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회사원] "낮잠 자는 거 아니에요 … 매트리스 실험하는 건데요"
사람은 하루 3분의 1가량을 잠자는 데 쓰지만 '꿀잠' 자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면도 과학'이란 말이 심심찮게 쓰이지만 실제로 꿀잠을 위해 신경 쓰며 노력하는 사람은 드물다. 기껏해야 좀 더 비싼 베개, 편하고 좋은 매트리스를 사는 데서 그친다. 더 알아보자니 귀찮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다. 최근 슬립테크(수면과 기술의 합성어)가 '핫'한 것은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푹 자고 싶은데 방법은 모르겠고, 알아보려니 피곤한 개개인을 위해 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기술(IT)로 무장한 슬립테크 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슬립테크 최전선에 있는 '꿀잠 연구원'들을 만났다.
AI로 수면 모니터링의 최전선
요즘 슬립테크 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는 스타트업 '에이슬립'이다. 설립 3년 차인데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수면센터인 미국 스탠퍼드대 수면센터와 수면 진단 표준을 만드는 공동 연구 작업을 올 초 개시했다. 미국 빅테크 구글과 아마존, 세계 1위 화장품 기업 로레알, 국내 LG전자, 아모레퍼시픽 등 유수 기업과도 이미 협력하고 있다.
에이슬립의 핵심 기술은 슬립 모니터링(수면 진단)이다. 슬립 모니터링이 슬립테크의 중심이 되리란 판단으로 2020년 설립 이전부터 불면증·수면무호흡증 환자와 일반 수면자의 호흡 '사운드'를 AI로 딥러닝하고 있다. 현재 축적한 데이터만 세계 최대인 7000여 명에 달한다. 에이슬립은 이렇게 축적한 개개인 수면 정보를 기업에 제공하고 각 산업에서 수익을 얻는 기업 간 거래(B2B) 비즈니스 모델을 내세운다.
KAIST 전기전자공학과에서 강화학습이라는 AI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대우 씨가 에이슬립에 합류한 것은 이러한 슬립 모니터링의 전망이 밝다고 봤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후 구글 자회사 웨이모에서 자율주행차 관련 AI 연구원으로 일한 그는 지난해 1월 에이슬립 인공지능총괄(CAIO)로 합류했다.
그가 하는 일은 AI 분야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연상하게 한다. AI와 관련한 기술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AI 기술 개발 기획과 의사결정 전반을 도맡아야 한다.
"수면 산업은 수면·의료 관련 분야, 애플리케이션 개발, 백엔드(웹 프로그래밍 분야) 개발, AI 연구 등 정말 다양한 기술 분야가 합쳐져 있죠. 에이슬립에 최고기술경영자(CTO)가 있지만 CTO 한 명이 이 모든 분야를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특히 AI 분야는 다른 개발 분야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고요. 필요한 리소스나 일하는 방법이 다르게 진행됩니다."
그중에서도 수면 모니터링 AI 개발이 주 임무다. 다양한 사람의 수면 중 소리를 녹음해 그 소리에 기반한 수면 단계는 어떤지, 수면 중 무호흡증이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AI를 개발한다. 그는 "이런 AI를 만드는 데 필요한 데이터 확보부터 실제 최신 AI 기술을 적용해 모델을 학습시키는 과정, 그리고 학습된 모델을 실제로 사용자에게 서비스로 제공하는 부분까지 전체 과정을 팀원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AI 모델을 학습하려면 수면 데이터가 가장 중요해요. 특히 정확한 정답이 있는 데이터가 필수죠. 수면의 경우 병원에서 수면다원검사를 하면 정확한 정답을 알 수 있는데요. 저희는 이런 수면다원검사 데이터를 확보해 연구합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가정에서의 수면을 정확하게 모니터링하는 일이죠. 현재 수면 모니터링과 수면 개선을 위한 AI 개발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향후 구글 브레인, 딥마인드 같은 그룹처럼 파급력 있는 AI 연구그룹으로 성장할 거라 자신합니다."
전자기기로 진화한 스마트 매트리스
"수년간 기획된 제품이 출시되고 TV에 나올 때 너무 행복하고 보람차요. 주변 지인들이 '덕분에 잠 잘 잤다'는 말을 할 때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코웨이 수면연구팀에서 스마트 매트리스 제품 개발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고 있는 강병일 연구원은 3년 전부터 슬립테크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21년 차 연구원 업력을 가진 베테랑 연구자다. 그는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제품 연구개발자로서 쌓은 경력을 통해 슬립테크 연구를 매트리스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군에 적용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강 연구원은 "예를 들어 공기청정기에 빛 테라피나 향기, 무소음 등 좋은 잠을 자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기술을 적용한다면 이것도 슬립테크 아니겠냐"며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슬립테크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큰 '고충'은 역설적이게도 '잠과의 사투'다. 강 연구원은 "슬립테크가 적용된 스마트 매트리스는 수면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기능을 지니고 있고 이를 평가하고 모니터링하려면 짧게는 수분에서 길게는 수십 분이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잠과의 사투가 펼쳐진다"면서 "연구가 한창일 때는 커피 등 잠을 이겨내기 위한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다"며 웃었다. 그는 "매트리스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매트리스에 누워서 실험할 때가 있는데, 이때 다른 제품 연구원들이 내가 일하다 침대에 누워 쉬고 있다고 오해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강 연구원의 참여로 코웨이가 지난해 말 출시한 비렉스 스마트 매트리스는 스프링 대신 공기 주입 방식의 슬립셀을 적용한 새로운 매트리스다. 제품에 내장된 슬립셀 80개(퀸사이즈 기준)에 주입되는 공기량을 각각 조절해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매트리스 경도를 설정할 수 있다. 원하는 대로 경도를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경도 컨트롤', 신체 압력을 감지·분석해 체압을 효과적으로 분산하는 '자동 체압 분산 시스템', 숙면을 유도하는 '릴랙스 모드' 등 여러 슬립테크가 적용돼 있다.
강 연구원은 "슬립테크 연구원뿐 아니라 모든 연구개발자가 동일하겠지만 연구소가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매 순간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고민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제품에 적용하면 좋을지 생각하곤 한다"며 "우리에게는 평소 잠자리에 드는 것 자체가 '연구의 기본이자 시작'인 셈"이라고 언급했다.
체형에 맞는 매트리스를 넘어선다
이현자 에이스침대공학연구소 책임은 우리나라 1호 '침대 박사'다. 국내 유일한 침대 전문 국제공인시험기관인 에이스침대공학연구소를 이끄는 그는 과학적 침대를 개발하기 위해 매트리스 구조와 디자인, 소재와 기술 등을 연구한다. 침대·침구류 제품이 정식 출시되기 전 내구성·안전성 등에 관한 테스트는 이곳을 거쳐야 한다. 이 책임은 "최적의 수면 환경을 위한 슬립테크 연구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됐다"며 "수면 관련 센서와 제어 기술 또한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체형에 맞는 매트리스를 개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아요. '좋은 잠'의 구성 요소 전반을 연구한다고 보면 돼요. 현재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데 증강현실(AR)과 접목한 혼합현실 체험 시스템을 개발해 고객이 자신의 체형 분석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수면 중 건강 상태를 자동 측정하거나 온습도를 비롯한 주위 환경을 조절해주는 침대, 자체 살균 시스템을 갖춘 침대 개발도 리스트에 있고요."
'하이브리드 Z 스프링' 개발은 이 책임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다. 기존 연결형 스프링과 독립형 스프링의 장점을 모두 합친 이 스프링을 개발하는 데만 꼬박 16년이 걸렸다. 몸이 뜨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맞춰주고 하중 때문에 내려앉는 부분은 견고하게 받쳐주도록 Z 모양을 유지하는 것이 이 스프링의 핵심이다.
이 책임은 "스프링이 하중을 받을 때 정말 Z 모양 상태로 변화하는지 확인하려면 스프링을 감싸고 있는 내장재를 매번 해체해야만 했다"며 "멀쩡한 매트리스를 찢고 내부를 확인하고 새로운 매트리스를 다시 만드는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는 매트리스를 쳐다보며 '해체될 놈'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며 웃음 지었다.
"스프링과 내장재를 통째로 찍어 고정한 신기술 '올인원 공법'의 내구성을 증명하기 위해 일반 매트리스와 신공법 매트리스를 3층 빌딩에서 떨어뜨린 적이 있죠. 스프링판의 내구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공사장에서 지게차를 불러 매트리스를 눌러 밟게 하기도 했고요. 타사 제품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회사 실험실에서 타사 침대에 누워 밤새 자는 정도는 예삿일입니다(웃음)."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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