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의 진화…‘마약 음료’ 제조 피의자 등 2명 영장, 윗선 추적
서울 강남 학원가의 ‘마약 음료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보이스피싱 일당의 조직적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윗선’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9일 중국에 거주하며 마약 음료 제조를 지시한 혐의로 한국 국적 A씨를 쫓고 있다. 경찰은 마약 음료를 제조한 혐의를 받는 B씨로부터 “지인 지시로 음료수에 직접 필로폰을 탔다”는 진술을 확보해 A씨의 신원을 특정했다.
경찰은 A씨의 출입국 기록에서 중국 출국 기록을 확인했고, 빈병의 공급처와 협박전화 발신지가 중국인 사실도 파악했다.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번 사건의 배후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경찰은 중국 당국에 수사 공조를 요청할 방침이다.
이번 범행을 저지른 일당은 중간책과 말단 실행책이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다.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이다.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마약음료를 제조하고 이를 퀵서비스를 이용해 아르바이트생에게 보낸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를 받는 B씨는 7일 강원도 원주에서 검거됐다. B씨는 주택가 건물 일부를 임대한 뒤 PC방으로 위장해 마약 음료를 제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B씨가 제조한 100병 중 18병이 시음행사에서 배포됐고, 피해자가 마신 건 8병으로 파악하고 있다. 100병 중 30여 병을 압수한 경찰은 나머지 병을 찾고 있다. 피해 고등학생 부모에게 협박 전화를 건 번호를 변작하는 중계기를 설치·운영한 혐의(전기통신사업법위반)를 받는 C씨는 같은 날 인천에서 검거됐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강남 대치동 일대에서 학생과 학무보를 상대로 해당 ‘마약 음료’ 시음회를 했다가 붙잡힌 4명은 “마약 음료인 줄 몰랐다” “고액 알바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들은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중 일부가 사용한 사이트는 개인 인증 없이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영세한 업체로, 이전에도 보이스피싱 전달책 모집 창구로 활용됐던 곳으로 파악됐다.
‘고수익 단기 알바’를 미끼로 보이스피싱이나 마약 범죄의 현금 수거책·운반책·관리책을 모집하는 것은 오래된 수법이다. 대금 회수·채권추심업무·대출금 회수·판매대금 전달 등 현금을 수거하는 일뿐 아니라 단순 심부름이나 택배, 사무보조 등 업무로 소개해 구직자들을 유인한다. ‘범행에 이용되는지 몰랐다’고 하더라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유죄가 선고되는 일이 잦은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아르바이트생 4명의 처분과 관련해 “현재는 검거에 집중할 단계로 법리 검토는 수사 최종 단계에서 확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지난 3일 2인1조로 나뉘어 강남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서 “기억력 상승과 집중력 강화에 좋은 음료수를 개발했다”며 학생들과 학에게 마약 음료수를 건넸다. 이날까지 마약 음료를 마신 피해자는 학부모 1명을 포함해 8명으로 확인됐다. 강남구 외 다른 지역의 피해 사실은 파악되지 않았다.
이들은 “구매 의향 조사에 필요하다”며 학생들로부터 부모 연락처를 받아갔다. 이후 피해 학생 부모들은 “자녀가 마약을 복용했다고 신고할 것”이라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피해 학부모들은 돈을 송금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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