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길복순' 감독의 '일베 논란', 어떻게 봐야할까

정유진 기자 2023. 4.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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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현 감독/넷플릭스 제공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 '킹메이커'에는 우리나라 지역 감정의 시초를 설명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1970년대, 당시 젊은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분)을 국회의원으로 만든 선거 캠프 참모 서창대(이선균 분)는 김운범과의 가치관 차이로 끝내 그의 선거 캠프에서 나와 여당과 손을 잡는다.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김운범을 잡기 위한 여당의 책략은 '지역 감정'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호남향우회'의 이름으로 뿌려진 전단지는 그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지역 감정'을 조장했다. 김운범이 대통령이 될 경우 다른 지역이 정책적으로 소외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TV와 방송에서는 갑자기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들이 악역으로 등장해 미움을 받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는 서창대가 직접적으로 여당 선거 전략가들에게 조언하는 내용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극의 말미 여당 선거 전략가 이실장(조우진 분)과 서창대의 대화에서 독재체제의 연장으로 이어지는 데 일조한 여당의 마타도어가 모두 서창대의 작품임을 시사한다.

'킹메이커'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60, 70년대 그의 선거 캠프 참모였던 엄창록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영화 속 김운범은 김 전 대통령, 서창대는 엄창록을 형상화한 인물이다. 영화는 '수단의 정당성'을 두고 갈등하는 김운범과 서창대의 모습을 대조하며 '정치'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김운범은 빛으로, 서창대를 그림자로 표현되며 사실상 끝까지 대의를 지킨 김운범을 존경받는 인물로, 서창대를 어그러진 한국의 현대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낸다.

이 영화를 만든 변성현 감독은 최근 때 아닌 '일베'(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신작인 넷플릭스 '길복순'에 등장한 몇 장면 때문이다. 엄마이자 A급 킬러인 길복순(전도연 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는 청부살인전문 회사 MK엔터테인먼트 대표 차민규(설경구 분)가 킬러들에게 임무가 담긴 봉투를 전달한다. A급 킬러에게는 '도시명-국가명'이 적힌 봉투, 그밖의 하급 킬러들에게는 '도시명-지역명'이 적힌 봉투가 전달되는데 하급 킬러에게 전달되는 봉투에 '순천-전라'라는 이름이 붙은 봉투가 전달된 게 문제였다. 이를 두고 일부 누리꾼은 전라도 지역을 따로 분리해 표현하는 것이 '일베' 특유의 비하 방식이라면서 변 감독이 '일베'라고 주장했다. 하필 '서울-코리아' 봉투에는 파란색 씰이, '순천-전라'에는 빨간색 씰이 붙어있었던 것도 논란을 부추겼다.

영화 '길복순' 스틸 컷

봉투가 급이 나뉘어져 전달된 것을 인지하지 못한 일부 관객들은 '서울은 코리아인데 순천은 왜 코리아가 아닌 전라도 소속으로 표현되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이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순천-전라'를 '일베적인' 표현이라고 추측하는 것도 다소 성급하지만 가능하다. 그러나 배급사와 이를 연출한 변 감독이 한 해명을 한 이후에는 과연 앞서 내린 판단이 합리적이었던 것인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길복순'을 공개한 넷플릭스 측은 A급 킬러는 글로벌 업무를 하기에 국적이 표시된 봉투를 봉투를 받지만, C급 킬러는 국내 업무만 하기에 국가 표시 없이 지역으로 표시된 봉투를 받는다고 해명한 바 있다.

변성현 감독 역시 뉴스1과 인터뷰에서 "거기(봉투에) 써있는 지역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 것을 컨펌하지 않는다"면서 봉투에 표시된 글은 미술팀이 준비한 소품임을 밝혔다. 이어 "미술감독님과 연출팀이 내게 너무 미안해 하더라, 왜 하필 골라도 그렇게 골랐는지, 미술 감독님 고향이 충청 예산이다, 미술 감독님에게 '본인 고향으로 하시지'하면서 우스갯소리도 했다, 너무 미안해 하시더라"면서 도리어 '일베'로 낙인 찍힌 자신을 탓했다.

이번에 변 감독이 '일베'라는 의심을 받게 된 데는 과거 트위터에 쓴 글로 논란이 됐던 전적이 한 몫했다. 변성현 감독은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개봉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한 이전 발언들로 인해 '일베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문제가 된 발언은 "데이트 전에 홍어 먹어라, 향에 취할 것이다" "이게 다 문씨 때문이다" 등이었다. 진보 정당 소속 정치인을 비난했을 뿐 아니라, '일베'에서 전라도 지역을 비하하는 데 쓰는 '홍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게 그가 '일베'라고 몰린 이유였다. 이후 변 감독은 "아무 생각 없이 적었던 저속한 발언으로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사죄드린다, 다만 지역차별주의나 여성차별주의자는 결고 아니다, 내 고향은 전라도이며 특정 지역과 여성 비하를 일삼는 사람들을 가장 혐오한다"고 해명한 바 있다.

확증편향을 막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감안해 귀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변성현 감독이 '일베'라는 결론을 전제해 두고 이를 증명할만한 내용만을 골라 모은다면 '길복순' 속 봉투 표현이나 그의 SNS 발언은 그럴듯한 근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입견을 내려두고 변 감독이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지역감정이 사실상 정치인들이 사용한 선거 전략이었음을 보여주는 영화를 연출한 사람이며, '홍어'라는 표현의 새로운 의미보다 본래의 의미에 더 익숙한 전라도 출신인 사실을 고려한다면 결론은 다르게 도출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정치적 성향에 속해있든 정치인 개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게 할 수 있지 않나. 적어도 '일베'라는 판단을 유예할 근거는 충분하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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