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혁신클러스터]④신약 개발에 진심인 사업가가 만든 ‘바이오 공유 오피스’

화성(동탄)=김명지 기자 2023. 4.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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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 우정바이오신약클러스터
로봇으로 실험용 생쥐 배설물 자동 처리
천병년 대표 “동물실험으로 신약 성패 예측 가능”
“민간 서비스 정신으로 바이오벤처 도울 것”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우정바이오 본사 동물실험실 전경/우정바이오 제공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우정바이오 본사 동물실험실 전경/우정바이오 제공

“지하 4층에 있는 동물실험실 가 봤어요? 냄새 안 나죠? 글로벌 제약사들도 우리 시설을 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한국에 이런 동물실험 시설이 있었냐고 놀랄 거에요.”

지난 4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우정바이오신약클러스터 본사에서 만난 천병년 우정바이오 대표는 클러스터에서 가장 자랑거리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동물실험실을 명품 장비로 다 세팅을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정바이오가 지난해 완공한 우정바이오신약클러스터는 서울 강남에서 용인 기흥을 잇는 용인서울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가량 운전하면 나온다. 대지 6237㎡, 연면적 2만3194㎡, 지상 15층, 지하 6층에 이르는 신축 건물에 조성한 바이오헬스 기업을 위한 입주시설인데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이 인근에 있다.

건물 지상층은 공유오피스와 연구실, 지하층에는 거대한 동물실험실로 구성됐다. 실험용 쥐는 다 자라면 몸무게가 250~300g 수준인데, 이 곳에는 이런 실험용 쥐를 무려 1만 마리 넘게 키우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연구기관은 동물실험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실험실을 깨끗하게 관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 대표는 “미국의 CNN 방송의 길거리 공개방송하듯 실험실을 공개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붉은색을 인식하지 못하는 적색약(赤色弱)인 생쥐의 건강을 고려해 붉게 처리한 창문 너머로,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생쥐를 들어 올려 몸길이와 체중을 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서는 로봇이 분주히 움직이며 실험용 생쥐의 케이지(cage·우리)속 톱밥을 자동으로 폐기했다. 연구원들이 케이지를 쌓아 놓으면 로봇이 알아서 쥐의 배설물 등이 쌓여 있는 톱밥을 버리고, 살균하는 방식이다. 실험용 쥐를 관리하는 연구원들은 감염 위험에 늘 노출 돼 있는데, 이들의 안전과 위생 문제를 고려했다.

실험실 옆에는 형형색색의 생쥐용 놀잇감을 담은 케이지들도 나열돼 있었다. 우정바이오 관계자는 “실험용 생쥐의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서 특수 제작된 놀잇감”이라고 설명했다. 쥐의 기분이 좋아야 실험 결과도 잘 나온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 동물실험 업체에서 M&A기업 변신한 찰스리버

흔히 신약을 개발할 때는 비임상시험이라고 불리는 동물실험을 통해 효과를 검증한다. 이 결과가 있어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승인(IND)을 받을 수 있다.

실험용 생쥐로 가장 유명한 곳은 미국 코네티컷주의 실험동물 연구소인 잭슨연구소(Jackson Laboratory)다. 비영리기구인 이 연구소는 유전자 편집 기술로 특정 질환에 걸린 생쥐를 만들어 전세계에 연 270만 마리씩 분양하는데, 그 가격이 한 마리당 수백만~수천만원에 이른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우정바이오 본사 동물실험실 전경. 케이지 안에 실험용 쥐의 놀잇감이 들어 있다./김명지 기자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는 잭슨연구소에서 제작한 당뇨병을 앓는 쥐, 유방암에 앓는 쥐 모델 등을 분양 받은 후 동물실험 업체에 양육을 의뢰한다. 의뢰받은 동물실험 업체는 일정 개체 수만 사육한 다음, 제약사가 원하는 시점에 되면 필요한 만큼 번식시켜 실험을 한다.

현재 세계 최대 동물실험 업체는 미국 보스턴의 찰스리버(Charles River)다. 이 회사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모인 보스턴에서 실험용 쥐를 공급하며 회사를 키웠다. 그런데 현재 찰스리버는 글로벌 바이오벤처 인수합병(M&A)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바이오기업으로부터 실험 동물 의뢰를 받다 보니 어떤 질환에 대한 수요가 많고, 어떤 기업의 실험이 잘 되는지 아닌지 보는 눈도 생겼다.

◇ 소형승합차로 실험용 쥐를 팔던 서울대 약대 출신 사업가

천 대표는 찰스리버의 사업모델을 벤치마크(benchmark·기준점)로 삼았다. 천 대표가 찰스리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천 대표는 1989년 우정무역을 설립해 제약사에 실험용 생쥐를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 1990년대 찰스리버의 국내 첫 독점 판매권을 딴 것이 천 대표였다. 천 대표는 신약 개발을 신념으로 실험용 동물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우정바이오 본사 공유 오피스인 랩블라우드 전경/우정바이오 제공

하지만 실험용 쥐를 공급하다 보니, 동물 사육 시설을 열게 됐고, 그 시설이 커지면서 감염 관리로 사업을 확장해 동물 실험과 시험수탁기관(CRO)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최고급 동물실험실을 갖춘 이 민간 클러스터는 천 대표의 신약 개발 염원이 담긴 사업인 셈이다. 천 대표는 “사업 초기에는 서울대 약대 나온 놈이 생쥐를 판다는 비아냥을 많이 들었다”며 “지금은 그 비아냥보다는 생쥐를 싣고 다녔던 승합차 핸들이 무거웠던 기억이 더 많이 난다”며 웃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주차장에서 데스크톱 컴퓨터 한 대로 시작해 신화를 썼지만, 신약 개발에는 이런 신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세포주 실험을 위한 실험실 하나만 꾸리려 해도 수억 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바이오스타트업은 대학이나 공공기관의 실험실을 빌려서 창업한다.

천 대표는 이런 바이오스타트업이 어느정도 규모가 커지면 대학과 기관을 벗어나 민간으로 나와야 하는 상황에 착안했다. 그는 “스타트업이 덩치가 커지면 공공시설의 설비와 서비스에 만족을 못 느끼는 현상도 보였다”라며 “그래서 이들이 만족할 만한 세계 최고의 시설을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동물실험실 갖춘 시설로는 최고의 입지”

천 대표는 “신약 개발에 꿈을 가진 연구자들에게 1억 원만 갖고 도전하라는 것이 우리의 모토다”라고 말했다. 클러스터에 세포주 실험부터, 동물실험까지 최첨단 시설을 갖췄으니, 임대료만 내고 쓰라는 뜻이다. 이곳에 입주한 바이오 벤처들은 ‘랩클라우드’라는 멤버십을 통해 우정바이오의 동물실험실과 설비를 저렴하게 쓰고 있다.

천 대표는 클러스터를 멤버십으로 운영하는 이유를 묻자 “초기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해 성공하려면, 일대일이 아닌 일대다(多)로 뭉쳐서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후보물질부터 찾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의약품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고, 제품의 기대 수익을 계산한 다음에 후보물질을 찾는 식으로 신약 개발이 진행된다. 그만큼 글로벌 트렌드에 민감해야 한다.

천 대표는 “신약 개발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과 손을 잡지 않으면 블록버스터(blockbuster·초대형 신약)를 만들 수 없고, 글로벌 무대에 있는 최고 전문가들에 컨설팅을 받으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며 “뭉쳐서 비용을 나누는 식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우정바이오 본사에서 천병년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우정바이오 제공

하지만 국내에는 오송과 대구·경북 첨닥복합단지(첨복단지) 같은 국가 바이오 클러스터에서도 훌륭한 시설을 두고 있다. 존슨앤존슨(J&J)이 미국 보스턴에 조성한 신약 개발 클러스터인 랩센트럴도 비영리로 운영된다. 바이오 클러스터는 공공성이 강하기 때문에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차별화도 쉽지 않아 보였다.

천 대표는 우정바이오신약클러스터의 사업모델이 성공할 수 있는지 묻자 “J&J도 손해를 보면서 클러스터를 운영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천 대표에 따르면 랩센트럴은 화이자 머크 등 다국적 제약사들로부터 멤버십 방식으로 기부를 받는다. 멤버십이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은 랩센트럴에 있는 스타트업과 교류하며 초기 신약 기술을 관찰할 수 있고, 유망 기술이 보이면 빠르게 기술 이전을 받아 신약 개발에 착수해 수익을 낸다는 것이 천 대표의 설명이다.

천 대표는 동탄이 동물실험실을 갖춘 바이오 클러스터로는 국내 최고의 입지라고 설명했다. 동물실험 설비를 지으려면 폐기물 처리 인증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서울 수도권에서 이 정도 규모의 인증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천 대표는 “벤처가 성공하려면, 도전도 중요하지만 빠른 포기는 더 중요하다”라며 “정교하게 설계된 동물실험을 잘 활용하면 실패와 성공 가능성을 신속하게 예측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천 대표는 이어 “우린 고객이 요청만 하면, 곧바로 수용해 고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서비스 사업자에요. 바이오벤처들이 부담 갖지 말고 우리를 이용해 성공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우정바이오신약클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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