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히어로들은 죽 쑤는데 어째서 김도기 기사님은 잘 나갈까('모범택시2')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4. 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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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부터 버닝썬까지... 현실이 탄생시킨 슈퍼히어로의 강력함(‘모범택시2’)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내가 음악으로 사죄할게. 아 아니 차라리 나 군대 갈게. 군대."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2>에서 가수 빅터(고건한)가 김도기 기사(이제훈)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내놓는 이 대사에서 시청자들은 한 사람을 떠올렸을 게다. 연예계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놨던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의 승리. 군대로 도피했다가 군에서 조사받고 처벌이 확정되어 징역살이를 했던 승리의 사례가 그것이다.

<모범택시2>가 다룬 블랙썬이라는 클럽에서 벌어진 사건은 한 편의 믿기지 않는 드라마 같다. 클럽을 운영하는 공동대표 속에 박현조(박종환)라는 총경이 있고, 그의 명령을 받는 부패한 경찰들은 압수해 소각해야할 마약을 빼돌려 블랙썬에 납품(?)한다. 게다가 클럽의 빅터 같은 아이돌 출신의 VIP들은 2층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른바 '인형 뽑기'를 한다. 그건 원하는 여성을 골라 마약을 먹게 하고 무력한 상태에서 호텔로 데려가 그들 말로 '홈런(성폭행을 하는 것)'을 치기 위함이다.

마약에 협박, 양취유인, 성폭력 등등 명백한 범죄행위지만 이들의 탈선은 부패한 총경과 경찰들의 비호 아래 도시 한 가운데서 버젓이 자행된다. "악마를 잡아야 하는 공권력이 오히려 그들과 결탁했을 때, 도심 한복판에 어떤 괴물이 나오는지 보여주는 거 같지 않아요?" 김도기가 하는 그 말은 충격적이다. 너무 거짓말 같아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니 말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모범택시2>에 등장한 '블랙썬'에서 '버닝썬'을 떠올리고, 빅터에 '승리'의 그림자가 그려진다. 마약을 탄 술을 여성들에게 먹이고 기절한 산태에서 성폭력을 하고 그걸 찍은 영상을 그들의 단톡방에 공유하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신고해서 달려온 경찰이 오히려 구타당한 신고자를 잡아가는 이야기도 그렇고, 섬을 통째로 빌려 생일파티를 하려 한다는 빅터의 이야기도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박현조라는 부패한 총경은 버닝썬 게이트에서 카톡방 내용을 통해 거론되었던 경찰총장이 떠오르고, 그가 빅터에게 술 접대를 받으며 음주운전을 막아준 사실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승리의 친구 최종훈의 음주운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최종훈이 음주운전을 피해 달아나다 연행됐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현장 경찰관에게 돈을 건네려 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조용히 무마되었는데 훗날 버닝썬 게이트가 터지면서 단톡방 내용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본 드라마의 인물 지명 기관 단체 그밖에 일체의 명칭은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드라마 시작 전에 자막으로 보이는 고지처럼 <모범택시2>는 허구의 드라마다. 실로 무지개운수 같은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조직이 있고 김도기 같은 다크히어로가 모범택시를 타고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범인들을 처단하는 그 과정은 너무나 시원시원한 사이다로 채워져 있어 개연성이나 현실감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개연성 부족의 허구적 과정과 결말들을 대놓고 그려내는 와중에 들어 있는 사건들은 우리가 너무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이다. <모범택시2>는 N번방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로 시즌2의 문을 열었고 '파타야 살인사건', '노인 대포폰 사기사건' 등등 매 회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제 끝을 향해가는 시즌2에 버닝썬 게이트를 모티브로 한 블랙썬 사건을 그리고 있는 것.

버닝썬 게이트를 통해 상습도박, 성매매 알선, 횡령 등등 총 9개의 혐의로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다툼 끝에 승리는 1년6개월의 실형을 산 후 지난 2월 출소했지만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의 수위에 대해 대중들은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모범택시2>의 김도기라는 인물이 그 어떤 슈퍼히어로들보다 강력해진 건, 바로 이 공분을 드라마적 판타지로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마블의 슈퍼히어로보다 김도기 같은 우리의 슈퍼히어로가 더 실감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 팬서: 와칸타 포에버>,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등 최근 개봉한 마블 히어로물들이 변변치 못한 성적표를 받아든 반면 <모범택시2>는 일찌감치 시즌1 최고 시청률을 돌파한 이후 파죽지세의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 슈퍼히어로의 캐릭터는 그들을 탄생시키는 적과 대응해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마블의 슈퍼히어로가 막연한 적을 보여준다면, 김도기는 진짜 현실감이 느껴지는 사건 속 적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적 복수'를 해주는 김도기라는 슈퍼히어로는 '공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부조리한 현실이 탄생시켰다. 그래서 이 현실에 공분하는 대중들을 그 어떤 슈퍼히어로들보다 더 열광시키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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