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화면 속 정처없는 이들···홍상수 ‘물안에서’[리뷰]
홍상수 감독의 29번째 장편영화 <물안에서>는 영화 전체 러닝타임인 61분 내내 초점이 맞지 않는 상태로 진행된다. 장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흐릿하다. 인물들의 움직임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화면이 대부분이다.
흐릿한 화면 속 인물들은 정처 없다. 승모(신석호)는 영화를 찍겠다며 상국(하성국)과 남희(김승윤)를 제주도로 데리고 간다. 몇달 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이들에게 일주일간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며 영화를 찍을 계획이다. 하지만 승모는 어떤 영화를 만들지 모르는 상태다. 그는 느낌과 아이디어를 찾아 맥 없이 다닌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어느날 승모는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여자를 만난다.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영화를 찍기로 한다.
인물들의 대사는 전작들에 비해 밀도가 낮다. 인물들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제주도에) 돌이 많고 바람이 많다’ 같은 대사를 반복한다. 아웃포커스된 화면 때문에 인물들의 표정이나 세세한 행동이 보이지 않는 와중 대화도 밋밋하다보니 영화에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영화 제목처럼 ‘물 안에서’ 흐릿하게 보는 느낌이다.
홍 감독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으리라 짐작되는 승모의 몇몇 말과 행동만은 또렷하게 다가온다. 승모는 왜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명예를 원하는 거지”라고 답한다.
영화는 지난 2월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인카운터스 부문에서 상영됐다. 지난해 신설된 이 부문은 전통적인 형식에 도전하고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작품을 소개하는 경쟁 섹션이다. 4년 연속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 홍 감독은 <물안에서>로는 상을 받지 못했다.
베를린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홍 감독은 “처음에는 아웃포커스 실험을 한다는 게 터무니 없게 생각됐는데 막상 카메라 뒤에 선 결정적인 순간에 아웃포커스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선명한 이미지에 신물이 나기는 했다”고 말했다.
영화 전체를 아웃포커싱으로 처리한 실험적인 시도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CGV에서 열린 언론배급시사회에서 한 관객은 “영사기가 잘못 된 것 아니냐”고 일행과 웅성거리다 상영 중간에 극장을 나서기도 했다. 12일 개봉.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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