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하늘에 나타난 섬광의 주인공을 찾아서[코스모스토리]
빛이 없는 깜깜한 지역에서 하늘을 바라본다면 쏟아져 내릴 정도로 무수한 별들이 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짝이는 하나하나의 점으로 이뤄진 그 황홀한 모습은 인류 역사속에서 다방면으로 해석되고 활용되면서 인류의 호기심을 자극해왔습니다.
밤하늘에서 보이는 별들 중 가장 밝은 별은 무엇일까요? 그 주인공은 지구에서 약 8.59광년 거리에 위치한 쌍성계 별인 시리우스입니다. 밝기가 -1.5등성으로 태양계 천체를 제외하면 밤하늘에서 보이는 천체중 가장 밝은 별 입니다.
그렇다면 지구에서는 항상 시리우스가 가장 밝은 별로서 밤하늘을 밝혀왔을까요? 고려시대 역사속 한순간 만큼은 밤하늘 밝기의 양상이 달랐을 것입니다.
11세기 지구에 도달한 별빛…고려시대 한반도 포함 동북아 전역에서도 관측
1054년 7월 4일. 지구에 유래없이 밝은 섬광이 도달합니다. 이 빛은 밤하늘의 일부분을 환하게 비춰줄 정도로 밝았고 인류에게 새로운 메시지 또는 재앙을 암시하는 현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기이했습니다. 심지어 낮에도 이 별빛이 보일 만큼 밝아 사람들에게는 경이로움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끼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 천문현상은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송사(宋史)와 송회요(宋會要)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至和元年五月己丑,出天關東南,可數寸,歲餘稍沒。- 송사 56권 (천문지)
지화 원년 5월 기축일(양력 1054년 7월 4일), 천관(天関, 황소자리 제타, 지구에서 약 417광년 떨어진 항성)에서 동남쪽으로 수 촌 떨어진 곳에 (섬광이) 나타났으며, 1년 남짓한 기간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嘉祐元年 三月)辛未,司天監言:自至和元年五月,客星晨出東方守天關,至是沒。- 송사 12권 (인종본기)
(가우 원년 3월)신미일(1056년 4월 6일), 사천감이 아뢰었다. "지화 원년 5월에 객성이 새벽 동녘 천관 즈음에 나타났는데, 이제 없어졌습니다."
初至和元年五月晨出束方守天閥亶鬼鈿尺白芒用四出已亦白凡兄一十三日 - 송회요집고(宋会要辑稿)
"처음엔 지화 원년 5월 새벽 동녘에 나타나 천관 옆에서 마치 하얀자개처럼, 빛살이 사방으로 퍼졌고, 색은 붉고 희며, 13일동안은 낮에도 보였습니다."
중국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주의(奏議)'라고 하는데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의 명령으로 1416년에 간행된 '역대명신주의(歴代名臣奏議)'에도 위의 내용과 같은 천문현상에 대한 내용이 수록돼 있습니다.
이때 당시에는 우리나라도 고려시대 문종 때였는데요. 별자리 등 천문현상을 기록하던 시스템이 존재했었음에도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같은시기 고려사절요 문종 갑오 8년(1054)의 기록에도 해당 천문현상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몽고병란 때 고려 서고가 불타 소실되면서 천문현상에 대한 기록을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외에도 같은 시기 기록된 내용이 매우 부실한 점으로 보아 해당 내용을 뒷받침합니다.
섬광의 주인공은 초신성 폭발
그렇다면 이 밝은 섬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천문학자들은 초신성 폭발로 인해 발생한 빛으로 규정했습니다. 초신성 폭발은 별의 진화 단계에서 마지막에 해당하는 단계로 핵융합을 일으키던 별이 연료고갈로 폭발하면서 엄청난 에너지와 여러 물질을 내뿜는 현상을 말합니다.
SN1054(Supernova, 초신성 폭발)로 일컬어지는 이 섬광은 기원전 5500년 경 '게성운 자리'에 있었던 항성이 폭발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이때 발생한 빛이 6500년 동안 우주공간을 이동해 1054년 7월 4일 지구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섬광의 최대밝기는 -6등성으로 밤하늘의 금성과 비슷한 수준에 달해 육안으로 지구의 여러 곳에서 쉽게 관측이 가능했습니다.
초신성 폭발로 생겨난 게성운은 수천년 동안 에너지와 먼지가 우주공간으로 퍼져나가면서 그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게성운은 중심부분에는 밝은 청색 빛을 내며 주변에는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이는 빛의 확산 방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에너지와 물체들이 전방위로 확산할때 지구의 입장에서는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가스·먼지가 있을텐데요. 이때 지구로 향해 다가오는 물체에는 청색편이(물체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파장이 짧아져 파란색을 띄는 현상)가 발생하고 반대로 지구에서 멀어지는 물체에는 적색편이(물체 거리가 멀어지면서 파장이 길어져 붉은색을 띄는 현상)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여러색깔의 모습을 띄게 됩니다.
또한 게성운은 메시에1(Messier 1)이라고도 부르는데요.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가 1771년 혜성을 탐색하는데 방해가 되는 천체들의 모아 메시에 목록 약 110개를 지정했는데 가장 먼저 지정한 것이 바로 게성운입니다.
초신성 폭발, 최근에도 일어날 뻔?…베텔게우스 해프닝
지구에서 700광년 떨어진 오리온 자리에 위치하는 적색 초거성 '베텔게우스'. 태양 질량의 20배, 800배에 달하는 지름을 가진 이 천체는 수소 핵융합을 끝내고 헬륨을 연소하며 부풀어 오르고 있는데요. 이 천체를 태양계에 가져오면 목성궤도까지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 천체는 이후 연료고갈로 초신성 폭발을 거쳐 중성자별 또는 블랙홀로 변화할 예정입니다. 이때 엄청난 섬광과 함께 무수한 에너지와 먼지를 방출하게 됩니다.
그러던 도중 지난 2019년 겨울, 우리는 미스터리한 천문현상을 목격합니다. 그동안 밝게 빛나던 베텔게우스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핵융합의 변화로 인한 점진적인 어두움이 아닌 이상할 정도로 빠른 밝기 변화에 천문학자들은 초신성의 핵융합 연료가 고갈돼 벌어지는 폭발 직전의 전조현상으로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지구 역사에서 매우 드문 초신성 폭발의 관측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이듬해 5월 베텔게우스의 밝기가 다시 회복되면서 해프닝에 그치게 됐습니다. 지금도 이 천체는 맹렬하게 핵융합을 일으키며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텔게우스는 왜 갑자기 어두워 졌을까요?
미국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 등 연구팀은 허블우주망원경을 비롯한 다수의 장비를 활용한 종합 관측정보를 통한 분석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베텔게우스는 지난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매우 엄청난 양의 물질을 뿜어냈습니다. 이 물질들은 마치 태양의 플레어로 물질이 외부로 뿌려지는 것처럼 우주공간에 분출됐고 차가운 우주공간에서 냉각돼 응축되면서 빛을 가리는 먼지구름으로 형성됐습니다. 이 먼지구름은 베텔게우스를 공전하며 돌아다니는데 마침 12월부터 지구 직선궤도에 위치했습니다. 따라서 지구에서는 베텔게우스의 밝기가 어두워질 수 밖에 없었고 허블 우주망원경의 관측으로 남쪽부터 먼지구름에 가려 눈에 띄게 희미해지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초신성 폭발을 바로 목격하지는 못하지만 세계 천문역사에서 초신성 폭발을 미리 알 수 있는 천체를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주 어딘가에서 폭발하고 발생한 빛이 오랜 시간 걸려 지구에 도달해서야 그 존재를 인식하고 관측을 진행해왔습니다. 한 번도 초신성이 폭발 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가는지, 폭발하는 순간까지의 모습을 알 수 없었죠. 우주 관측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어쩌면 절호의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미지의 적색 초거성 진화의 순간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관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를 이용해 우주의 신비로움을 한단계 더 알아가면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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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원철 기자 chwch@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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