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외교 야심작 '인도·태평양 전략'... 예산 0원, 조직은 5명[문지방]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0원.'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을 이행하기 위해 꾸려진 외교부 내 태스크포스(TF)에 편성된 예산입니다. 인태전략을 위한 직접적인 예산이 당장은 없는 상태죠. TF팀원도 5명에 불과합니다. 기존 외교전략기획관실 예산을 '쪼개' 쓰면서 어렵사리 방향타를 잡아 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말 인태전략을 야심차게 발표했습니다. 현 정부 외교 구상의 종합판이라고도 불렸죠. 왜 그럴까요. 인도태평양은 지역이 방대하기도 하지만, 향후 국제정세를 좌우할 핵심지역으로 꼽힙니다. 세계 인구의 60%,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40%, 글로벌 상품무역의 35%를 차지합니다.
동시에 남중국해 분쟁과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 북핵 문제 등 군사·안보적 불안요인이 첨예하게 맞붙는 곳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이 갈수록 고조되면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죠.
이처럼 중요한 이 지역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고자 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의 인태전략'을 발표했습니다. 군사를 넘어 경제와 기후변화 대응으로 범위를 넓힌 '포괄 안보' 영역에 적극 관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 중추 국가'(Global Pivotal State)를 누차 강조한 터라 인도태평양은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안성맞춤의 장소인 셈입니다.
하지만 원대한 구상과 달리 현실은 좀 군색해보입니다. 인태전략을 점검하고 이행할 조직의 예산이 '0원'이라니. 자칫 요란한 빈 수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입니다.
TF가 당장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건 2023년도 예산안이 확정된 이후 인태전략 구상안을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합니다. 일종의 '시차'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어쨌든 내년도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혼선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반대로 올해 인태지역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604억 원과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 예산 25억 원을 집행해야 하는데, 이를 TF가 주도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한쪽에서는 예산이 없고, 다른 쪽에서는 예산 집행 주체가 불분명해 번지수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상황이죠.
컨트롤타워 없는 인태전략…전략 구현에 '빨간불'
"대통령 소속 위원회부터 과감하게 정비해서 예산을 절감하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겠다."
윤석열 대통령, 지난해 7월 5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20여 개에 달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과감하게 통·폐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옥상옥'으로 운영되는 정부 정책의 비효율성을 개편하고 공공기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아쉬운 점은 범정부 차원에서 정책을 운영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을 때 이를 위한 정부조직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외교부 내 인태전략 TF는 다른 부처를 상대로 전략을 지휘하고 점검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안보실에서 지휘자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외교·안보·경제 등의 영역에서 인태정책을 점검할 회의체도 아직은 없는 상황입니다. 인태전략을 앞세우면서 각 부처가 자칫 중구난방으로 정책을 내놓는다면 심각한 비효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신남방정책과 사뭇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11월 '한-아세안 미래 공동체 구상'을 발표하고 9개월 뒤, 대통령 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가 마련됐습니다. 김현철 당시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을 위원장으로 14개 부처의 차관들이 위원으로 구성돼 범정부 차원에서 정책을 추진할 방향성을 조율·협의했죠. 위원회 운영을 위한 예산은 2019년 회계연도부터 반영돼 총 25억 원가량이 편성됐습니다. 이후 정책기획운영위원회 예산에 포함돼 보고됐죠.
다만 윤 대통령도 최근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합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열린 '2차 국정과제 점검 회의'에서 인태전략이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네요. 위원회가 아니더라도 인태전략의 방향성을 범정부 차원에서 점검할 권한을 가진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외교부가 인태전략 핵심 주체인 일본·호주…강력한 권한 부여받아
시야를 밖으로 돌려 다른 나라들은 인태전략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 살펴볼까요. 이웃나라 일본은 흥미롭게도 우리와 구조가 유사합니다.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이 인태전략의 실무를 맡고 있습니다. 인태전략의 방향은 국가안전보장국(NSS)의 안보회의를 거쳐 결정됩니다. 안보실-외교부로 연결되는 우리와 비슷한 부분입니다.
반면 일본은 우리에 비해 짜임새를 갖춰 일사불란한 모습입니다. 인태전략의 종주국으로 통하는 일본도 물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네요. 초반에는 뚜렷한 방향타 없이 우후죽순으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정 작업을 거쳐 2007년 '두 바다의 교류'→2012년 '민주주의 안보 다이아몬드'→2016년 '자유롭고 열린 인태전략'(FOIP)→2018년 '자유롭고 열린 인태비전'(FOIP)으로 재편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종합외교정책국이 각 부처의 인태전략 이행 상황과 보완점을 점검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인태전략 대상 국가들과 관계부처, 연구기관 등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면서 전략의 방향성을 재설정하고 컨트롤타워인 총리실과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며 완성도를 높여갔다네요. 예산은 '일본의 안전보장정책과 관련한 외교정책',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외교정책 기획입안과 대외발신' 명목으로 편성된 3,900만 엔(3억9,000만 원)과 5억2,700만 엔(약 52억7,000만 원)을 반영했습니다.
최근 인태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호주는 어떨까요. 호주는 총리실 산하 국가안보실에서 인태전략을 주요 국가안보전략으로 채택한 이후 외교통상부와 국방부에 힘을 크게 실어줬습니다. 그래서 호주의 인도태평양 안보정책은 핵심 협력국과의 외교·국방 2+2 장관급 회담 등을 거쳐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중 외교통상부의 경우, 지역전략실 산하 북미 및 인태전략국을 마련하고 인태전략만을 전담하는 과까지 설치했습니다. 말 그대로 인도태평양을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이죠. 조직 구조만 보더라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안정적 자유무역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겠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국가안보실 산하 전담 부서 만든 미국, 전담 대사 만든 프랑스
미국은 인태전략에 한껏 중요성을 부여했습니다. 그 결과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글로벌 '히트상품'으로 가치를 높였죠. 미국의 인태전략 방향성은 명확합니다. 동아시아에서 날로 강해지는 중국을 견제하고 세계 경제의 중추인 인도태평양 권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컨트롤타워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입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 인도태평양조정관실을 신설하고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였던 커트 캠벨을 수장으로 임명했죠.
백악관 NSC 예산의 세부 내역은 구체적으로 공개돼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예산안에 백악관의 인태전략 조정 명목으로 전년보다 '추가'한 예산만 51만2,000달러(약 6억7,000만 원 상당)입니다. 백악관과 국방부와 국무부 등 주요 부처에 인태전략과 관련해 투입하겠다는 2024 회계연도 예산은 250억 달러(약 32조9,000억 원)에 달합니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인태전략을 발표한 프랑스는 대통령 외교안보 자문팀(직업공무원)에 '인태전략 및 대미외교정책' 담당을 마련하고, 지난 2020년 '인도태평양대사'직을 신설해 직업외교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미중 경쟁구도와 관계없이 "자국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93%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다"며 역내 해양안보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국제무역과 질서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자 중국과 일본, 미국 등 강대국과 더불어 패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국회 외교위원회의 '인태지역 스터디그룹'은 1~2주에 한 번씩 전문가를 초청해 자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인태전략에 대해 토의한다고 합니다.
한국은 인도태평양의 핵심 당사자입니다. 말라카해협과 대만해협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해상 교통로이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세력 균형은 안보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바꿔 말하면, 인태지역에서 한국이 영향력이 커져야 국가발전과 안정을 위한 단단한 버팀목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외교부는 이날 한국일보 기사에 "발표 3개월이 경과한 우리 인태전략 이행구조를 지난 정부의 특정위원회, 여 타국 사례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중장기 관련 예산 증액 편성을 위해 예산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좋은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들을 비교·분석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인태전략의 청사진은 나왔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철학과 포부를 듬뿍 담았습니다. 이제 누가, 가장 효율적으로 이를 실천해갈지 깊이 있게 고민해 진용을 완성하고 추진할 때입니다. 외교 구상이 그럴듯한 말이나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미 주변국은 우리보다 몇 걸음 앞에서 분주하게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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