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 무비] ③'칠드런 오브 맨'과 인구소멸 위기의 전북
[※ 편집자 주 = 영상이 문자를 압도하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연합뉴스는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시대에 발맞춰 전북지역 현안과 사건·사고를 톺아보고 이를 영화, 문헌과 접목해 인문학적 고찰을 시도하는 기사를 2주에 한 번씩 10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멕시코 출신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6년 SF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인류의 아이)'은 세계의 종말과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불임과 연이은 테러로 암울한 2027년 11월 영국 런던.
세상에서 가장 어린 18살 소년 디에고가 숨졌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시민들은 슬픔에 빠진다. 인류의 절망은 깊어져 가고 전 세계에는 난민이 넘쳐난다.
2009년쯤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여성들은 임신할 수가 없다. 불임의 시대이자 인류 멸망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온다.
전 세계는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고 영국은 8년째 이민 봉쇄 정책을 펼친다.
'푸지'라고 불리는 불법 이민자들도 넘쳐난다. 경제적 불평등과 부의 초양극화는 극에 달한다.
기득권자들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를 즐긴다. 2등 국민은 무기력하게 살거나 절망에 지쳐 자살한다. 정부가 자살 약을 권장할 정도의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한때 사회변혁을 꿈꾸는 운동권이었으나 무기력한 공무원으로 살고 있는 테오(클라이브 오언)에게 전 부인이자 이민자 권익보호단체인 피시단 리더 줄리언(줄리언 무어)이 20년 만에 접근해온다.
줄리언은 '푸지'인 흑인 소녀 키(클레어-홉 애시티)를 해안가까지 데려갈 수 있게 여행증 발급을 도와달라고 제안한다.
놀랍게도 키는 기적적으로 임신한 상태다. 인류 희망의 상징인 셈이다.
영화는 인류 불임과 키의 임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줄리언은 과학자들이 인류 문명 복원을 위해 꾸리고 있다는 휴먼 프로젝트에 키를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피시단 내부의 분열로 줄리언은 살해된다.
결국 키는 테오에게 맡겨진다.
테오가 키를 휴먼 프로젝트로 인도해주려 동분서주하는 와중에 키는 매트리스 하나만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여자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전쟁터에서 아이가 울자 정부군과 반군은 생명의 경이로움에 '사격 중지'를 연신 외치며 테오에게 길을 터준다. 군인들은 성호를 그으며 새 생명에 감격을 감추지 못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이렇게 아기는 세상을 구원할 빛이 된다.
'칠드런 오브 맨'은 작가 필리스 도로시 제임스가 1992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자는 영화 초반 강아지를 들고 18세 소년 디에고의 죽음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는 사람으로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영화 중반 줄리언이 피시단 동료들의 총격을 받아 숨지는 장면이 5분가량 롱테이크로 이어진 뒤 영화 끝 무렵 10분이 넘는 롱테이크 전쟁 장면은 백미로 꼽힌다.
'칠드런 오브 맨'이 다룬 암담한 미래, 디스토피아의 서사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주제가 아닌 탓에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영화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인구 소멸을 묘사했으나 우리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국내 인구가 역대 최대 폭으로 줄었다. 인구는 3년 연속 감소했다.
2002년 이후부터는 합계출산율이 1.3명 이하인 초저출산 단계로 진입했다.
전북도는 2021년 인구 180만명이 무너진 데에 이어 170만명 유지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지난 2월 현재 전북 인구는 176만 6천524명으로 집계됐다.
전북연구원은 전북 인구가 2047년에는 158만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2021년 전북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는 7천475명으로 1년 전보다 8%인 623명이 줄었다.
1천명당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조출생률은 4.2명으로 전국 평균 5.1명보다 1명가량 적은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은 0.85명이다. 여성이 가임기간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0년 대비 2020년 출생아 수 감소율은 전국 42.1%, 전북 49.1%로 전북이 7.0%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나 전국 평균보다 전북의 출생아 수 감소가 더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전북연구원은 저출산 영향 요인으로 가임기 및 주 출산 연령의 여성인구 감소, 만혼화, 결혼 선호 가치관 감소, 자녀 선호 가치관 감소, 난임 증가, 양육 인프라 취약, 고용불안 및 일·가정양립 어려움, 주택 마련의 어려움 등을 꼽았다.
저출산은 지자체의 존립을 흔든다.
고령화로 '먹을 입'은 많은데 노동 인구가 없으니 생산 감소→소득 감소→소비 위축→경제 불황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지자체 전체가 성장동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늙고 쪼그라드는 전북은 현실이 되고 있다.
키를 돕던 조산사는 "놀이터에서 나는 소리가 줄어들자 절망이 드리우더군요. 아이들 소리가 없는 세상은 정말 이상해요. 난 그 끝자락에 있었어요"라고 읊조리자 테오는 "이제 곧 시작점에 서 있겠죠"라면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북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지자체별로 앞다퉈 내놓은 현금지원 위주의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판을 뒤엎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점이다.
※ 참고 문헌 : 전북연구원(연구진 조경욱·전아람) '전라북도 저출산 정책수요 및 대응방안 연구'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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