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태영호 "4.3사건 김일성 지시"…북한, 정말 그렇게 배우나
북한, 정규 교육과정에는 없어
선전·선동 교육 연장선에서 남한 민중항쟁 다뤄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제주 4.3사건은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했다. 지난 2월부터다. 제주 4.3 추념식이 있던 지난 3일에도 태 최고위원은 관련한 질의에 "어떤 점에서 사과해야 하는지 아직 납득이 안 된다"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웠다"면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2002년 초 북한에서 탈출해 남쪽으로 넘어온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조금 다른 얘기를 했다. 지난 2월 YTN 라디오 '이재윤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주 기자는 "북한에 있을 때 그런 교육을 받았냐"는 질문에 "4.3사건을 정규 교육에서 가르치거나 그러지 않는다"고 답했다. 주 기자는 북한 최고라는 김일성대학 출신이다. 주 기자는 다만 "북한 문학 작품, 영화, 드라마에서 제주도의 항쟁을 '제주 인민 항쟁'이라고 부른다"면서 "제주 인민 항쟁이 우리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 4.3 주요 지휘관들이 다 김일성에 충성한 것처럼 선전은 한다"고 덧붙였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탈북한 지 20년이라 잘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제주 4.3사건이 아니라 제주도 인민 항쟁으로 배웠는데 이승만 정권을 뒤엎기 위한 제주 인민 항쟁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김일성 지시'라고는 안 나왔는데 결국 그 사람들이 항쟁을 일으켜서 북조선의 김일성 수상을 수반으로 하는 선거에 제주도 사람들이 다 참여했다고 나와 있다"며 "이승만 정권을 반대하는, 단독정권 수립을 반대해서 북한의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정권 수립에 찬성했다는 식이다. 선거에 제주도 사람들이 개입했고 그를 위해 폭동을 일으켰다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탈북자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2004년 북한에서 탈출한 교사 출신 A 씨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정규 교과서에는 없지만 강의 내용, 비밀문서로 지급되는 교수 참고서 등에서는 등장한다. 제주 4.3사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내용"이라며 "모두 김일성의 뜻을 받든 반미투쟁으로 교육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 역사 교육의 특징을 지적했다. A 씨는 "전대협 시위, 노동운동과 파업 등에 대해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파업이 '김일성의 영도력으로 남조선에 뿌리 깊이 박힌 조직들 활동의 결과'라는 식이다"라며 "북한 역사교육의 핵심은 김씨 왕조의 혁명 역사이기 때문에 이를 우상화하는 수단으로 남한의 정세를 푼다"고 강조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역사 교육이 '김일성-김정은의 혁명 역사 교육'이라며 "우리와는 관점이 매우 다르다"고 했다. 강동완 동아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남한의 민중항쟁을 모두 '미 제국주의와의 투쟁'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한의 교육이 선전·선동의 수단이라는 점을 짚었다. 그는 "북한 교과서에서 그런 걸 보지는 못했다"면서도 "정규 교과가 아니라 특화 시간 등에서 교사가 선전·선동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는 있다"고 했다.
◆北정규 교과서 '4.3사건' 언급은?
그렇다면 북한 교과서는 제주 4.3사건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더팩트>는 지난 6일까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가 보유한 북한 역사 교과서 68종 중 1948년 전후를 기술하고 있는 6권을 살폈다. 이 교과서들에서 제주 4.3사건에 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그 시기 사건은 크게 △1948년 2월 조선인민군의 창건 △3월 조선노동당 제2차 대회 △4월의 남북 연석회의 △5월 남한의 단독선거 △9월 정권 수립 정도다.
사건은 모두 김일성의 행적과 연설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돼 있다. 남한 정부를 부정하고 대중이 김일성을 지지했다는 서술과 함께 북한 정권에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여한다. 여기엔 남북 연석회의가 김일성의 주도와 결단으로 이뤄졌으며 김일성의 초청장에 따라 초대된 남측 인사인 김구 등이 김일성의 말에 감화하며 감사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활동 초급중학교 1'(교육도서출판사, 2013)에는 남쪽의 사람들이 김일성에 감격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1945년 9월 미제침략군이 우리 나라 남반부지역을 강점하였으며 결국 우리 나라는 둘로 분렬되였다. (중략) 미제는 남조선에 기여들어가자마자 미군정청을 설치하고 식민지예속화정책을 실시하는데 착수하였다. 미제는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총회에 끌고가 저들에게 추종하는 괴뢰국가들로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조작하고 그것을 남조선에 끌어들였으며 1948년 5월10일 총검으로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를 강행하고 8월에는 친미괴뢰정부를 조작하였다. (후략)"(「력사 고급중학교3」, 135p, 교육도서출판사, 2015)
"(전략) 당 제2차대회가 있은 직후인 그해 4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에서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를 여시고 남조선단독선거를 짓부시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대책들을 세우시였다. 이어 대동강의 뚝섬에서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했던 남조선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의 협의회를 마련하시고 통일적인 중앙정부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할데 대하여 합의를 보시였다. 그후 전체 조선인민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단독선거를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그리하여 5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이 벌려놓은 단독선거는 사실상 파탄되고 말았다."(「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 고급중학교1」, 151p, 교육도서출판사, 2013)
참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일성 우상화와 북한 정권의 정당성 중심으로 서술돼 있다. 4.3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김일성이 1947년 10월 남북 연석회의를 발기하고 1948년 이를 열었다는 내용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는 차이 뿐이다.
남한에 대해서는 '미국의 앞잡이가 권력을 장악하고 민중을 탄압했다'는 식의 서술이 이어진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교수참고서 고급중학교 제1학년'(교육도서출판사, 2014)에는 '유엔 임시한국위원단'을 "남조선에 괴뢰정권을 조작하기 위해 유엔의 간판으로 만들어냈던 허수아비 기구"라며 "(미제가) 1948년 1월에 남조선에 끌어들이였다"로 서술돼 있다.
이후엔 김일성의 사업 총화 보고, 연설 등을 수록하며 김일성을 향한 민중의 지지가 강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외국 군대의 철수 이후 총선거를 주장했고, 남북 연석회의에서 남측 대표들도 김일성 제안에 따라 총선거에 동의했으나, 미국의 강제로 남한에서 단독선거가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모두 김일성 영웅화와 북한 정권 수립과 헌법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서술로 이어진다.
"(전략) 주체37(1948)년 8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북남총선거가 승리적으로 진행되였다. 우리 나라 북반부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선거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그러나 남조선에서는 미제의 탄압을 피해 다른 방법으로 선거를 진행하였다. (후략)"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활동교수참고서 초급중학교 제1학년」, 교육도서출판사, 2013)
"미제는 남조선에 괴뢰정권을 세움으로써 우리 나라를 영영 갈라놓으려고 하였다. (중략) 미제가 남조선에 기여든 그때부터 우리 나라는 북과 남으로 갈라져 북조선에서는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여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힘찬 투쟁을 벌리고있었지만 반면에 남조선에서는 인민들이 또다시 침략자들의 구두발밑에 짓밟혀 신음하게 되였다. (중략)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주체37(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를 여시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단결하여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할 것을 밝혀주시였다. (후략)"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활동교수참고서 초급중학교 제1학년」, 교육도서출판사, 2013)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주체37(1948)년 4월 력사적인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를 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정치보고에서 남조선단독선거를 짓부시고 통일적중앙정부를 세워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온 민족이 하나로 뭉쳐 반미구국투쟁을 힘있게 벌릴것을 호소하시였다. (중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련석회의후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하는 투쟁에로 전체 인민을 불러일으키시였다. 북반부 인민들의 지지성원밑에 남조선인민들이 벌린 투쟁에 의하여 남조선단독선거는 사실상 파탄되였다. 그러나 미제는 <선거> 결과를 날조하여 남조선에 괴뢰정권을 꾸며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 학습참고서」, 교육도서출판사, 2012)
북한 역사 교과서의 기초가 되는 '김일성전집'(평양로동당출판사, 1993)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역사 교과서는 김일성전집을 참고해 수업마다 관련된 부분을 읽도록 하고 있다. 김일성의 행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으나 4.3사건 관련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1948년 전후를 서술하고 있는 7권은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조선노동당 제2차대회와 남북 연석회의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태영호 "대학생 시절부터 그렇게 배웠다"…실체는?
정규교육 과정에서 제주 4.3사건을 언급한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 태 최고위원이 말한 대학 교육은 어떨까? 아쉽게도 북한자료센터가 확보한 북한 교과서 중 대학 과정의 역사 교과서는 없었다. 대신 북한 사회의 '고전'들을 찾아봤다. 태 최고위원이 대학 생활을 했던 1990년대 초반을 전후에 발간된 책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책에는 그 시기 미군정과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는 설명이 있었다. 일부 책에서는 그 예시로 제주 4.3사건을 들었다. 제주 4.3사건은 북한에서 '제주도인민봉기'로 불린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인민들이 미제가 조작한 남조선에서의 5.10망국단독선거를 반대하여 일으킨 봉기 (중략) 미제의 망국단독선거를 반대하여 줄기찬 투쟁을 벌려온 제주도인민들은 1948년 3월부터는 적들에게서 빼앗은 무기로 인무장자위대를 편성하고 한나산을 중심으로 적극적은 투쟁을 준비하여오다가 4월 3일 새벽 드디여 인민봉기로 넘어갔다. (중략) 이리하여 제주도에서의 5.10 망국단선은 완전히 파탄되였다. 제주도 인민봉기는 유격투쟁과 그밖에 여러가지 형태의 투쟁이 결합된 적극적인 반미구국투쟁이였으며 전채 도민 30만명 중 24만명이 궐기한 대중적인 인민항쟁이였다. 제주도인민봉기는 미제의 신민지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망국적 5.10단선을 반대하여 남조선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있던 인민들에게 커다란 고무적영향을 주었다." (「백과전서4」,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3)
'조국통일투쟁사1'(사회과학출판사, 1992)는 남한에서 일어난 각종 민중항쟁을 소개하는데 모두 '반미 구국투쟁'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1960년 4.19 혁명에 대해 "남조선인민들의 영웅적 4월인민봉기"라고 평가하며 약 10페이지에 걸쳐 서술하는데 "4월인민봉기의 력사적의의는 우선 그것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밝혀주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방침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남조선인민들이 이룩한 첫 승리였다는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전략) 참으로 4월인민봉기의 전과정은 오직 주체형의 혁명정당의 령도밑에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인민대중이 참가하는 철저한 반제반봉건적투쟁을 통해서만 남조선인민들이 미제참략세력과 그의 식민지통치를 짓부시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이룩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4.19인민봉기는 비록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지는 못하였지만 남조선인민운동사에 빛자는 자리를 차지하였으며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민족사에 불멸의 기여를 하였다." (「조국통일투쟁사1」, 사회과학출판사, 1992)
제주 4.3사건에 대한 언급도 있다. 유엔 임시한국위원단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거셌던 당시 상황과 함께 1948년의 2.7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다.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 서울에 기여들던 1948년 1월 8일 서울의 여러 공장, 로동자, 사무원들이 파업에 들어갔으며 1월 19일에는 경성전기회사 로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로동자들이 파업하였다. (중략) 2월 7일 이른새벽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전주, 군산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서 로동자들이 총파업을 일으켰다. (중략) 투쟁은 남조선전지역을 휩쓴 전인민적구국항쟁으로 지어 무장투쟁으로까지 발전하였다. 2.7구국투쟁이 전개되자 제주도 인민들은 '유엔임시조선위원단'과 미제의 망국단선흉계를 반대하여 인민항쟁을 벌리였다. 제주도인민들은 적들의 폭압적공세가 강화되는 조건에서 3월중순경에 인민자위대를 조직하고 3월 3일 새벽부터 '매국적단선을 절대 반대한다!', '유앤림시조선위원단은 철거하라!', '조선통일 만세!' 등의 구호 밑에 무장봉기로 넘어갔다." (「조국통일투쟁사1」, 사회과학출판사, 1992)
"(전략) 남조선의 전지역들에서 수많은 각계각층의 인민들이 망국단독선거에 대한 반대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였으며 '단선', '단정'을 반대하여 폭력투쟁에 떨쳐나섰다. 그 대표적인 실례의 사나가 바로 1948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인민봉기였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인민들은 5.10망국단독선거를 반대하는 무장항쟁에 궐기하고 도처에서 경찰지서들을 습격하고 강제해산당하였던 인민위원회들을 다시 복구하였다. 30만의 주민들중 24만명이 봉기에 참가하여 제주도에서의 망국단독선거를 완전히 파탄시켰다. (후략)" (「미제는 조선침략전쟁의 도발」, 평양출판사, 2016) 일부 제주 4.3사건을 언급하는 부분은 있었으나 김일성이 지시했다는 부분은 없었다.
2.7사건을 서술하면서도 4.3사건은 다루지 않는 책도 있었다. 북한에서 4.3사건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전략) 이러한 정세하에서 북조선인민들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반대배격하는 항의집회를 열고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민족분렬책동을 폭로규탄하였다. 남조선의 도처에서도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 남조선에 기여드는 것을 반대하는 광범한 인민들의 투쟁이 벌어졌으며 그것은 주체37(1948)년 2월7일 남조선전역을 휩쓴 구국항쟁으로 확대되었다." (「조선로동당력사1」, 조선로동당출판사, 2017)
김일성의 행적을 다룬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 장군 2'(평양출판사, 2008), '불멸의 업적'(조선로동당출판사, 1987), '인민들 속에서39'(조선노동당출판사, 1986), '은혜로운 태양 제2부'(조선로동당출판사 1977)에는 4.3사건에 대한 언급을 찾지 못했다.
김일성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 '혁명일화총서 김일성일화집 10'(조선로동당출판사, 2016)에도 4.3사건 관련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김일성의 행적을 일화 형식으로 소개하는데 시찰하면서 내린 사소한 지시까지도 소개하고 있다. 4.3사건 즈음 일화로는 김구와 김규식에게 보낸 편지가 소개됐으며 김월송과의 만남과 대화 등이 나온다.
◆김일성 지시설, 아무리 검증해도 '도돌이표'
북한자료센터 또한 자체 조사에서 '4.3사건 김일성 지시설'과 관련한 내용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초기에 4.3사건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때 이후로 4.3사건을 연구하는 연구자도 늘어나고, 관련한 문의가 종종 들어왔다. 그래서 센터 차원에서 확인했었다"며 "기사 색인이나 일반·특수자료에서 4.3사건 관련된 내용이 있는지 확인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은 무엇일까.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에서 4.3을 북한 탈북민들이 어떻게 배웠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이 안 된다"면서 "'조선중앙통신'에서 1998일 4월 2일 자 보도에 따르면 '해방 후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가 유엔의 간판 밑에 조선을 둘로 갈라놓으려는 범죄적 책동에 격분하여 떨쳐나선 대중적 무장 항쟁' 이런 식으로 보도한다. 이게 북한에서 4.3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조사했다는 건 확인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우리나라는 2003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위원회'가 출범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각종 증언과 역사적 사실을 교차검증한 결과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설이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1948년 지리산 진압군 사령관을 지낸 고(故) 백선엽 장군조차 남로당 중앙당 개입설을 부인했다.
4.3 사건이 남로당의 무장 폭동에서 시작됐으며 이승만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권력을 통해 무고한 제주 양민을 학살했다는 건 반론의 여지가 없다. 양 진영 모두가 인정한 사실이다. 또한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무장봉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후 1954년 9월까지 계속된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전체를 아우른다.
탈북민들은 남한에 도착해 하나원에서 각종 교육을 받는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시민교육, 각종 제도와 취업에 관련된 내용 등 한국 생활 전반에 대한 교육이다. 여기에는 '역사 바로 알기 교육'이 포함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연대별로 현대사까지 개괄적인 교육이 이뤄지는데 다만 '제주 4.3사건' 이런 식으로 개별적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교육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4.3사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북한에서 배운 그대로 알고 믿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태 최고위원은 북한 체제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탈북했다. 이후 한국에서의 교육 등을 고려할 때 북한에서의 교육이 잘못됐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여당 지도부'라는 위치에 있는 태 최고위원이 발언은 그 무게가 다르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단체 관계자들은 태 최고위원의 발언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의심했다. 4.3사건 관련 발언으로 최고위원이 되는 과정에서 당내 극우 세력의 지지를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태 최고위원의 발언이 극우 유튜버의 발언과 일치한다는 점도 짚었다. 강호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북한에서 잘못 배웠다 해도 지금은 남한 국민이니 제대로 다시 공부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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