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의 기억, 세계기록유산으로 다시 피다'

고재형 2023. 4. 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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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제주도는 제주 4·3 관련 기록물 3만여 건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화해와 상생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제주 4·3 기록물이 5·18 민주화 운동 기록물처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고재형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제주 4·3 사건이 한창이던 1949년 1월 17일.

세계적으로도 드문 민간인 대량 학살이 제주 북촌리에서 자행됐습니다.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숨진 북촌리 학살사건으로 북촌리 주민 4백여 명이 한날한시에 희생됐습니다.

제주 4·3 사건 당시 잃어버린 마을 중 하나인 '사단 마을'.

언론 최초로 YTN에 공개된 마을에는 지금도 당시 마을 사람들이 살던 집터와 집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사단 마을'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이유는 4·3 당시 내려진 초토화 작전 때문입니다.

[오승국 / 전 제주 4·3 평화재단 총무팀장, 시인 :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내려지면서 제주도 전체가 초토화 작전으로 변하게 됩니다. 해안에서 5km 이상 된 모든 중산간 마을들이 불타고 사라지게 되는데 지금도 재건되지 않고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는 게 130여 마을이 됩니다.]

주민들이 직접 성금을 모아 마련한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의 영모원에는 항일 애국열사와 한국전쟁 전몰 호국 인사, 제주 4·3 희생자 영령을 한 곳에 모신 합동 위령제단이 있습니다.

이곳은 제주 4·3의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상징하는 곳이 됐습니다.

[고희범 / 제주 4·3 평화재단 이사장 : '모두가 희생자니 모두가 용서한다.' '산 자는 손을 잡고 죽은 자는 눈을 감으라'하는 그런 화해와 상생을 아주 함축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는 그런 기록이죠.]

제주도는 4·3 기록물이 갖는 역사적 가치를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에 알리고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2월 제주 4·3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 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기록물 등재 대상은 4·3 당시 기록과 희생자 심의 결정기록, 피해자 증언 등 4·3 이후 기록을 포함해 모두 3만여 건에 이릅니다.

[조상범 /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 :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비단 우리 국내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각국 정부에도 굉장한 메시지를 준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우리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4·3 기록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초기 시점에서 냉전, 국가폭력, 민간인 학살 관련 자료들을 한 사건을 통해 한눈에 모두 보여주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기록입니다.

또, 진실과 화해, 상생을 이뤄낸 역사의 기억이자 기록이고 과거사 해결 사례의 선도적 기록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YTN은 오늘 밤 9시 15분부터 '제주 4·3의 기억 세계기록유산으로 다시 피다'라는 특집 다큐를 방송합니다.

YTN 고재형입니다.

YTN 고재형 (jhko@ytn.co.kr)

영상편집 : 전자인

그래픽 : 홍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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