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텍사스 23년간 쓰인 임신중절약 금지 결정 후폭풍…임신중단권리 또 위기에
미국 텍사스주 연방법원이 23년 동안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쓰인 경구용 임신중절약에 대한 보건 당국의 승인을 돌연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해 6월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이후 또 다시 임신중단권이 미국 내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텍사스주 연방법원은 지난 7일(현지시간) 경구용 임신중절약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식품의약국(FDA)의 사용 승인 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매튜 캐스머릭 판사는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의사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FDA가 미페프리스톤 사용 승인 과정에서 법적 오류가 발견됐다면서 FDA의 승인을 무효화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본안 선고 전 예비 명령으로, FDA에 긴급 항고 기회를 주기 위해 7일 이후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하도록 했다. 따라서 당장 미페프리스톤의 유통이 막힌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00년 FDA가 승인한 약물을 갑자기 승인 취소한 텍사스주 법원의 결정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임명된 캐스머릭 판사는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1972년 로 대 웨이드 판례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글을 써 온 보수 성향 인사다.
이에 23년간 거의 문제 없이 사용되고 있는 임신중절약을 문제삼은 결정을 놓고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일제히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이번 소송과 법원 결정은 여성의 자유를 박탈하고 건강을 위협하는 전례 없는 일”이라며 “법원 결정을 뒤집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같은 날 워싱턴주 연방법원은 수도 워싱턴DC를 포함해 민주당 소속 17개주 법무장관이 제기한 소송과 관련 FDA가 이 약에 대한 사용 승인을 유지해야 한다고 판결하는 등 동일한 약을 놓고 텍사스주와 워싱턴주에서 각각 배치되는 내용의 판결이 동시에 나오면서 의료진들의 혼란도 나타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8일 임신중단 의료를 제공하는 의사들이 이와 관련 환자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향후 판결이 미칠 파장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판결이 확정될 경우 또 다시 미국 각지의 임신중단 접근권을 제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10주 이내에 사용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경구용 임신중단약이다. 미국 내 ‘합법’ 임신중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약물을 통한 임신중단은 일반적으로 미페프리스톤을 먼저 투약하고, 24시간 이내에 미소프로스톨을 병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법무부와 FDA는 텍사스주 법원 판결이 나온 지 몇 시간만에 항소했지만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연방대법원까지 갈 경우 보수 성향 대법관이 전체 9명 중 6명으로 절대 우위 구도인 상황에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FDA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이 사실상 처음으로 FDA의 사용 승인 권한을 문제삼으면서 앞으로 여타 의약품과 관련 FDA의 의사결정을 문제삼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데이비드 코헌 드렉셀대 로스쿨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 하에서 대법원은 연방정부 기구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을 핵심 임무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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