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만들면 'MR 헤드셋'도 다를까
시장 선점하려는 애플
문제는 비싼 제품 가격대
킬러 콘텐츠 부족도 해결해야
애플의 MR 헤드셋 흥행할까
# 애플이 조만간 새로운 헤드셋을 출시할 거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김새가 평범한 헤드셋과는 좀 다릅니다. '혼합현실'이란 생소한 기술을 탑재한 헤드셋이기 때문입니다.
# 이게 대체 뭐기에 애플이 새 먹거리로 낙점한 걸까요? 이 제품으로 애플은 또한번 흥행 신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비밀에 싸인 애플의 신제품을 들춰봤습니다.
"혼합현실(Mixed Reality·MR) 헤드셋은 연결과 소통을 위한 도구가 될 것이다." 팀 쿡 애플 CEO가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매거진 GQ와의 인터뷰에서 신제품인 'MR(Mixed Reality) 헤드셋(가칭)'에 관해 입을 열었습니다.
업계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MR 헤드셋 이야기를 애플이 공식적으로 꺼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오는 6월에 열리는 '세계개발자대회 2023(WWDC 23)'에서 애플이 MR 헤드셋을 공개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애플은 MR 헤드셋 개발에 상당한 공을 기울여왔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MR 헤드셋 개발 기간은 7년입니다. 아이폰1 개발 기간의 2배에 달하는 기간입니다. 기술 완성도와 디자인 문제로 출시가 매년 미뤄졌지만, 올해엔 론칭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지난 3월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팀 쿡 애플 CEO가 MR 헤드셋 출시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애플은 지난 3월 26일 자사 임원 100명을 대상으로 MR 헤드셋을 시연하는 비공개 행사도 가졌습니다.
올해 애플이 이 제품을 론칭한다면 2020년 출시한 무선 헤드셋 '에어팟 맥스'에 이어 3년 만에 신제품을 선보이는 셈입니다.
스마트폰·이어폰을 만들던 애플이 새 먹거리로 MR 기기를 꼽은 건 왜일까요. 먼저 MR이 어떤 기술인지부터 살펴봐야겠죠. MR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과 연관이 깊습니다.
VR은 온라인 속 가상의 공간에서 콘텐츠를 즐길 때 쓰는 기술이고, AR은 현실에 가상의 콘텐츠를 덧씌우는 데 주로 쓰이죠. 이러한 두 기술의 장점을 한데 모은 게 바로 MR입니다.
MR을 통해 이용자는 실제 세상과 디지털 세계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환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MR로 자동차 게임을 즐긴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게임에서 디지털로 만들어진 자동차는 현실의 지형지물을 인식해 주행할 수 있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땐 속도가 느려지거나, 장애물에 부딪히면 차가 멈추는 등 실제 주행하는 것과 흡사한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AR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네, 일정 부분 맞습니다. 다만, MR은 현실과 좀 더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진화한 버전의 AR'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합니다.
MR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MR에 접속하기 위한 전용 기기가 필요합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건 삼성전자가 2018년 출시한 '오디세이플러스'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2019년작 '홀로렌즈2'입니다.
하지만 두 기기는 별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홀로렌즈2의 경우, 2021년 판매량이 20만대에 그쳤죠. 저조했던 성적 때문인지 MS는 지난 2월 10일 홀로렌즈 부서 인원을 감축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MR 시장이 설익었다고 보는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MR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는 2017년 4680만 달러(614억원)였던 MR 시장 규모가 2025년 36억8830만 달러(4조8449억원)로 78.8배 커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MR 시장이 곧 폭발적으로 성장할 거라고 내다본 셈입니다.
이 때문에 애플이 이 시점에서 MR 헤드셋 출시를 서두르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여기엔 시장 지배자가 없는 지금 MR 헤드셋을 하루빨리 론칭해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입니다.
■ 과제➊ 비싼 가격 = 그럼 애플이 선보이는 MR 헤드셋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를 가늠하려면 먼저 앞서 언급했던 MR 기기들이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존 MR 기기의 가격은 무척 비쌉니다. 산업용으로 출시한 MS의 홀로렌즈2의 가격은 3500달러(459만1650원)에 달합니다. 개인이 취미로 즐기기엔 분명 부담스러운 가격대죠.
삼성전자의 오디세이플러스도 2018년 당시 가격이 499달러(65만4787원)로 저렴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VR기기 개발 업체 '브이리스브이알'의 권종수 대표는 "VR이든 MR이든 관련 시장이 성장하려면 기기가 충분하게 보급돼야 한다"면서 "소비자가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가격대를 책정하는 게 현재 제조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아직까진 기술 수준이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확한 스펙이나 가격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업계에선 애플의 MR 헤드셋 가격이 3000달러(393만4800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메타의 인기 VR 헤드셋 '퀘스트 프로'의 가격(999달러)보다 3배 가까이 비쌉니다.
경쟁 제품이기도 한 퀘스트 프로가 지난해 960만대가 팔렸던 점을 고려하면 3배 비싼 애플의 신제품이 이보다 많이 팔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참고: MR 기기는 VR 콘텐츠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기술을 탑재한 덕분입니다. 퀘스트 프로를 애플 MR 헤드셋의 경쟁 제품으로 언급한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 과제➋ 콘텐츠 부족 = 소비자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전용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도 애플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현재 MR 기기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제한적입니다. MR 기기 제조사들이 자체 제작한 간단한 게임이나 VR 게임을 이용하는 게 전부죠.
소비자 수요를 높이려면 현실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MR 기기의 매력을 십분 활용한 콘텐츠가 꼭 필요한데, 이런 '킬러 콘텐츠'가 아직까진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MR 헤드셋이란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만으론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분간은 콘텐츠 없이도 소비자들이 쓸 수 있도록 MR 헤드셋의 기능을 다양화해야 한다"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아이폰도 처음엔 앱이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앱 생태계가 아이폰을 통해 처음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 전까진 애플은 아이폰의 전화·문자·사진 등의 기술력으로 판매량을 늘려나갔다. MR 헤드셋도 마찬가지다. 대중화하기 전까지 버틸 수 있는 자체 콘텐츠가 많아야 한다."
물론 흥행 신화를 써 내려온 애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MR 헤드셋을 출시하진 않을 겁니다. 아이폰·애플워치(스마트워치)·에어팟(무선 이어폰) 등 애플은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역대급 흥행 성적을 거둬왔으니까요.
아이폰은 '스마트폰의 기준을 만든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고, 에어팟은 수요가 거의 없던 무선 이어폰 시장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제품이었죠. 어쩌면 애플은 이번에도 'MR 산업을 열어젖힌 선구자'란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 MR 헤드셋은 기대보단 우려가 앞섭니다. 기술 한계로 인한 비싼 가격, 부족한 킬러 콘텐츠 등 MR 산업에 놓인 숙제가 너무나 무겁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난다 긴다'하는 애플이라도 해결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과연 애플의 신제품은 이번에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까요? 아직은 좀 더 지켜볼 일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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