 벌통 100개와 꿀벌을 사서 양봉업을 시작할 수 있다"며 "꿀이 잘 따질 때는 벌통당 연간 100만원까지도 벌 수 있기 때문에 투자 대비 수입이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부부가 함께 전국을 돌아야 하고 365일 거의 쉬지 않고 벌통을 관리해줘야 하기 때문에 아주 고된 노동이 수반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월동한 꿀벌들이 갑자기 폐사하게 되면 양봉농가가 입는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꿀벌응애라는 진드기 방제 실패

2년째 이어지고 있는 꿀벌 폐사 문제에 대해서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을 중심으로 원인 파악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분석으로 정부는 양봉농가들이 꿀벌응애에 대한 방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꿀벌응애는 진드기의 일종으로 꿀벌이나 유충에 기생하면서 체성분을 빨아먹기 때문에 벌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이 꿀벌응애에 대한 방제를 7~8월 적기에 해야 했지만 농가들이 늦은 시기까지 생산 활동에 집중하면서 방제를 제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응애 방제를 위해 같은 약제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꿀벌에 내성이 생긴 데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더 강한 약제를 사용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꿀벌의 면역력이 약화된 측면도 있다고 농업과학원은 분석했다. 농업과학원 관계자는 "농가들이 플루발리네이트라는 익숙한 성분의 약제만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내성이 생긴 응애가 확산됐고, 늦은 시기까지 꿀을 따느라 응애가 이미 확산된 이후에야 뒤늦게 약제를 과다 사용하면서 꿀벌들의 건강이 악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분석에 대해 양봉농가들은 억울해했다. 꿀벌 폐사의 최대 원인을 응애 탓으로 돌리는 건 폐사의 가장 큰 책임을 양봉농가에 전가하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신 대표는 "꿀벌응애는 갑자기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 수십 년 전부터 주의를 기울여 대응하고 있는 진드기"라며 "응애 방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농가들도 폐사 문제를 겪고 있는 만큼, 정부의 설명은 꿀벌 폐사의 원인을 농가들의 관리 실패 탓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봉업 돈 된다…양봉농가 50% 급증

정부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폐사 원인 중 하나는 양봉농가와 벌통 숫자가 급증한 영향으로 부족한 먹이를 두고 꿀벌들 간 경쟁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양봉농가가 빠르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2013년 1만9900가구까지 줄었던 것이 2019년 2만9000가구로 6년 새 46% 증가했다. 벌통 수 기준으로는 2011년 176만개까지 줄었다가 2019년 274만개로 8년 새 56% 증가했다. 양봉업이 귀농자들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각광받은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국토 면적 대비 벌통 밀도가 한국은 ㎢당 21.8개로 중국(0.98개)이나 인도(3.91개), 뉴질랜드(3.01개)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며 "좁은 땅에서 벌통이 과밀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꿀벌 폐사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양봉농가들은 정부의 이런 분석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우선 정부가 제시하는 통계 숫자가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 대표는 "중국이나 뉴질랜드 같은 나라와 전체 국토 대비 벌통 수를 가지고 비교하면 황무지 등 벌이 생존할 수 없는 면적으로 인해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며 "벌이 활동할 수 있는 면적만을 대상으로 벌통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비교해야 하지만, 정부는 그런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벌통 숫자가 늘어난 것을 꿀벌 폐사와 연결 짓는 것 자체도 억지라고 양봉농가들은 주장한다. 만약 꿀벌 먹이를 자연 상태의 꽃에만 의존한다면 정부 주장이 맞을 수 있지만, 양봉(養蜂)은 벌 먹이를 자연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농가에서 먹이를 줘 가면서 벌을 기르는 것이다. 단순히 벌통 숫자가 늘었다고 꿀벌이 먹이 부족으로 죽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전 대표는 "꽃이 적어 꿀벌 먹이가 부족해지면 양봉농가들은 설탕물을 넣어주면서 꿀벌을 보살핀다"며 "따라서 꽃에 비해 꿀벌이 많으면 꿀 수확량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꿀벌이 죽는다는 것은 양봉을 잘 모르고 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11월 이상고온에 꿀벌 생태계 혼란

그러면 최근의 꿀벌 폐사는 무엇 때문일까. 양봉농가들과 전문가 분석을 종합하면 다양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정부 발표대로 내성을 가진 꿀벌응애에 대한 방제가 미흡했던 부분, 양봉농가가 빠른 시기에 급증하면서 꿀벌이 늘어난 영향과 함께 기후변화 여파로 인한 기상이변, 그리고 밀원수(蜜源樹) 부족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월동벌의 갑작스러운 폐사는 기상이변 요인이 가장 크다는 게 양봉농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벌은 꿀 수확이 끝나는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월동한다. 벌통 안에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4개월 정도를 버티는 것이다. 그런데 벌이 월동에 들어간 11~12월에 평소와 다른 이상 난동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는 것이 최대 문제로 지목된다. 작년 초 꿀벌 집단 폐사는 2021년 11~12월 중에 자주 발생한 이상고온 현상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벌들이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지 못하고 육아와 꿀따기 등 활동을 개시하면서 수명이 단축됐다는 것이다. 월동에 들어간 꿀벌은 수명이 150일로 늘어나지만 활동을 시작한 꿀벌은 에너지 소모가 많아져 수명이 40일로 단축된다. 이 같은 이상 난동이 올겨울 꿀벌 폐사에도 가장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날씨 못지않게 양봉에 위협이 되는 건 밀원수 부족 문제다. 우리나라 꿀 생산량의 80% 정도는 아까시(아카시아)나무에서 나오는 아까시 꿀이다. 1970년대 산림녹화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심기기 시작했던 아까시나무가 세월이 흘러 속속 수령이 다 돼 생산성이 떨어졌지만 새로 심기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된다.

여기에 더해 온난화 현상으로 봄철 개화 시기가 전국적으로 비슷해지는 것도 꿀벌에게는 치명타가 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중부지방의 벚꽃 개화 시기가 3월 하순으로 역대급으로 당겨졌다. 이전에는 순차적으로 꽃이 피던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등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꽃피운 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충남 천안에서 양봉업을 하는 장춘호 대표는 "아까시나무 개화 시기는 남부지방에서 시작해 순차적으로 북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경남에서 꿀을 채취한 뒤 충청도나 경기도로 이동했다가 다시 강원도로 가서 꿀을 수확하곤 했다"며 "최근 들어서는 아까시나무 개화가 거의 전국적으로 동시에 이뤄지다 보니 꿀을 딸 수 있는 기간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꿀벌 폐사에도 벌꿀 생산량은 증가

꿀벌 폐사 문제로 양봉농가들이 신음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작년 꿀 생산량은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벌꿀 생산량은 2020년 4643t까지 급감했다가 꾸준히 늘어 작년에는 4만4864t으로 2년 새 거의 10배가 늘었다. 생산액 기준으로도 2020년엔 1391억원까지 줄었다가 작년엔 5069억원으로 역대급으로 증가했다.

이런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진 이유 중 핵심은 아까시 꽃이 피는 작년 5월 날씨가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가뭄이 걱정될 정도로 비가 내리지 않다 보니 일조량이 좋아 아까시 꽃이 풍성하게 열렸고, 꿀벌들의 활동량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작년엔 이미 연초부터 꿀벌 폐사 문제가 심각했다. 양봉협회는 벌통 숫자가 2019년 274만개에서 작년에는 100만개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농업과학원 관계자는 "5월 날씨가 워낙 좋다 보니 꿀벌들의 활동성이 좋아진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벌통 숫자가 줄어들다 보니 벌들 간에 꿀따기 경쟁이 줄어들면서 꿀벌들이 따온 꿀의 양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결과로 볼 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며 "벌꿀 생산량이 단순히 꿀벌 숫자보다는 날씨에 크게 좌우된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최근 수년간 벌통 수가 많이 늘어났던 게 양봉에 부담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산량이 늘었다는 이유로 꿀벌 폐사 문제를 가벼이 볼 사안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허주행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장은 "벌통당 꿀 생산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꿀벌 폐사를 당한 농가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생계가 무너지는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폐사 방지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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