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룰…류현진·김하성·배지환의 ‘새로운 무한도전’
(시사저널=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1893년 메이저리그는 투·포수 간 거리를 50피트(15.24m)에서 60피트6인치(18.44m)로 늘렸다. 에이모스 루지라는 투수가 나타나 너무 빠른 공을 던졌기 때문이다. 60피트가 아니라 60피트6인치인 이유는 투수판을 밟는 투수의 발의 볼까지 계산했기 때문이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1893년 이후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다. 베이스의 크기가 커지고, 수비수의 위치를 제한했다. 가장 큰 변화는 '피치 타이머'와 '견제 제한'이다.
KBO리그에는 투수가 12초 내에 던져야 한다는 12초 룰이 있다. 하지만 주자가 없을 때만 해당된다. 반면 메이저리그는 주자가 없을 때 15초뿐 아니라 주자가 있을 때도 20초를 적용한다. 정해진 시간 내 피칭을 시작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볼이 선언되고, 8초를 남기고 타자가 타격 준비를 하지 않으면 스트라이크가 선언된다. 또한 투수는 견제를 타자당 두 번밖에 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제 타자 1명에 견제 2번밖에 못 해
지난해 6월에 팔꿈치 수술을 받은 토론토 류현진은 7월15일 후반기 복귀를 노리고 있다. 투수는 견제구 제한으로 인해 도루를 허용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도루를 가장 내주지 않는 투수다. 1000이닝을 넘게 던지는 동안 허용한 8개의 도루는 같은 기간 독보적인 최소 허용 1위에 해당된다. 1루 주자가 공을 어디로 던질지 알기 어려운 투구폼을 가진 류현진은 견제구도 던지지 않고 주자를 묶기 때문에 견제구 제한은 오히려 류현진에게 유리하다.
변수도 있다. 다저스 시절 베테랑 포수인 러셀 마틴(은퇴)과 호흡이 딱딱 맞았던 류현진은 토론토의 젊은 포수들과는 그러지 못했다.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젓는 경우가 빈번했다.
피치 타이머는 투·포수의 사인 교환 시간을 줄였다. 하지만 류현진이 불리할 이유는 없다. 메이저리그는 지난해부터 '피치컴'이라는 전자 장비를 통해 포수가 사인을 보내고 있는데, 올해는 투수도 사인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볼 배합을 자신이 끌고 가는 류현진에게는 오히려 유리해진 상황이다.
15초·20초 룰이 생긴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투수를 걱정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타자가 더 쫓기는 모습이다. 타자는 타임아웃을 타석당 한 번밖에 부르지 못한다. 이는 타자들의 예측 시간을 줄임으로써,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를 예상하고 타격하는 '게스 히터'보다 공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치는 타자에게 더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비결 중 하나는 다양한 구종으로 다양한 코스를 공략하는 현란한 볼 배합이었다. 예측 타격이 줄어든다는 말은 타자의 예상을 빗나가는 공을 던지는 능력이 뛰어난 류현진에게는 좋은 변화가 아닐 수도 있다.
이번 WBC에서 나타난 것처럼 메이저리그와 세계 야구는 투수들이 수 싸움보다는 더 빠른 공과 더 강력한 구위로 타자들과 대결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2006년과 2009년 대회에서 우리 투수들이 빠른 공을 던지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럴 수 없는 환경이 됐다.
새로운 유형의 타자, 배지환은 콴이 될 수 있을까
올해 도입된 변화는 대체로 타자를 위한 변화들이다. 메이저리그는 경기시간을 줄이면서도 득점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동안 수비 시프트는 좌타자에게 더 큰 타격을 입혔다. 좌타자가 나오면 3루를 비워놓고 내야수들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당겨 친 타구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우타자가 나오면 1루를 비워놓고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유격수가 2루 베이스를 넘어가거나 2루수가 외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시프트 제한은 좌타자인 최지만과 배지환에게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견제구 제한과 베이스 크기 확대 역시 최고의 스피드를 가진 배지환, 지난 2년 동안 18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김하성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골든글러브 최종 3인에 들면서 유격수로 안착하나 싶었던 김하성의 경우에는 팀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도시 규모가 크지 않아 다른 종목의 경쟁 팀이 없고, 다저스라는 초인기 팀이 가까운 곳에 있는 샌디에이고가 스타 마케팅에 올인 중이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가 김하성이 있는데도 잰더 보가츠를 데려오고, 원래 2루수인 제이크 크로넨워스에게도 장기 계약을 주면서, 김하성은 시즌 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거나 내년 시즌 후 FA를 통해 유격수가 보장된 팀으로 떠나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가 되는 피츠버그 최지만 또한 시즌 중반 포스트 시즌을 노리는 팀으로 트레이드되면 몸값을 높일 수 있다.
역대 26번째 한국인 선수이자 11번째 한국인 야수로, 지난해 데뷔한 피츠버그의 배지환은 지금까지의 한국인 타자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이다. 추신수가 출루와 장타가 강점인 리드오프였다면, 배트 컨트롤과 스피드가 뛰어난 배지환은 전형적인 '올드 스쿨' 스타일의 1번 타자다.
올해가 만 23세 시즌인 배지환은 개막전부터 엄청난 활약을 했다. 2안타 2도루 2득점을 기록함으로써 개막전에서 멀티히트와 도루를 기록한 첫 번째 한국인 선수가 됐고, 개막전에서 도루 2개를 기록한 세 번째 피츠버그 타자가 됐다. 배지환은 4월5일 경기에서도 데뷔 첫 홈런을 보스턴 펜웨이파크의 11m 높이 그린몬스터 위로 날리더니, 2루수와 중견수 자리에서 한 번씩 호수비를 선보였다. 특히 2루타성 타구를 잡아낸 중견수 수비는 팀의 승리에 쐐기를 박은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메이저리그의 20-80 평가(20점은 수준 이하, 50점은 평균, 80점은 최상급)에서 60점을 받는 정확성과 70점을 받는 스피드가 자랑인 배지환은 메이저리그가 원하는 스타일의 타자다.
메이저리그는 40홈런과 200삼진을 기록하는 애덤 던보다 200안타와 40도루를 기록하는 스즈키 이치로 같은 유형의 타자를 바라고 있다. 배지환은 충분한 안타 생산만 가능하면 50개 도루도 기대할 수 있는 타자다.
미국 태생이지만 아버지가 중국계이고 어머니가 일본계인 스티븐 콴(클리블랜드)은 지난해 168개의 안타와 0.298의 타율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3위에 올랐다. 배지환은 피츠버그의 콴이 돼야 한다.
14년 만에 세 번째 WBC 우승을 차지한 일본팀에선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오나티 쇼헤이(LA 에인절스), 라스 누트바(세인트루이스) 등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결정적인 활약을 했다. 또한 이번 대회를 통해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릭스),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 등이 메이저리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자국 야구의 수준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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