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 임영웅 다녀간 K리그, 이제 스스로 영웅 될 노력을

골닷컴 2023. 4. 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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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가요와 프로스포츠의 시장 격차가 언제부터 벌어졌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동승자 3인의 추론은 ‘90년대부터’였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1세대 아이돌이 출현했던 시점이다. 2023년 K-팝의 영토는 이미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이번 주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의 주인공은 한국인 가수 지민이다.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FC서울과 대구FC가 K리그1 6라운드에서 만났다. 오후 4시 30분 킥오프였지만,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2시 10분경이었다. 구름 관중의 교통체증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날 상암에는 슈퍼스타 임영웅의 시축과 하프타임 공연이 예고되었다. 공식 관중 수는 45,007명으로 집계되었다. 유료관중만 집계하기 시작한 2018년 이후 최다 관중 신기록이다. 올 시즌 서울의 앞선 홈 2경기 합계(42,753명)보다 많다. 슈퍼스타 한 명이 팬 2만 명 이상을 끌고 온 셈이다. 임영웅 만세다.

임영웅은 축구를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예전 내가 몸을 담았던 축구 전문지가 있다. 커버모델과 브로마이드 구성이 판매량을 좌우했다. 편집팀이 ‘픽’할 수 있었던 국내 선수는 박지성, 손흥민, 이강인 정도였다. <포포투> 한국판 역사에서 축구선수가 아닌 커버모델이 딱 한 명 있었다. 임영웅이다. 그를 표지 모델로 내세웠던 2020년 8월호는 발매와 동시에 완판되었다. 부랴부랴 초유의 재인쇄가 결정되었다. 왜 갑자기 임영웅이었느냐고? 본인이 <포포투>에 나오고 싶다며 먼저 연락했단다. 엄밀히 말해 그는 축구부 생활을 1년 넘게 했던 ‘선출’이다. 임영웅 만세라니까.

경기 전, 임영웅은 센터서클에서 시축을 했다. 힘껏 휘두른 왼발에 맞은 볼은 페널티박스까지 날아갔다. 그렇게 멀리 볼을 보내는 시축자는 처음이었다. 임영웅이 손을 흔들었다. 커다란 함성이 일었다. 홈팀 서포터즈는 ‘임영웅’ 콜을 외쳤다. 임영웅이 터널로 사라진 뒤, 서울과 대구의 격돌이 진행되었다. 5분쯤 지났을까? 기자석 옆 중앙 스탠드가 술렁였다. 임영웅이 탁 트인 자리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눈앞에서는 축구가 한창 돌아가는데, W측 스탠드의 많은 시선이 슈퍼스타 쪽으로 향했다. 일부 취재진도 기자석을 박차곤 임영웅을 촬영할 수 있는 지점으로 몰렸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던 셀럽과 VIP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런 광경은 처음 봤다.

멀티버스의 실재 여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생겼다. 임영웅이 사는 유니버스와 K리그가 사는 다른 유니버스가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저쪽의 히어로가 이쪽 세상에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건가? 전반전 내내 이어졌던 술렁거림, 장내 아나운서의 친절한 응원 안내, 대형 스크린에 모습이 잡힐 때마다 일어나는 함성, 팬클럽 컬러가 상대팀과 겹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 등등이 계속 목격되었다. ‘K리그적으로’ 따지자면 생경한 현장이다. 영화 속에서 이세계끼리 만날 때 시공간이 뒤틀리거나 주인공은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런 건가? 4만 관중이 낯설다. 웅성거림도 신기하다.

2023시즌 K리그는 출발이 좋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를 깨끗이 씻고 있다. 4월 8일 현재 평균관중이 12,041명이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폭발적이라고 해도 좋을 증가세다. 특히 홈팀 FC서울은 앞선 두 경기에서도 모두 2만 명을 넘겼다. 그런데 K리그 팬들은 경험상 개막 효과를 순순히 믿지 않는다. 지난주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마스크를 벗은 해방감과 2022카타르월드컵 잔상은 영속적이지 않다. 곧 후텁지근한 무더위가 한반도를 덮칠 것이다. 경기력은 떨어지고, 잔디는 군데군데 속살을 드러낸다. 신혼여행은 꿈, 결혼생활은 현실이다.

그래도 4월 8일 임영웅 효과는 우리가 잊었던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줬다. 대관중의 효과다. K리그는 재미가 없어서 관중이 적은 게 아니다. 관중이 적어서 재미가 없어 보이는 쪽에 가깝다. 지나가는 개까지 돌아보게 할 만큼 수준이 높고 재미있는 축구팀은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는다. 스포츠 경기와 관중의 관계는 영화, 연극, 콘서트, 전시회와 관객의 관계와 다르다. 스포츠 관중의 기본요소는 연대감과 대리만족이다. 관객이 아무리 많아도 수준 낮은 콘서트는 금세 밑천이 드러난다. 축구 경기에서는 대관중이 수준에 대한 인식을 지운다. 축구 관중은 감상자가 아니라 직접 참여자이기 때문이다. 지금 K리그의 최대 주범은 따분한 경기력이 아니라 썰렁한 관중석이다.

구단들이 이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지금 K리그는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 직접 팬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면서 한 번이라도 더 어필해야 한다. 볼펜 한 자루 만들 줄 몰라도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 “우리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이번 주말에 꼭 시간 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임영웅이 다녀간 자리에서 K리그가 스스로 영웅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짜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면 슈퍼스타의 세심한 배려 없이도 우리끼리 만세삼창 부를 수 있다.

글, 그림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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