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주미공사 외교일기···국가기록원, 한미동맹 70주년 맞아 ‘미사일록’ 복원
“처음 조약을 맺을 때처럼 한결같이 영구히 친목하기를 바랍니다.”
1896년 10월14일 그로버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은 고종의 국서를 전달한 이범진 주미공사의 축사에 이 같이 답했다. 이 공사의 일기에 남아있는 장면은 이것 뿐이 아니다. 같은 해 7월16일 인천에서 프랑스 군함에 승선해 상하이, 요코하마, 벤쿠버 등을 거쳐 9월 9일 뉴욕에 도착한 뒤 워싱턴으로 이동해 미국 대통령을 만난 전후 과정들이 담겼다.
제9대 주미공사였던 이범진은 공사로 임명된 6월 20일부터 이듬해 1월 31일까지의 외교활동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당시 주미공사관의 이건호 서기관이 이를 전사(轉寫)한 원본이 ‘미사일록’(美槎日錄)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19세기 말 한미 외교사를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의 복원을 완료했다고 9일 밝혔다.
‘미사일록’에는 이범진 공사가 고종에게 위임장, 국서(國書), 국기(國旗)를 받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도착한 후 미국 대통령을 5번 접견하고 우정장관, 탁지대신을 만나는 등 현지 정치인과 활발하게 접촉한 내용이 적혀있다. 브라질·프랑스·에콰도르 공사를 만나고 칠레·청국 공사관의 다회, 연회에도 참석했다.
미국의 정치제도, 발전상, 대통령 선거 등 현지 상황과 뉴욕 도심의 일상,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에 대한 풍경도 기록했다. 부록에는 미국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연회의 좌석 배치도와 영어 단어, 일상 대화를 영어와 한자, 한글 순으로 표기한 연습장도 실려 있다.
국가기록원은 조선시대 일본과 친선 외교가 이뤄졌던 기록인 ‘일동장유가’도 복원했다. 1763년 8월 3일~1764년 7월 8일 계미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퇴석 김인겸(1707~1772)이 견문한 바를 기록한 장편의 국문가사다.
복원 전 ‘미사일록’과 ‘일동장유가’는 수침(水沈)에 의한 글자 번짐과 곰팡이 침식 등으로 내용을 판독할 수 없는 상태였다. 기록물 표면과 내부까지 침투한 곰팡이 등 오염 물질을 1년에 걸쳐 제거하고, 전통 한지로 지력(紙力)을 강화하고, 결실부를 보강해 가독성을 높였다고 기록원은 설명했다.
복원이 완료된 ‘미사일록’은 경기도 국가등록문화재 심의를 마치고 문화재청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일동장유가’는 지난해 11월 경기도 유형문화재 지정예고 후 5월 지정 공표 예정이다.
행안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창섭 행안부 차관이 ‘미사일록’과 ‘일동장유가’의 소장처인 단국대의 김수복 총장에게 복원물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은 2008년부터 역사적 가치를 지닌 국가기록물의 보존 수명을 연장해 후대에 전달될 수 있도록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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