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입법에 현수막 공해 4개월...부랴부랴 재개정 논의
자극적인 문구에 국회 앞 거리도 현수막 공해
정당 현수막 두고 항의 민원도 빗발쳐
[앵커]
최근 길거리 곳곳에서는 선거철도 아닌데 정당들이 내건 현수막들을 쉽게 볼 수 있죠.
국회가 유독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었기 때문인데, 안전사고부터 각종 민원까지 문제가 급증하자 불과 시행 넉 달 만에 부랴부랴 다시 법을 바꾸겠다고 나섰습니다.
엄윤주 기자가 현장을 돌아봤습니다.
[기자]
현수막을 지지하는 막대는 삐죽 튀어나왔고, 팽팽한 노끈도 길거리에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한 정당이 정부를 비판한다며 이런 현수막을 한꺼번에 100개 넘게 걸었는데, 오가는 사람들에겐 공포 수준입니다.
[김주연 / 서울 응암동 : 횡단보도 한가운데 (현수막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경우에는 신호가 안 보이니까 사람들이 차 신호를 보고 건넌다든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수막 끈에 목이 걸리고 가로등이 쓰러지는 등 관련 사고도 계속됩니다.
[구본근 / 행정안전부 지역기반정책관 : 안전사고가 행안부에서 파악하기로는 5건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3건의 경우 주로 현수막에 설치된 끈에 목과 발에 걸려서….]
내용도 문제입니다.
각 당이 서로를 헐뜯으며 갈수록 자극적인 문구를 써놓다 보니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 앞 거리는 현수막이 공해가 된 지 오래입니다.
[정인택 / 서울 신도림동 : 눈에 거슬리는 문구들이 많아요. 반대 생각도 많을 텐데 굉장히 불쾌감을 느낄 때가 많이 있고.]
여기에 가로수며 신호등 기둥까지 틈만 있으면 걸리는 정당 현수막에 가게 간판 가린다는 등의 항의도 빗발칩니다.
실제로 관련 민원은 법이 바뀌기 전보다 두 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성재영 / 서울 서대문구 도시경관과 주무관 : 저희가 해당 정당에 요청했는데 해당 정당이 들어주지 않을 때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까.]
구청의 자제 요청에도 여전히 현수막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초 정당 현수막도 일반 현수막처럼 신고도 해야 하고 지정된 곳에만 걸 수 있었지만, 지난해 국회가 관련 법을 바꾸며 관련 규제를 모두 풀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당의 현수막은 신고 없이도 장소 제한 없이 내걸 수 있게 만든 건데, 유일한 제한은 정당 명칭 등을 쓰게 하고 15일 이내로만 설치하게 하는 시행령뿐입니다.
당장 단속을 해야 하는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법을 다시 만들라는 요청이 쏟아지는 이유입니다.
[김정현 /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 전문위원 : 정당 현수막 부분에 있어서는 정당 활동의 자유가 주민 안전의 권리라든가, 평등권, 영업의 자유, 환경권, 다른 법익과 조화롭고….]
전국 길거리가 정당 현수막 경연장처럼 변하며 각종 문제가 발생하자, 여야는 법이 시행된 지 불과 넉 달 만에 허겁지겁 재개정 논의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법이 아닌 단속이 문제라는 주장도 나오는 등, 실제 개정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만희 / 국민의힘 의원 : 불과 4개월 만에 법안의 재개정 논의 자체가 사실은 좀 국회 차원에서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김교흥 / 더불어민주당 의원 : 행안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좀 더 명확하게 지자체가 해주고, 또 지자체는 그것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시행 넉 달 만에 법을 다시 바꾸자고 나서는 상황은 자신들 홍보를 위해 손발을 맞춘 여야의 졸속 입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책이 나오기까지 현수막 공해를 견뎌야 하는 피해는 결국 국민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YTN 엄윤주입니다.
YTN 엄윤주 (eomyj1012@ytn.co.kr)
촬영기자 : 김정원·윤소정·왕시온
영상편집 : 고창영
그래픽 :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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