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러시아, 중동-아프리카에서 세력 확장...美 영향력 빠져
'차이나 머니' 앞세운 中과 군사력 보태주는 러시아에 기대
美 등 서방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 수습 나섰지만 쉽지 않아
[파이낸셜뉴스] 냉전 당시 동서 진영의 대리전이 벌어졌던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근 신(新) 냉전을 맞아 다시 열강들의 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이념이 아닌 돈과 무력, 자원으로 현지 국가들의 환심을 사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은 속절없이 밀려나는 분위기다.
■中, '차이나 머니'로 개도국 휘어잡아
지난달 중국은 약 7년 동안 국교를 끊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주선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수장들은 이달 6일에도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관계 정상화 이후 이행 조치 등을 논의하고 화해 무대를 마련한 중국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의 마오닝 대변인은 "선린우호를 실현하고 중동의 안정과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중국의 지혜와 힘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미 2008년부터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아우르는 사회기반시설 망을 건설하는 '육·해상 실크로드(일대일로)' 계획을 시작하면서, 경로에 있는 수많은 개발도상국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거나 빌려줬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지난 3일 보도에서 43개의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와 18개의 중동 국가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중국은 사우디의 탈석유 경제 건설 계획인 '비전 2030'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우디에 최초의 무인기(드론) 공장을 짓고 탄도 미사일 연구를 지원하기도 했다. 미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에 의하면 중국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이집트, 요르단 등 주요 중동 국가에 드론과 미사일, 태양광 패널 등을 팔고 있으며 전력 및 통신망 구축에도 참여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은 2021년 유엔 연설에서 글로벌개발구상(GDI)라는 다국적 모임을 만들어 개도국 발전을 돕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에는 글로벌안보구상(GSI) 모임을 추진해 국제적인 안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중국은 GSI를 바탕으로 22개 중동 국가가 참여하는 아랍연맹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중동 질서를 꾀하는 중이다. 2018년에 케냐 동북부 지부티에 첫 해외 군사 기지를 건설한 중국은 바레인과 이란, 사우디 등 다른 중동 국가에서도 새 기지 건설을 위한 장소를 찾고 있다.
■'해결사' 자처한 러시아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중동과 아프리카의 정치에 영향을 끼쳤으나 최근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투입하고 있다. 디플로맷에 의하면 러시아는 아프리카 군대가 사용하는 전체 장비의 약 49%를 공급하며 2015년에는 직접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정부군을 돕기도 했다. 이후 러시아는 정규군 대신 정부와 밀접하게 연결된 용병 단체 '바그너 그룹'을 활용했다. 바그너 그룹은 시리아와 리비아, 기타 아프리카 내전에도 개입했다고 알려졌으며 말리, 모잠비크 등에서는 독재 정권을 도와주는 대가로 각종 광물 채굴권을 받았다. 말리에서는 2020년과 2021년에 2차례의 군부 쿠데타 발생 당시 바그너 그룹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바그너 그룹의 지원을 받는 부르키나파소의 군부 정권은 지난 1월 주둔중이던 프랑스군 철수를 요구했다.
러시아는 군사적인 수단 외에도 경제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헝가리 오부다대학의 야노스 베세뇨 교수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들이 알제리와 리비아, 나이지리아, 가나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러시아·아프리카 의회 회의에서 "러시아는 항상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력에 우선순위를 부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5월에 흑해 곡물 협정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러시아가 아프리카 국가에 무상으로 곡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디플로맷은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특성으로 언론 통제와 정부 주도 자본주의, 감시 국가, 약한 법치주의 등을 지적하며 러시아 및 중국이 세를 불리기 좋은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뒤늦게 수습 나선 美
미국의 영향력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뚜렷하게 줄어들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사우디를 찾아 물가 안정을 위해 석유 증산을 요청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우디와 중동 국가들은 지난 2일 유가 방어를 위해 추가 감산을 선언했다. 친미 국가로 알려졌던 우간다에서는 러시아가 군사 장비 등을 지원하자 지난달 대통령의 아들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푸틴 주의자"를 자처했다. 그는 러시아가 공격받으면 군대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같은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아프리카 4개국 순방을 마친 뒤 아프리카에 주둔했던 프랑스 군을 감축하고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프랑스의 공백을 바그너 그룹이 채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서방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지난달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에티오피아와 니제르에 보내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같은달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도 가나 등 서아프리카를 순방하며 막대한 투자 계획을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보도에서 미 정부가 미 기업들을 상대로 아프리카 투자를 촉구했지만 정작 기업들은 열악한 사업 환경을 들어 이를 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6일 미 언론들은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이달 사우디를 방문해 양국간 정보 공조를 재확인하고 관계가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 백악관은 사우디의 감산 발표 직후 미리 해당 조치를 통보받았다며 "사우디는 지난 8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샤디 하미드 교수는 “미국은 사우디에 분노할 일이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지 않는 등 양국이 균형점을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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