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스페인 이어 프랑스 마크롱까지…유럽은 왜 중국에 손 내미나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지정학적 위협도 덜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5일부터 7일까지 이어진 중국 방문을 통해 시진핑 중국 주석의 열렬한 환대를 받고 귀국했다. 시 주석과 마크롱 대통령은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 번, 이어서 7일 광저우 쑹위안(松園)에서 한 번 등 서로 다른 곳에서 두 번 만나 회담을 했다. 시 주석이 외국 정상을 지방까지 동행해 별도의 만남을 가진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정도로 알려졌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러시아·인도 정상과 다름없는 ‘특별한 대접’을 한 셈이다.
중국과 프랑스는 서로 ‘선물’도 주고 받았다. 중국은 유럽 에어버스의 항공기 160대, 헬리콥터 50대를 사들이는 수십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프랑스전력공사(EDF)와 해외 풍력 발전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했다. 또 프랑스 알스톰(Alstom)의 각종 산업 장비도 구매키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방중에 데리고 간 기업들이다. 반대로 프랑스 선사 CMA-CGM은 중국 조선사 중국선박그룹에 4조원 대의 컨테이너선 16척 발주를 했고, 에어버스는 중국 천진 공장에 추가 투자를 하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을 축으로 하는 서방 자유 민주주의 진영과 중국·러시아가 중심이 된 권위주의 독재 국가 진영 간 갈등은 날이 갈 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유럽 역시 2019년 유럽연합(EU)의 외교·안보 정책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체계적 경쟁자”로 규정한 이래, 지난해에는 이를 “EU, 미국 및 기타 동맹국에 대한 강력한 글로벌 경쟁자”라고 재규정하면서 경계의 수위를 높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최근 “푸틴의 극악무도한 침략에도 시진핑은 무제한의 우정을 보여줬다”며 “중국과 러시아 관계는 EU와 중국의 관계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 주요 국가들과 중국 간 관계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경제 사절단을 대거 이끌고 중국을 방문, 시 주석의 환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에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중국을 찾았다. 또 이번달 마크롱 대통령에 이어 5~6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시 주석을 만날 예정이다. 이들은 EU 정상 회담 같은 자리에선 중국의 인권 문제, 타국에 대한 고압적 태도를 비판하고 중국의 러시아 지원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중국은 파트너”라고 하고,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결별)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유럽 국가들이 이렇게 이중적 태도를 보이며 중국에 손을 내미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 뗄레야 뗄 수 없을 만큼 깊게 얽힌 경제 문제 때문이다. 지난해 EU 수출액에서 중국의 비율은 10%로 미국(22%) 다음이다. 특히 수입액은 중국이 23%로 미국(13%)을 크게 앞지르는 1위다. 현재 유럽에서 소비되는 공산품은 35% 이상이 중국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럽의 제조업 상당수가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자국 브랜드인데도 중국산인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희토류 등 전략적 원자재에 대한 유럽의 중국 의존도는 90%에 달한다. 중국이 유럽 기업들의 공급망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관계가 악화하면 유럽 역시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유럽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간 관계 악화로 인한 반사이득을 보고 있기도 하다. 에어버스가 미국 보잉을 제치고 중국에 잇따라 여객기를 판매하고 있는 것이 일례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숄츠 독일 총리의 방중 기간에도 에어버스 여객기 140대를 구입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중 무역 분쟁이 시작된 2018년 이후 보잉의 중국 매출은 급감하고, 그 빈 자리를 에어버스가 모두 채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이 지난해 9월 보잉사의 ‘하푼’ 미사일을 대만에 판 이후 중국의 ‘보잉 따돌리기’는 더욱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는 자동차와 인프라 산업, 기계 장비 등 미국과 유럽이 경쟁하는 다른 분야로도 확산하고 있다. 유럽 국가를 향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주겠다”는 중국의 손짓은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 우려로 고민이 많은 유럽 지도자들에겐 물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결국 중국을 경계하고 비판하면서도, 관계 악화는 피하려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번 방중에서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동행한 것도 쓴 소리를 하는 ‘총대’는 폰데어라이엔이 메게하고, 자신은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굿 캅, 배드 캅(Good Cop, Bad Cop)’ 전략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유럽은 이를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개념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미국과 반드시 100% 일치하는 행보가 능사가 아니며, 유럽이 미국과 차별화된 입장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세계 정치·경제의 큰 틀에서 더 바람직하고, 유럽에도 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에 있어서 서방의 단일 대오를 추구하면서, 중재자의 역할을 놓지 않겠다는 것도 비슷한 발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더 나아가 “러시아, 중국과 끊임없이 대화(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그렇지 않는 것보다 문제 해결에 훨씬 낫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럽은 중국과 직접 국경을 마주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남중국해에서, 한국이 서해에서 직접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상대하는 것과 사정이 다르다. 한국이 겪는 사드 문제, 일본의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문제가 독일과 프랑스에는 없다. 이 때문에 유럽과 중국 모두 상대와 관계에서 좀 더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을 함으로써 유럽 안보에 직접적 악영향을 미치지 않은 한, 중국에 대한 유럽의 이중적 행보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독일마샬재단(GMF)은 전망했다. 중국은 이를 이용해 미국에 대해서는 강대강 대치를 하는 반면, 유럽 국가에는 지속적으로 손을 내밀면서 고립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에 대한 ‘갈라치기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유럽 내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 주간지 르푸앙은 “프랑스와 유럽이 시진핑이 놓은 ‘덫’에 빠지는 것일 수 있다”며 “중국 견제 약화는 더 큰 국제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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