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기업, 1분기 최악 성적표, 2분기도 암울···‘세수 펑크’ 현실화되나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수출 대기업의 올해 1분기 성적표가 예상보다 크게 저조했을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나아가 경기 둔화가 본격화되면서 2분기에도 이들 기업의 영업실적은 내리막이 예상된다. 예상보다 기업들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국세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법인세수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9일 경향신문이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주요 수출기업의 올 1분기 영업이익 평균 추정치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대부분 1년 전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 2조8596억원 영업이익을 낸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는 3조6362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증권사들은 보고 있다. 지난 7일 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처럼 스마트폰 등 적자를 상쇄할 사업 부문이 없어 반도체 부문 영업적자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삼성전자 반도체도 재고 누적·공급과잉 등에 따른 D램 가격 하락 여파로 1분기에 4조원대 영업적자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14조1214억원) 대비 95.8% 급감한 60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역대 최고 영업실적을 기록했던 정유기업들의 실적도 부진할 전망이다. 고유가로 지난해 1분기 1조6491억원을 벌어들였던 SK이노베이션은 올해에는 유가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9.4%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에쓰오일도 영업이익이 1조3320억원에서 6302억원으로 반토막 난 것으로 예측된다.
수출 주력기업에 불어닥친 한파…2분기에도 지속
지난해부터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석유화학 업종은 올해에도 손실을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첫 영업적자를 기록한 롯데케미칼은 올해 1분기에도 1353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원재료 가격 상승과 수요둔화, 신규 증설로 인한 공급과잉 여파로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도 각각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0.9%, 75.6%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철강업계 1위인 포스코홀딩스도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2.0%나 감소한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둔화로 수요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데다 철강 주요 원료인 철광석 가격마저 치솟으면서 경영난이 가중됐다.
문제는 경기 둔화가 뚜렷해지면서 이들 기업의 실적이 올 2분기에도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1분기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경험한 삼성전자는 2분기에도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93.9% 줄어들 것으로 증권사들은 전망한다. SK하이닉스는 2분기에도 적자(-3조3275억원)를 이어갈 전망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사이클 측면만 보면 올해 하반기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회복 시점이 더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유와 철강업종 대표 기업인 SK이노베이션(-72.2%), 포스코홀딩스(-45.2%)도 실적 부진이 2분기에 이어질 것으로 금융투자업계는 내다봤다. 디스플레이 업종 대표기업인 LG디스플레이는 2분기에 -632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전년(-4883억원)보다 적자 폭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다 1분기 영업이익이 34.4% 늘어나며 ‘효자 역할’을 해온 현대자동차마저도 2분기 들어서는 전년 대비 5.6%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등 모든 업종의 영업 전망이 밝지 못하다.
실적부진, 수출 넘어 세수·고용에도 악영향
이들 기업의 실적 하락은 곧 수출 부진를 의미한다. 실제 주요 경제 전망기관들은 하반기 수출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기대보다 미미하고 전 세계적으로 경기 둔화가 이어지면서 수출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금리까지 이어지면서 수출을 넘어 투자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LG디스플레이는 세계 경제 불확실성으로 예정됐던 3조원 규모의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시설 투자 기한을 2028년 3월까지 당초보다 5년 미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제조업 평균가동률(68.4%)이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어 설비투자 수요가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장기화하면 고용에도 향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동안 실적이 좋지 않았던 LG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 1분기에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매출액 500대 기업 절반 이상은 올 상반기 신규채용을 하지 않거나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KDI 관계자는 “제조업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서비스업의 취업자 수 증가세도 완만해지는 등 고용 둔화 흐름이 가시화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세수 펑크’도 우려된다. 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이 줄어들면 낼 세금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걷힌 법인세는 103조6000억원으로 국세수입(395조9000억원)에서 약 26%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 삼성전자가 낸 법인세가 4조2731억원에 달할 정도로 대기업 비중이 크다. 기업들이 올 8월 법인세 중간예납을 통해 연간 세액의 50%를 납부하는 것을 감안하면 2019년 이후 4년 만에 세수가 세입예산에 못 미치는 ‘세수 결손’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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