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해바라기씨 탓에 1천톤 쌓였다”…동유럽 농민들 반발

신기섭 2023. 4. 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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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불가리아·폴란드 농민들 분노 확산
‘면세 혜택’ 우크라 곡물 유입되며 가격 폭락
7일(현지시각)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벌어진 농산물 가격 하락 보상 요구 시위에 한 여성이 빵 한 덩이를 들고 참가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부쿠레슈티/A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의 관세 면제 혜택을 받는 우크라이나 곡물이 동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이 지역 농민들이 곡물 가격이 폭락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발이 확산되자,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에 대한 곡물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루마니아 농민들이 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산 곡물 유입에 따른 곡물 가격 하락에 항의해 전국 곳곳에서 도로 점거 시위를 벌였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수도 부쿠레슈티의 유럽연합 대표부 사무소 앞에서는 200여명의 농민들이 “우리는 유럽연합 규정을 존중하지만, 유럽연합은 우리를 무시한다”는 현수막 등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 현장에는 “우리의 연대에 불이익을 가하지 말라”, “루마니아 농민을 위한 안정책”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도 내걸렸다. 이 나라 곳곳에서는 이날 트랙터를 끌고 나온 농민 수천명이 도로를 봉쇄하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루마니아 농업생산자협회 연합(LAPAR)의 니쿠 바실레 회장은 “우리는 유럽연합 내 불공정 경쟁을 문제삼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동료(농민)들도 곡물을 팔아야 하는 걸 알지만, 불공정 경쟁인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루마니아의 밀 생산비가 1년 만에 70% 오른 헥타르당 6000레우(약 175만원)에 달한다며 값싼 우크라이나 곡물이 들어오면서 농민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루마니아 남부 텔레오르만의 농민 마리안 포파는 지금까지 50만유로(약 7억2천만원)의 손실을 봤다며 “지금도 해바라기씨 1천t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데,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불가리아·폴란드 등에서도 최근 값싼 우크라이나 곡물 유입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일리야 프로다노프 불가리아 곡물생산자협회 회장은 “브뤼셀이 우리의 항의를 듣지 않으면, 같은 생각을 하는 나라들과 함께 더 강력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그는 현재 350만t의 밀과 100만t의 해바라기씨가 전국의 창고에 쌓여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5월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이 나라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주고 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입 할당량 제한도 풀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곡물들이 싼 값에 인근 동유럽 국가들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폭등했으나, 지난해 8월초부터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재개되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 농민들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5630만유로(약 81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으나, 농민들은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헨리크 코발치크 폴란드 농업부 장관이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대한 관세 면제 혜택이 내년 6월까지 연장된 데 항의해 사퇴하기도 했다. 불만이 커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폴란드에 대한 곡물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 인디펜던트>가 8일 보도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곡물을 폴란드를 거쳐 제3국으로 수출하는 것은 계속 허용된다.

한편, 러시아와 튀르키예(터키) 외교 장관들은 러시아의 비료 수출에 대한 걸림돌이 해결되지 않는 한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협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7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튀르키예 외교장관과 만나, 비료 등 자국산 농업 수출의 걸림돌이 제거되지 않으며 다음달 중순 곡물 협정을 탈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우쇼을루 장관도 걸림돌 제거가 협정 시한 연장에 꼭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18일 곡물 수출 협정 연장에 합의하면서 서방에 러시아산 비료 등에 대한 제재를 60일 안에 풀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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