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크라 문건'에 한국 감청 정황…"동맹외교 관계 저해"(종합)

김동호 2023. 4. 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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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관리들, 바이든이 尹대통령에 포탄 전달 압박할까 우려",'신호정보보고' 적시
온라인에 100쪽 분량 보고서 유포…우크라전 서방 대응·러 목표 등 취합
젤렌스키 '전황에 변수될라' 촉각…미 국방부 이어 법무부도 조사 착수
로켓포 쏘는 우크라이나군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군 기밀 문건이 소셜미디어에 유출된 사건과 관련,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들을 감청해온 정황이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8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해당 문건 중 최소 두 부분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될 미군 포탄을 공급할지를 놓고 한국 내에서 논의가 진행됐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부분은 "한국의 관리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해 물품을 전달하라고 압력을 가할 것을 우려했다"고 적혀 있다.

이는 지난해 11월 한국이 미군에 155㎜ 포탄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알려진 것과 연관된 내용으로 보인다.

미 중앙정보국(CIA)발인 다른 부분에서는 이같은 한국 내 논의가 어떻게 파악됐는지가 설명됐는데, 정보기관들이 전화 및 전자메시지를 도청하는 데에 사용하는 "신호 정보 보고"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고 NYT는 전했다.

또한 2월 초중순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의 고위급 인사들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제안한 사법개혁안에 항의하는 자국 관리들과 시민들을 지지한다는 내용도 문건에 담겨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 당국은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

NYT는 "이런 도청 사실이 공개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국과 같은 주요 파트너 국가와의 관계를 방해한다"고 언급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함으로써 향후 외교 관계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밖에 해당 문건에서 미국 정보당국은 공격 계획과 전쟁 여력 등을 상세히 평가하고 있는 등 러시아의 보안·정보기관에 깊이 침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뚜렷이 담겨 있다.

또한 러시아군의 공격 시기와 특정 목표물까지 매일 실시간으로 미국 정보기관에 전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정보를 미국이 전달해준 덕에 우크라이나가 중요 전기마다 방어태세를 충분히 갖춘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미군의 이같은 정보 획득은 러시아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NYT는 "유출 문건들은 미국이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동맹국에 대해서도 첩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이미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졌고, 미국의 비밀 유지 능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자아냈다"고 지적했다.

미 정보기관의 보안이 뚫렸다는 점으로 인해 향후 주요 국가들과의 정보 공유 협조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한 서방 국가의 고위 관리는 문건들을 살펴본 후 "고통스러운 유출"이라며 향후 미국과의 정보 공유에 제한을 둘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여러 정보기관이 서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밀이 유지될 것이라는 신뢰와 확신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NYT에 따르면 유출된 문건은 총 100쪽에 이르며, 미 국가안보국(NSA)·중앙정보국(CIA)·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등 정부 정보기관 보고서를 미 합동참모본부가 취합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군이 장갑차를 몰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 문건은 사냥 잡지 등으로 보이는 것들 위에 올려져 촬영된 사진의 형태로 온라인에 확산했는데, 이를 분석한 전직 관리들은 유출자가 기밀 브리핑 자료를 접어 주머니에 넣은 다음 안전한 장소에서 꺼내 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측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이 문건은 게임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 먼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온라인 커뮤니티 '4chan' 등에 유포된 후 텔레그램과 트위터 등으로 확산한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일부 사진에서는 미국 국방부의 공개 데이터와 달리 러시아군 사상자 수가 훨씬 높거나 낮게 나타나는 등 일부 조작된 정황도 보인다고 WP는 짚었다.

다만 상당수 고위 관리는 문서가 완전히 위조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 등에 제출되는 CIA '세계 정보 리뷰' 보고서와 형식이 유사하다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이와 관련, 미국 국무부는 전날 성명을 통해 문서 유출 경위에 대한 공식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이미 자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우크라이나는 일단 문서의 가치를 평가절하면서도 전쟁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군의 계획과 관련한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면담한 후 WP 인터뷰에서 "우리의 행동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될지는 오직 우리 나라만이 알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아는 사람은 최대 5명이다. (유출 문건 내용의) 다른 것들은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 고문도 "유출 문서 대부분이 허위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실제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반격 계획은 러시아군이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라며 실제 군사작전이 전장에서 실행에 옮겨지기까지 보안이 지켜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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