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재일유학단 간첩 사건, 지명수배도 위법...국가배상해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News1 박세연 기자

1987년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에서 정부의 허위 수사결과 발표와 보도자료 배포 뿐 아니라 지명수배도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양관수씨와 가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987년 ‘비전향 장기수’ 장의균씨가 일본 유학생 시절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접촉해 간첩 활동을 했다고 발표하면서 그에게 지령을 내린 인물로 양씨를 지목했다.

장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8년이 확정됐고 공소사실 조작을 주장하면서 전향 각서 작성을 거부했다.

이후 불법 구금 상태에서 강압 조사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재심 끝에 2017년 12월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양씨는 안기부 수사 결과 발표 후 지명수배돼 계속 일본에 머물다가 1998년 귀국했고 검찰 조사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양씨와 가족들은 안기부의 위법수사에 문제를 제기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2심은 보도자료 배포와 불법 구금이 위법하다고 인정했으나 지명수배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 등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에 기초해 이뤄진 수사발표, 보도자료 배포, 지명수배는 모두 수사절차의 일환이어서 전체적으로 위법하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를 판단할 때는 직무집행을 전체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수사자료나 보도자료 내용에 비춰 원고에 대한 지명수배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원고는 검거를 우려해 10여년 동안 귀국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불법 구금에 대해 소멸시효가 만료됐다고 본 원심 판단에 대해서도 ‘불법구구금은 그 대상이 아니다’며 소멸시효 만료 판단이 잘못됐다며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