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3차 침략 임박했다”...반박하면 전부 “토착왜구”? [한중일 톺아보기]
한국에서 일본을 묘사할때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 이후 상황은 일본에 대해 왜 이런 수식어가 붙는지 되새겨 주고 있습니다. 한국측의 양보와 정치적 결단이 있었지만,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뒤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일본과의 외교전에서 패했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총성없는 전쟁’ 이라는 외교무대에서 일본을 어찌 믿고 안이하고 순진한 판단을 내렸냐는 지적입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재무장을 서두르는 일본이 조만간 한반도에 대해 다시 침략 야욕을 드러낼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에 대해선 “토착왜구” 라는 원색적 비난도 잦아지는 상황이죠.
서울대 역사학부 박훈 교수는 한국이 향후 일본을 제대로 상대하고 경쟁하려면 그들을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고 조언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처럼 지금 같은 때일수록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일본과 스스로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광복 이후 어느 때보다 양국간 국력차가 좁혀진 현재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과거 일본에서 정한론이 부상한 배경과 과정, 그리고 당시 조선 개혁파들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때마침 신분제가 폐지로 일본은 사무라이들이 전부 직업을 잃은 상황이었는데요. 실업자로 전락한 이 불만 가득한 사무라이들이 넘쳐나는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조선에 처들어가자는 정한론자들이 힘을 받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를 철부지 모험주의로 여기는 세력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유신 3걸중 한사람인 오쿠보 도시미치 입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을 시찰하던 와중에 고국에서 정한론 소리가 나오니까 급거 귀국하죠. 그래서 정한론파와 비정한론파가 맞붙으면서 정한론 정변이 일어나는데 이때 비정한론파가 가까스로 승리하게 됩니다.
때마침 조선에서도 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씨가 정권을 장악하죠. 민씨는 쇄국론을 고수했던 대원군보다는 대외정책이 유연했기 때문에 양국에서 비로소 조약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던 거고 1876년 강화도 조약이 맺어지게 된 겁니다.
물론 비정한론파들이 조선 침략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쿠보가 정한론에 반대했던 건 아직 일본의 실력이 조선을 정벌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어요. 훗날 조선통감이 되는 이토 히로부미도 당시에는 비정한론파의 핵심이었죠.
당시 일본은 서양의 포함(砲艦)외교를 모방했지만, 교섭이 결렬됐을 경우 조선 정벌을 단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또한 국내 정치적으로 축출된 정한론자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조선과의 국교가 절실해서 강경 일변도로 나설 수만은 없었죠. 어떻게든 판을 깨선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영사재판권 등 불평등 조항이 있었지만 조선 측 주장이 관철된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도 서방국가들과 잇따라 조약을 맺고 국제사회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죠. 그런데 이후 임오군란, 갑신정변이 터지면서 청나라가 조선 내정에 깊숙히 개입합니다. 이때까지는 조선에 대해 청의 영향력이 매우 강했고 일본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이후 공업을 발전시키고 군대를 강력하게 양성하는 등 힘을 크게 키웁니다. 이후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자 다시 청나라가 개입하지만 벼르고 있던 일본도 개입하면서 결국 청일전쟁이 발생하고 일본이 승리하죠.
일본이 여기서 개화파 정권을 수립시키고 물러나는 자제력을 발휘했어야 했지만 욕심이 생겼죠. 그래서 조선을 보호국화 하려 했는데 만주에 관심이 많던 러시아가 주도해 삼국간섭을 합니다. 이때 러시아가 일본을 쫓아냈지만 10년 뒤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면서 조선에 자신들의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해 버리죠.
일본이 이때도 개화파 정권을 양성하고 자제했더라면 역사가 훨씬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었겠지만, 한국을 보호국화 한데 이어 병합까지 해버리죠. 결국 자기들에게도 독약이 되는, 독주를 마시는 정책을 감행함으로써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남게 된겁니다.
조선 개화파는 필사적으로 자강(自强)을 달성해야했습니다. 100년뒤 후손들은 그들 못지않은 악조건하에서도 해냈잖아요.
저는 당시 가장 중요했던 건 조선이 얼마나 역량을 갖췄느냐 였다고 봅니다. 개화파들이 자강 조선을 달성했다면 일본으로 하여금 욕심내다가도 멈칫하게 만들었겠죠. 침략도 그럴만한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된다 하더라도 자기들 국익에 도움이 돼야 감행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조선판 메이지유신’을 꿈꿨던 개화파가 일본에 기대한 것을 마냥 비판할 수만은 없다고 봅니다. 청의 속국 시도를 막을 아무런 힘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지 않을순 없었겠겠죠. 국력이 갖춰질 때까지는 외교술로 조선의 자주를 인정해줄 타국의 힘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다만 그 사이에 필사적으로 국력을 키웠어야 했죠.
오히려 문제는 개화파들이 수구파 이상으로 분열을 거듭했다는 점입니다. 강철대오로 자강조선 건설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국에 자기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였죠. 저는 당시 개화파의 잘못은 외세 의존 보다는 빈약한 외교력과 내정개혁 실패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지금 대한민국 안보상 가장 경계해야 될 나라는 일단 북한이죠. 그리고 굳이 그 다음을 꼽으라면 중국이겠고요.
현 시점에 일본과 중국 중에 일본이 우리 안보에 더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감정적 접근은 되겠지만, 어떤 국제정치학자들도 동의하지 않을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과거 조선을 침략한 역사가 있지만, 지금은 오랫동안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잖아요.
지난 20세기 전반에 일어났던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역사상 중국과 조선의 국력이 가장 바닥이었던 동시에, 일본의 국력은 가장 정점에 있었던 시기에 발생했습니다. 즉,이런 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에일본의 대륙 침략 이라는 매우 드문 사태가 가능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일단 G2로 부상한 중국이 굉장히 강력해져 있고, 또 미국이 여기에 개입을 하고 있잖아요. 한미 동맹이 건재하고 일본도 미국과 동맹으로 묶여 있고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해 팽창 야욕을 드러낸다? 장차 예상치 못한 큰 국제적 변동이 있은 후 그런일이 가능해질런진 모르겠지만, 지금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건 시대착오죠.
저는 이것 또한 일본에 대한 과대 평가라고 봅니다. 일본 우익들이 들으면 “이야, 아직도 우리가 대륙을 침략할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있구나” 하고 좋아할 만한 이야기에요.
과거 우리가 북한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유화적인 말을 하거나 너무 강력한 반공정책을 쓰는 걸 비판하면 빨갱이란 딱지를 붙였잖아요. 지금 토착왜구도 이 프레임 입니다.
우리가 일본과 단교사태를 초래할 지경까지 가면 안된다, 일본과 타협안을 찾아야 된다는 유화적 이야기를 하면 토착왜구 라고 하잖아요. 이건 과거 빨갱이 운운했던 사람들과 정치적 입장은 정반대지만 사고 구조는 똑같은 겁니다.
저는 생각이 다르다고 이런 딱지를 붙여 공격하고 더 이상의 지적인 논의를 봉쇄하려고 하는 그런 자세는 지식인 이라면 해선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개인적으로 싫어할 수도 있고 사석에서야 얼마든지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공적인 담론의 장에서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군사정권 시절 빨갱이라는 용어로 반공 이외의 모든 논의를 봉쇄하려 했던 것하고 아주 구조적으로 꼭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토착왜구 운운하는 분들은 과거 빨갱이 운운했던 분들과 정신적으로 형제지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회에선 서정인 전 아세안 대사 로부터 ‘대한민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아세안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영상과 자세한 내용은 매일경제 월가월부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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