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1세대' 최선배 80세에 日 투어…"트럼펫이 내 삶의 전부"
정해진 곡 없는 '프리 재즈'의 대가…"숨겨진 내면세계 풀어내는 것"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지금 와서 생각하면 (트럼펫은) 인생의 전부지. 뭐 다른 걸 해 본 적도 없고, 다른 걸 할 능력도 안 되고."
올해로 만 80세를 맞은 이 베테랑 트럼펫 연주자는 왕성하게 해외 투어 콘서트까지 하는 비결을 묻자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답했다. 두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고,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흰 수염과 검은 중절모는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바로 한국 '재즈 1세대' 연주자 최선배 이야기다.
지난달 일본에서 11개 도시를 순회하는 재즈 콘서트 투어를 성황리에 마치고 돌아온 그를 최근 서울 서초구 그의 연습 스튜디오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최선배는 "2019년에 일본 콘서트를 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4년 만에 다시 연 것"이라며 "오랜만의 해외 공연이라 긴장해서 그런지 힘든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0년에도 사실 (신보) 녹음과 연주 계획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다 망가졌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어느 정도 풀리니 스케줄 밀린 게 전부 몰리더라. 일본 11개 도시 투어 역시 요청이 온 것보다 그나마 줄여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투어를 통해 도쿄, 요코하마, 지바, 나고야, 오사카, 교토, 히로시마, 후쿠오카 등 일본 주요 도시를 훑었다. 정해진 곡 없이 그의 장기인 '프리 재즈'로 100% 진행했다.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가려다 조난을 당해 유명을 달리한 이들을 기리는 후쿠오카의 '조선인 조난자 위령비'를 찾아 마음을 다한 트럼펫 연주로 선조들의 넋을 달래기도 했다.
최선배는 "관객과 인사한 뒤 대화를 나누듯이 동료 연주자와 교감하며 공연을 진행했다"며 "정해진 박자 없이 그냥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곡 길이도 정해진 것이 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분위기를 탄 뒤 교감을 통해 소리를 점점 줄여 끝을 맺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도 코로나19로 공연이 막혔다가 오래간만에 풀리다 보니 예전보다는 분위기가 덜 활성화된 느낌은 있다"며 "그래도 재즈 마니아층이 많아서 (공연) 여건이 우리나라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가 재즈 트럼펫 연주자의 길로 들어선 건 지금으로부터 59년 전인 1964년, 그 시절 여느 대중음악인들이 그랬듯 미8군 무대를 통해서였다.
이보다 앞서 국민학생 시절 AFKN(주한미군 라디오 방송)에 흘러나온 재즈와 올드 팝을 듣고 매료돼 각종 음악을 탐닉했다. 입대 전 서울에 올라와 모아 놓은 돈으로 트럼펫을 사서 독학으로 연주법을 터득했다. 군대에서는 해병대 군악대로 복무했다.
"전역 후 처음에는 해병대 선후배끼리 모여 악단을 조직해서 미8군 오디션을 봤어. 1963년에 전역하니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거야. 그 시절 서독 파견 광부를 모집하길래 가려고 했는데, 군악대 선배들이 악단을 조직해서 미8군으로 가자길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참여했지."
최선배는 "당시에는 거창한 연주자로서의 목표보다는 일단 입에 풀칠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나뿐만이 아니라 그 시절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음악인이 생계형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시절 미8군에서 함께 활동한 이들이 현미, 한명숙, 김시스터즈 등 K팝의 주춧돌을 닦은 디바들이었다. 어렵던 시절이었기에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푸짐한 햄버거와 각종 먹거리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고 했다.
그는 이후 방송국 전속악단 등으로 활동하다 1978년 강태환(색소폰)·김대환(드럼)과 함께 3인조 '강트리오'를 결성하면서 프리 재즈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최선배는 "당시 명동 로얄 호텔 라운지에서 손님이 없을 때 간간이 프리 재즈를 연습했다"며 "그때는 듣는 이들이 그게 재즈인지 뭔지도 몰라서 '그것도 음악이냐'라며 시끄럽다고 했다"고 떠올리며 웃었다.
그러면서 "일반 클래식이나 재즈는 테마가 있지만, 프리 재즈는 그것을 벗어나 (즉흥적으로) 숨겨진 내면의 세계를 풀어내는 것"이라며 "미술로 말하면 피카소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이단 취급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류라는 말이 생겨나기 십수 년 전인 지난 1985년, 그의 공연을 눈여겨본 어느 일본 재즈 평론가의 초청으로 현해탄을 건너 첫 해외 콘서트를 했다. 이후 반응이 좋아 일본에서 매년 공연을 열었고, 국내에서 IMF 한파가 몰아치던 1998년에는 일본에서 첫 음반 '프리덤'도 냈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는 한국과의 재즈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였어. 그때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는 재즈가 없다고 생각했었지. 워낙 알려진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일본은 1970∼80년대 경제 호황을 겪으면서 방방곡곡 재즈 클럽이 활성화돼 있었더라고."
최선배는 "그래도 요즘은 일본과의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하며 뿌듯해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그는 요즘도 매일 지하철을 갈아타고 서초구 연습실에 오간다. 여든의 나이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루 서너시간 연습에 매진한다. 호흡이 중요한 트럼펫이기에 평생 담배는 입에 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프리 재즈의 대가에게 초심자로서 어떻게 하면 잘 즐길 수 있는지 물었더니, "이해하려 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뭘 애써서 이해하려고 그래요. 바람이 불 때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따로 생각하지 않잖아요? 재즈도 그처럼 느낌 드는 대로 생각하는 게 가장 받아들이기 쉬울 겁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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