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크라 기밀 문건` 유출…"한국 등 주요 감청 동맹국 관계 악영향"

100쪽 분량의 보고서 문건 유출...온라인 커뮤니티에 유포
주요 동맹국 감청 사실 드러나, 외교관계 악영향 우려돼
젤렌스키 '전황에 변수될라' 촉각...미 국방부 이어 법무부도 조사 착수

12일(현지시간)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간 격전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의 주택가가 파괴돼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하르키우와 헤르손에서 대패한 것을 만회하려고 수개월째 바흐무트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바흐무트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구그, 중동 등에 대한 미군 기밀 문건이 소셜미디어(SNS)에 유출된 사건과 관련, 미국이 동맹국을 감청해온 사실이 함께 드러나 외교관계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8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지난 며칠간 트위터와 텔레그램 등에 확산한 문건에서 미국 정보당국이 공격 계획과 무기보급 계획, 우크라이나 부대 증설 등 러시아의 보안·정보기관에 깊이 침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나 있다.

이 문건에는 러시아군의 공격 시기와 특정 목표물까지 매일 실시간으로 미국 정보기관에 전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이런 정보를 전달해준 덕에 우크라이나가 중요 전기마다 방어태세를 충분히 갖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군의 이같은 정보 획득 범위가 러시아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유출된 이들 문건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최고 군사·정치 지도자들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도 담겨 있다.

NYT는 "유출 문건들은 미국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동맹국에 대한 첩보 활동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며 "이미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졌고, 미국의 비밀 유지 능력에 대한 우려를 자아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도청 사실이 공개됨으로써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국과 같은 주요 파트너 국가와의 관계가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국제 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 앞으로 있을 외교 관계에 지대한 타격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미 정보기관과 다른 주요 국가들과의 정보 공유 협조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서방 국가의 한 고위 관리는 유출된 문건들에 대해 "고통스러운 유출"이라며 향후 미국과의 정보 공유에 제한을 둘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그는 "여러 정보기관이 서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밀이 유지될 것이라는 신뢰와 확신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NYT에 따르면 유출된 문건은 총 100쪽에 이른다. 이 문건은 미 국가안보국(NSA)·중앙정보국(CIA)·국무부 정보조사국 등 정부 정보기관 보고서를 미 합동참모본부가 취합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온라인에 확산된 이 문건은 잡지 등의 위에 올려져 촬영된 사진의 형태다. 이를 분석한 전직 관리들은 유출자가 기밀 브리핑 자료를 접어 주머니에 넣은 다음, 안전한 장소에서 꺼내 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측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이 문건은 게임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 먼저 등장해 온라인 커뮤니티 '4chan' 등에 유포된 후, 텔레그램과 트위터 등으로 확산한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사진에선 조작된 정황도 보였다. 미국 국방부의 공개 데이터와 달리 러시아군 사상자 수가 훨씬 높거나 낮게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미국 고위 관리는 "문서가 완전히 위조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 등에 제출되는 CIA '세계 정보 리뷰' 보고서와 형식이 유사하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와 관련, 전날 성명을 통해 문서 유출 경위에 대한 공식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이미 자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우크라이나는 일단 문서의 가치를 평가절하면서도 전쟁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우크라이나군의 계획과 관련한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면담한 후 WP 인터뷰에서 "우리의 행동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될지는 오직 우리 나라만이 알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아는 사람은 최대 5명이다. (유출 문건 내용의) 다른 것들은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 고문은 "유출 문서 대부분이 허위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실제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