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도박까지 손댄 10대 아들, 어떡하죠?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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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요즘 들어 ‘내가 아이를 잘못키웠나’ 하는 생각에 많이 힘듭니다. 사춘기라고 너무 자유방임으로 양육한 게 아닌가 고민이 많습니다.
중학교 때 코로나 시작되고 학교를 한동안 못 간 터라 정상 등교가 시작된 뒤 지각과 조퇴가 잦고 결석도 몇 번 했습니다. 게다가 술, 담배, 인터넷 도박까지 손을 댔습니다. 일전에 아이가 울면서 속마음 얘기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몇 시간도 못 돼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는 걸 볼 때면 제 마음도 차갑게 무너져 내립니다. 아이 아빠는 아이를 이미 마음속에서 떠난 것처럼 대합니다. 저는 아이와 아빠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너무 힘든 엄마.
A. 사실 아이를 가져본 적도, 길러본 적도 없는 제가 한 아이를 가슴으로 길러온 어머니에게 감히 조언한다는 것이 저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어떤 분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사람만이 조언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그 말이 꼭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혜안은, ‘몸으로 경험해 보았는가’보다는 ‘숨겨진 보편성을 헤아려 보았는가’라는 지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문제를 들여다본다면, 이 사연은 우리의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에서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과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환기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이와 하루에 얼마나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할지, 아이가 사춘기의 질풍노도 시기를 겪으며 엇나갈 때 비난을 할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지 이런 것들은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건넨 말에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아이가 마음을 어떻게 고쳐먹을지, 남편이 아이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와 같은 것들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나의 의식적 선택은 조절할 수 있지만 타인의 반응이나 태도는 조절할 수 없지요.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를 구분하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막상 ‘내 가족’, ‘내 일’, ‘내 인생’, ‘내 노력’이라는 생각에 휩싸이면 그것은 더 이상 쉽지 않은 일이 되지요. 이 구분을 정확히 하지 못한 채로 선택의 오류들이 누적되면, 삶은 더없는 고통이 됩니다. 단지 ‘자유방임으로 키운 것이 맞았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기억하실 것은 이 부분입니다. 아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 커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지요.내가 사랑을 주기 위해서 아이를 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한번쯤 고통스러워도 이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관계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지금 우리 가족에게 증발되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혹시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이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라고요. 어떻게 커야만 한다는 나의 의무나 바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 깊은 연결감 말입니다. 부모 자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 안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을 하지요. 스스로 물어보셔야 합니다. 나는 사랑을 주고 있었는가? 아니면 쿨하게 자유방임을 하는 부모와 모범생으로 성장하는 자식이라는 모습을 기대했는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을 조절하고 싶어하고, 조절해야 하는 것들에는 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오직 우리의 선택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반응은 내 기대에 부응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것은 우리의 어떤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도, 아이나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도 지금의 상황을 바꾸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홀로 조용히 앉아, 종이를 한장 꺼내어 가운에 선을 하나 긋고 나서 기록해 보세요. 오늘, 내가 조절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절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지금 겪고 있는 자책과 원망을 내려놓을 때, 본연의 지혜가 열릴 거예요. 스스로가 갖고 있는 내면의 힘을 믿어보시기 바랍니다.
곽정은 작가, 메디테이션 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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