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 지명수배도 위법”

정은주 2023. 4. 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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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에서 정부의 허위 수사결과 발표와 보도자료 배포뿐 아니라 지명수배도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수사 발표와 보도자료 배포, 지명수배, 불법 구금 모두 중대한 인권침해 및 조작 의혹 사건을 구성하는 부분인 만큼 일부만 떼어내 과거사정리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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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에서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며 장의균씨의 증거품으로 제시한 물품사진.

1987년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에서 정부의 허위 수사결과 발표와 보도자료 배포뿐 아니라 지명수배도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양관수씨와 그 가족 14명이 낸 국가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막바지에 기획된 간첩사건이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1987년 9월 장의균씨가 일본 유학생 시절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소속 재일조선인들과 접촉해 간첩 활동을 했다고 발표했고, 그 지령을 내린 인물로 양관수씨를 지목했다. 영장 없이 불법 체포된 뒤 국가보안사령부(보안사)에 감금된 장씨는 허위 자백을 근거로 징역 8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1995년 만기 출소한 장씨는 재심을 청구해 2017년 12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82년부터 일본에서 생활하던 양씨는 간첩단 사건 발표 뒤 지명수배로 계속 일본에 머물다가 1998년에야 귀국했고, 검찰 조사 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양씨 등은 안기부의 위법한 수사로 피해를 봤다며 국가배상 소송을 냈다. 2심은 보도자료 배포와 불법 구금이 위법하다고 인정했지만, 지명수배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보지 않았다. “지명수배는 피의자의 소재를 찾는 수사 방편으로 수사기관 내부의 단순한 공조나 의사 연락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은 “불법 구금, 가혹행위 등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에 기초해 이뤄진 수사 발표, 보도자료 배포, 지명수배는 모두 수사 절차의 일환으로 전체적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양씨가 검거를 우려해 10여년 동안 귀국하지 못했고, 지명수배로 인해 불법 구금이 쉬웠다는 점도 고려했다.

또한 대법원은 2심의 소멸시효 판단이 잘못됐다며 다시 심리하게 했다. 2심은 양씨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와 보도자료 배포만 ‘중대한 인권침해 및 조작 의혹 사건’이며 불법 구금은 그 대상이 아니어서 소멸시효가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수사 발표와 보도자료 배포, 지명수배, 불법 구금 모두 중대한 인권침해 및 조작 의혹 사건을 구성하는 부분인 만큼 일부만 떼어내 과거사정리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를 판단할 때는 직무집행을 전체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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