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금지될 비대면 진료… 도입 두고 의료계와 정부 격론 [오늘의 복지 이슈]

이정한 2023. 4. 8. 1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의료계 “진료 대상 ‘재진’으로 제한”
산업계 “‘초진’ 환자도 포함해야”
약사단체 “약국 체계 무너뜨려”
이르면 다음 달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다시 금지된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이어가겠단 입장이지만 수가와 초진 허용 여부 등을 두고 의료계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진료 대상을 재진으로 제한하는 것은 ‘제2의 타다 금지법’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비대면 진료가 도입되기까지 진통이 이어질 전망이다.

7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이르면 다음 달 초 코로나19 감염병 위기경보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되면 비대면 진료는 종료된다. 현행 의료법은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심각 단계 이상의 위기경보가 발령될 때 전화나 화상 통화를 활용한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진다.

이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고 2020년 2월부터 비대면 진료가 허용돼왔다.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세계보건기구(WHO) 코로나19 긴급위원회에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가 해제되면, 우리 정부도 위기평가회의를 열고 위기단계 하향 여부를 결정한다. 위기단계가 내려갈 가능성이 커서 비대면 진료도 다음 달 중 다시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2020년 2월부터 지난 1월까지 3년여 동안 의료기관 2만5697곳에서 1379만명을 대상으로 3661만건의 비대면 진료가 시행됐다. 이 중 코로나19 재택치료를 제외한 비대면 진료는 736만건이 실시됐다.

병원을 자주 방문하기 어려운 의료취약지역 거주자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 어린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 등에게 비대면 진료는 유용하게 활용됐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이용자의 만족도는 높았고, 질환 관리에도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고 만성질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약물을 꾸준하게 복용한 정도를 나타내는 처방지속성이 비대면 진료 허용 전보다 늘어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서는 비대면 진료 이용자의 77.8%가 ‘비대면 진료 이용에 만족한다’고 답했고, 87.8%는 ‘재이용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형훈(오른쪽 두 번째)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지난 1월30일 오후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보건복지부-대한의사협회 제1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의료계는 과거 비대면 진료가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가속하고, 의료사고 위험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비대면 진료 도입을 반대해왔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비대면 진료의 효과를 경험하면서 의료계도 이를 일부 도입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정부와 의료계는 지난달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재진 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큰 틀에서는 비대면 진료 도입 필요성에 대해 이해관계자들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가 도입되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쟁점은 진료 대상을 ‘재진’으로 제한할지 여부다. 같은 병으로 병원에서 90일 내 진료를 받으면 재진인데, 의료계는 환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처음부터 비대면 진료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불충분한 정보로 인한 오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지면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증가해 동네 의원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 등 산업계는 ‘초진’ 환자를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용자의 대부분이 초진 환자이기 때문에 재진으로 대상이 제한되면 사실상 대부분의 업체가 도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지난 3일 다른 의료법 개정안과 달리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약 배송’을 두고는 약사단체의 반발이 크다. 환자가 전화나 영상 통화로 진료를 받으면 처방전이 동네 약국으로 가고, 약은 택배업체를 통해 환자의 집으로 배달된다. 약사단체는 약 배송이 기존의 약국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고, 약국이 대량 조제·배송에만 중심을 둔 ‘공장형 약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이런 문제들은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와 의료계, 산업계 간 입장차가 커서 비대면 진료에 대해 합의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만큼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도 시범사업을 통해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지난 5일 “법 개정 이전이라도 정부에 시범사업을 통해 징검다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일부 우려에 대한 보완 방안을 마련해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되도록 의료법 개정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