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처분소득’ 늘어났나요…윤 정부 재정정책 걱정인 이유

한겨레 2023. 4. 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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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의 나라살림][한겨레S] 이상민의 나라살림
서울 중구 만리동1가 만리동공원에서 한 노숙인이 그늘을 찾아 짐수레를 끌며 이동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다음달이면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된다. 윤석열 정부 1년 평가 전에 이전 정부 평가를 해보자. 정부 정책은 달리는 기차를 멈춰 세워 고쳐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기차가 어떤 속도로, 어떤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는지부터 분석해야 한다.

경제 성장률, 수출 증가율, 물가 상승률, 투자 증가율, 국가 부채 등이 있지만 모든 국민이 합의할 수 있는 평가 지표는 없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가 좋은 지표 10개만 취사선택해서 나열하면, 문 전 대통령은 ‘성군’이 된다. 반대로 나쁜 지표 10개를 취사선택해서 나열하면 ‘폭군’이 된다. 지표 하나만 꼽아서 평가하라면 나는 소득 분위별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변화를 분석하겠다. 문재인 정부 때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소득이 각각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분석해보자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을 공급자 마인드로 평가하면 안 된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실질 소득이 얼마나 증대되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그것도 각 소득 계층별로 나눠서 평가해야 한다.

시장소득·가처분소득의 함수관계

문 정부 첫해인 2017년 우리나라 중위(3분위) 가구는 시장에서 연간 2773만원을 벌었다(균등화 가구소득 기준). 5분위(상위 20%) 가구소득은 7514만원이다. 반면 1분위(하위 20%) 가구소득은 연 667만원에 불과했다.

4년 뒤인 2021년 3분위 중위소득 가구의 소득은 4년간 16% 증가했다. 이제는 3221만원을 번다. 3분위 중위소득 가구의 시장소득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그다음은 4분위(15.9%), 2분위(15.3%) 차례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소득 증가는 4년간 11.8%에 그쳤다. 중산층 소득이 가장 빠르게 증가해서 중산층이 두터워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저소득층인 1분위 소득이 가장 적게 증가했다는 점은 부정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구의 시장소득으로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가구의 실질 소득은 시장소득이 아니라 가처분소득이기 때문이다. 2021년에 700만원을 벌었다면 하위 20%에 속한다. 생활이 어렵다. 그러나 국가가 돈을 보태줘서 실질 소득이 1200만원이 됐다면, 국가 덕분에 실제 쓸 수 있는 돈도 700만원이 아니라 1200만원이 된다. 소득 상위 계층은 반대다. 시장소득에서 세금 등을 제외하면 가처분소득은 줄어든다.

정부가 근본적인 산업구조나 경제체질 자체를 변혁하기 전에는 가구의 시장소득을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5년짜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종 재정정책이다. 세금과 복지정책을 통해 소득불균형을 해소하고 국민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이제는 문재인 정부 시절 가처분소득의 변화를 살펴보겠다. 2017년 중위소득 가구는 시장에서 2773만원을 벌었지만 세금을 내고 난 가처분소득은 2653만원으로 줄었다. 2021년 중위소득 가구는 시장에서 3221만원을 벌었고 가처분소득은 3172만원이었다. 시장소득이 16.2% 증가하는 동안 가처분소득은 19.6% 증가했다. 중산층의 실질적인 삶의 질은 정부 덕에 더 상승한 셈이다. 1분위 가구를 보자. 4년 동안 시장소득이 11.8% 증가하는 동안 가처분소득은 무려 32.9%나 증가했다. 이 정도면 괄목할 성과다.

같은 기간 5분위(소득 상위 20%) 시장소득은 14.3% 증가했지만 가처분소득은 13.7% 증가에 그쳤다. 세금 등의 재정제도를 통해 소득 불평등이 해소됐다는 얘기다. 결국 4년간 가처분소득 증가율을 보면 1분위(32.9%)>2분위(22.9%)>3분위(19.6%)>4분위(17.4%)>5분위(13.7%) 차례다. 5분위를 제외하고 1분위부터 4분위까지 시장소득 증가율보다 가처분소득 증가율이 더 높다. 그것도 소득이 낮을수록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더 높게 나타나서 시장에서의 불평등도를 효과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이렇게 하위 가구의 가처분소득부터 차례대로 증가했으니 ‘에이플러스’(A+) 성적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와 동일하게 가처분소득의 불평등도가 지속해서 완화됐다.

아직도 부족한 재정정책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시장소득의 상대적 빈곤율은 21%다. 중위소득 50% 이하 빈곤선 이하 가구 비율이 21%라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은 27%, 영국은 28%, 독일은 32%, 프랑스는 37%다. 북유럽 핀란드도 무려 34%가 빈곤선 이하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북유럽 국가보다 더 평등한 나라일까? 갑자기 ‘국뽕’이 차오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2019년 가처분소득 빈곤율은 16%다. 시장소득 빈곤율 21%보다 조금 줄어들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감소 폭이 더욱 크다. 시장소득 빈곤율 37%였던 프랑스는 가처분소득 빈곤율이 8%로 뚝 떨어졌고, 핀란드(34%→6%), 독일(32%→11%), 영국(28%→12%)도 그랬다. 시장소득 빈곤율 27%였던 미국의 가처분소득 빈곤율은 18%였다. 많은 나라들이 재정정책을 통해 시장에서 발생한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중위소득자 시장소득은 가장 빠르게 증가했고 저소득 계층의 가처분소득은 가장 많이 증가했다. 이는 국가의 재정이 효율적으로 일을 했다는 얘기다. 우리가 낸 세금이 효율적으로 쓰였다니 매우 좋은 신호다. 그러나 이는 문재인 정부만의 업적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도 동일하게 진행된 변화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를 지나면서 그래도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이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우리나라는 아직 좋은 나라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재정의 역할이 가장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프랑스는 시장에서의 빈곤율을 국가 재정을 통해 5분의 1 수준으로까지 떨어뜨렸다. 우리나라가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이제 윤석열 정부가 행정부를 맡은 지 1년이 되어간다.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확대한다고 말한다. 이전 정부에서 지속됐던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 증가 현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걱정이 든다. 그동안의 더딘 전진이 더 빨라질지 아니면 후퇴할지 앞으로 4년간 지켜볼 것이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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