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웹툰, ‘만가 왕국’ 일본까지 뿌리 내린 한류의 새 주자
네이버웹툰이 국외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마련한 창작 공간 플랫폼 캔버스에 묘한 작품 하나가 올라온 것은 2017년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해석한 판타지 로맨스 장르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러브 라인’을 이뤘다. 지난해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 인터내셔널의 ‘아이스너상’ 베스트 웹코믹 상을 받은 <로어 올림푸스>다. <로어 올림푸스>는 네이버웹툰의 국외 서비스 플랫폼 ‘웹툰’에 2018년 3월4일부터 정식 연재됐다. <로어 올림푸스> 수상 이후 외신들은 “케이(K)웹툰이 전세계를 겨냥하는 상품으로 성장하고 있다”(<파이낸셜 타임스>)며 케이팝·케이드라마에 이어 케이웹툰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로어 올림푸스>는 요즘 웹툰 시장의 화두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8조원 글로벌 만화 시장에서 케이웹툰을 주목하고 국내 시장 규모도 2020년(1조538억원)에 견줘 2021년 1조5660억원으로 48.6% 급증하면서 국내외를 통틀어 ‘잘될 작품’을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케이웹툰은 ‘만가(만화) 왕국’ 일본에도 깊이 뿌리내렸다. 카카오의 글로벌 만화 플랫폼인 픽코마는 지난해 전세계 만화 앱 매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연재작도 일본에서 티브이(TV) 애니메이션으로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네이버웹툰 <신의 탑> <갓 오브 하이스쿨> 등에 이어 카카오웹툰 <외과의사 엘리제>가 일본에서 16부작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케이웹툰은 2021년 일본과 북미에 절반 이상(62.4%, 2020년 47.5%) 수출되면서 전통 만화 강국을 위협하고 있다.
케이웹툰의 글로벌 성장은 웹툰 원작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한다. 2021년부터 제작사들이 웹툰 아이피(IP·지식재산)를 활용한 2차 저작물 제작을 본격화해왔다. 웹툰 <디.피.>(D.P.)를 창작한 김보통 작가는 최근 “웹툰을 만들어두면 프리퀄(전 이야기), 시퀄(뒷이야기), 스핀오프(파생 이야기), 영화, 후속 웹툰, 드라마, 뮤지컬로 만들어진다. 확장이 좋은 아이피”라며 “드라마 <디.피.>가 공개되고 나서 영화·드라마 제작사들이 각 회사가 보유한 아이피를 웹툰으로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많이 해왔다”고 말했다.
웹툰은 2006년 강풀 원작 영화 <아파트>로 물꼬를 튼 뒤로 드라마·연극·뮤지컬 등에 이어 최근에는 창극으로도 제작됐다. 여성 소리꾼들의 성장을 그린 웹툰이 원작인 창극 <정년이>는 지난달 국립극장에서 선보였다. 웹툰 <나빌레라>는 드라마와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영화 <승리호>처럼 드라마 제작과 동시에 웹툰을 만들어 화제성을 높이기도 한다. 웹툰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국내 드라마로 만들어진 데 이어 타이에서도 리메이크된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실패율을 낮출 수 있고 배우 섭외도 용이하다. 웹툰은 소재가 다양하다는 점도 드라마 제작사의 구미를 당긴다. 콘텐츠진흥원의 ‘2022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웹툰은 코믹+개그(38.8%), 액션(37.1%), 판타지(33.7%), 로맨스 판타지(32.8%), 드라마(31.5%)까지 장르가 다양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수업 이후 군사훈련을 받는 ‘기이한’ 내용의 <방과 후 전쟁활동>(티빙)을 비롯해 <조선변호사>(MBC) <모범택시2>(SBS) <신성한, 이혼>(JTBC) 등 독특한 소재의 웹툰 원작 드라마가 현재 방영 중이다. <이두나> <스위트홈2> <머니게임> <무빙> <택배기사> 등도 곧 찾아온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활성화되면서 유명 작가의 웹툰이 줄지어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웹툰 산업의 핵심 역할은 작가와 프로듀서가 한다. 콘텐츠진흥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웹툰 산업 종사자 중 작가·마케팅담당 등 웹툰 제작·홍보에 직접 관여하는 이들의 비율은 2021년 60%가량에서 지난해 70%를 넘어섰다. 그중에서도 작가(36.6%)는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한다. 콘텐츠진흥원의 설문조사를 보면, 웹툰 업계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신규 작가, 작품 발굴”(60%)이다. 신인 작가는 대체로 한 업체 소속 피디와 연을 맺으면 오래가는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로 2021년 현재 전체 웹툰 작가 9326명 가운데 한 업체와 독점 계약을 맺고 있는 이들은 절반을 훌쩍 넘는 5913명(63.4%)이다.
웹툰 작가들의 위상도 달라졌다. 영상화 작업이 중요해지면서 감각 있는 젊은 작가들이 뛰어들기 좋은 시장이 됐다. 콘텐츠진흥원의 ‘2022 웹툰 작가 실태조사’를 보면 조사에 응한 846명 중 30대 이상이 47.6%, 20대 이하가 33.1%였다. 여성 작가가 69%로 남성(31%)보다 갑절 이상 많았다. 2022년 7월 기준으로 1년 내내 연재한 웹툰 작가 중 연간 총수입이 5천만원 이상인 경우는 48.7%였다. 35.8%는 연 수입이 3천만~5천만원이었다.
웹툰 작가 시스템은 점차 분업화하고 있다.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는 작가가 많지만, 글(스토리+콘티)과 작화(데생, 선화)가 분리되는 추세다. 보조작가들이 배경(배경 제작, 배치, 보정) 작업을 하기도 한다. 콘텐츠진흥원 조사를 보면 보조작가를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웹툰 작가가 31.7%로 모든 작업을 혼자 하는 작가(35.1%)와 비슷하다. 제작사에 소속돼 일을 하거나, 보조작가로만 활동하기도 한다.
모든 웹툰 작가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불공정 계약에 시달리는 경우도 아직 많다. ‘2022 웹툰 사업체·작가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복수응답)를 보면, 국내 웹툰 작가 10명 중 6명이 업계 불공정 계약 행위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계약 체결 전 계약사항 수정 요청 거부(32.1%)나 특정 작가의 작품 등을 우대한 차별 경험(30.9%) 등이다. 작업과 휴식 시간이 부족하거나(83.6%) 경제적 어려움(82.7%)에 시달리기도 한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던 작가는 컴퓨터로 작업해야 하는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오랜 시간 문하생으로 지내다 데뷔하지 못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웹툰 업계 종사자의 20.5%를 차지하는 웹툰 프로듀서는 작가 못지않게 중요하다.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발견하고, 작가와 함께 새 작품을 기획하는 이들이다. 요즘은 2차 영상화 작업까지 신경써야 해 그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웹툰 프로덕션뿐 아니라 플랫폼 등 다양한 회사에서 웹툰 피디들을 보유하고 있다. 한 웹툰 업계 종사자는 “각 회사의 웹툰 피디 규모는 보안 사항에 가깝다. 대형 플랫폼의 경우 웹툰 피디 규모가 그 회사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말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디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 발굴 및 관리다. ‘웹툰’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웹툰 피디로 일해온,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툰사업실 한송이 피디팀장은 “신인 작가를 발굴해서 계약하는 일이 중요하다. 업무 외의 시간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품을 찾아 보며 좋은 작품과 작가를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오늘의 웹툰>에서도 신입 웹툰 편집자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인 작가를 발굴해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기뻐하는 장면이 나온다. 웹툰과 사정이 비슷한 웹소설을 담당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소속 김성현 피디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집필 스타일을 파악해서 그 리듬에 맞춰주는 것”이라고 했다. 작가들이 작업할 때 찾아가 힘을 주고 때론 어려운 일도 함께 해결하면서 안정적인 상황에서 작업할 수 있게 돕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다만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 레진코믹스 등으로 대표되는 대형 웹툰 플랫폼사들은 작가 경쟁이 드라마만큼 치열하지는 않다고 한다. <오늘의 웹툰>에는 다른 플랫폼 인기 작가를 데려오려는 갖가지 방법이 등장한다. 한송이 팀장은 “작가와 피디는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다. 피디는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기획 단계부터 작가와 논의하는 것은 물론, 작품이 영상화 등 2차 창작 작업으로 확장되도록 사업팀과 함께 다방면으로 지원한다. 그렇기에 전우애 같은 것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웹툰 <시동> 조금산, <경이로운 소문> 장이, <신성한, 이혼> 강태경, <샬롯에게는 다섯 명의 제자가 있다> 응용, <지옥사원> 네온비 등 여러 작가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다.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피디들은 경쟁사 작품도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웹툰을 웹소설로 혹은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될 작품을 찾는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웹소설을 담당하는 김수아 피디는 “조회수가 바로 나오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있지만, 독자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현 피디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면 이용자들의 취향을 따라갈 수 없다. 최근 핫한 콘텐츠는 죄다 섭렵해야 해 오티티의 다양한 작품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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