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쇼의 쇠퇴와 뉴욕 노조[김흥록의 뉴욕포커스]
"노조의 높은 부스 공사비 탓" 지적
불황땐 전시회 축소로 노조원 손해
노조의 관행 적합한지 되돌아볼때
매년 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리는 뉴욕 국제오토쇼는 1900년 시작해 역사가 123년에 이르는 유서 깊은 자동차 전시회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북미 국제오토쇼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 등 세계 유수 전시회에 규모는 미치지 못하지만 ‘럭셔리 모터쇼’로서의 명성이 있다. 고급 소비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열리는 만큼 완성차 업계들은 코로나19 이전까지 고가 라인의 자동차를 선보이는 자리로 뉴욕오토쇼를 찾았다.
이런 수요도 예전 같지는 않아 보인다. 지난해 30여 곳 수준이던 참가 업체는 올해 20개 안팎으로 줄었다. 2019년만 하더라도 수십여 종의 차량이 뉴욕오토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됐지만 올해 행사에서 공개된 신차 수는 한 손으로 꼽고도 남았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거진 카스쿱스는 “아큐라·캐딜락·재규어·랜드로버 등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고 아우디와 BMW·포르쉐의 자리는 아주 작았다”고 평했다. 자동차 업계는 점점 뉴욕 오토쇼에 돈을 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현장의 업계 관계자들에게서 의외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의 고비용 공사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욕 오토쇼에 참가하는 업체들은 부스 공사를 위한 계약을 하는데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노조 소속이라고 한다. 업체에 따르면 뉴욕 물가를 고려하더라도 부스 공사비가 다른 전시회와 비교해 현저히 높은 수준인데 노조 소속이 아닌 근로자에 대한 대안도 없다. 작업의 효율성이나 완성도가 높지 않아 유럽 럭셔리카 브랜드의 경우 때때로 전용 무대 제작 인력을 본국에서 데려오려 해도 노조의 반대로 투입하지 못한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난 관계자는 “유럽의 브랜드들이 뉴욕 오토쇼에서 점점 줄어드는 이유”라고 말했다.
뉴욕 공사 노조의 영향력은 익히 들어왔던 터다. 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몇 년 전 맨해튼 시내에 전시장을 마련하는 공사를 할 당시 노조 소속 근로자들의 실제 근무시간이 일일 너댓 시간에 그쳤다고 한다. 공사 인력이 퇴근한 후 비노조원 근로자들을 별도로 투입하려 해도 노조가 차단했다고 한다. 공기 지연을 우려한 이 기업 관계자는 결국 기존 공사 대금에다 공사 노조에 웃돈까지 얹어주는 조건으로 비노조원들을 투입할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 역시 몇 년 전 뉴욕시 지하철 공사 자료를 단독 입수해 노조의 어두운 관행을 보도하기도 했다. 뉴욕시의 지하철 공사비가 다른 도시 평균의 7배에 달하는 것은 노조의 압력으로 뉴욕 지하철 공사에 4배 많은 인력을 배치하는 등 비효율적인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욕 오토쇼에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가 앞다퉈 몰려들던 2010년대라면 노조의 공사 관행은 그저 효율성의 문제였을 것이다. 참가 업체들은 비용을 더 써서라도 뉴욕 오토쇼 무대에 서고 싶어 했고 노조들은 이를 기회로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었다. 근로자들은 더 나은 수익을 얻고 참가 업체는 비용을 들인 만큼 마케팅 성과를 얻는 일종의 상생 생태계다.
그러나 이제 모터쇼 산업 자체가 쇠퇴하고 있다. 주요 신차의 상당수가 전기차이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은 모터쇼가 아닌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CES) 등에서 신차를 선보이고 있다. 모터쇼 산업 전체가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뉴욕 공사 노조의 비효율성이 더해지자 자동차 업체들은 결국 뉴욕 오토쇼 참가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만약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공사 근로자들에게도 마이너스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근로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허용되는 노조의 활동은 어느 선까지일까. 과거에 허용 가능했던 관행은 지금도 적정한 행위일까. 경제주체들의 눈높이과 소비 양상이 급격히 달라지는 지금 노조의 수십 년 관행이 노조원들의 권익 보호에 적합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반드시 뉴욕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o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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