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운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땀의 기술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결말은 이미 나와 있다. 위기와 갈등은 어떻게든 해결된다. 그 끝은 분명 감동의 눈물이 닫을 것이다. 어쩌면 빤하디빤한 전개의 스포츠 실화 영화에 우리는 왜 열광하는가. 아마도 스포츠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빛나는 승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 세계에선 아직 정정당당한 땀의 가치가 통한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는 몸과 마음을 목격하는 기쁨 역시 크다. 이는 가장 불가항력적인 순수이며, 세상 그 무엇에 견주더라도 지지 않을 힘이다. 오합지졸 농구팀의 기적과도 같은 승부 과정을 담은 《리바운드》는 실패했다고 믿었던 바로 그 순간, 다시 한번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짜는, 한 걸음 더 내딛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순도 100% 진심을 믿는 영화다. 인물들의 땀 냄새까지 어여쁘게 느껴질 만큼 패기와 기세가 두루 좋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연들
2012년, 원주에서 펼쳐진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대회에서는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했다. 주연은 부산 중앙고 농구팀 그리고 이들을 이끈 강양현(현 3X3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그는 고교 농구선수 시절 MVP까지 경험했지만, 2부 리그를 전전하다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 해체 위기의 모교 농구부에 투입된 초보 코치였다. 당시 중앙고는 농구부 폐지가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그러나 강양현 코치는 부상 후 길거리 농구를 전전하던 학생, 중학교 시절엔 내내 벤치만 지키다 경기에 등판해본 적도 없던 학생 등을 모아 여섯 명의 조촐한 선수단을 꾸렸다.
농구는 체력 소모가 큰 운동이다. 선수 교체를 감안하면 단 여섯 명으로 전체 경기를 소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다. 더군다나 실제 경기를 치르는 도중에 선수 중 한 명은 부상을 입어 출전이 아예 불가능했다. 그러나 부산 중앙고는 단 다섯 명의 선수로 결승에 오르는 엄청난 이변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2012년은 '허재의 아들' 허훈 선수가 농구 명문 용산고를 이끌던 해다. 결승 결과는 용산고의 압승이었으나, 완패한 부산 중앙고에 더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교체 선수 없이 다섯 명이 달려온 8일간의 여정은 투혼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우승보다 값진 준우승을 일궈낸 그들은 '헝그리 베스트 5'라는 수식으로 불렸다.
《리바운드》를 둘러싼 '영화 같은' 사연은 이게 끝이 아니다. 강양현 코치와 선수들의 이야기가 워낙 감동적인 알맹이지만,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외부 상황도 만만치 않게 드라마틱했다. 2012년 당시 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는 부산 중앙고 뉴스를 접하고 바로 영화화에 착수했다. 그러나 스포츠 영화, 그것도 농구 영화라는 점이 제작의 발목을 잡았다. 1990년대에는 농구 대잔치가 열릴 만큼 국내에서 인기 스포츠였지만 이후 열풍이 사그라든 것이 원인이었다. 고교 농구라는 비인기 종목,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의 이야기라는 것도 약점이었다. 오디션을 진행하던 중 투자 문제로 팀이 해산되며 제작이 아예 중단되기도 했다. 프로젝트가 기적처럼 살아난 것은 게임회사 넥슨코리아 덕분. 이 영화는 넥슨의 첫 영화 투자작이다. 위로와 응원의 힘이 있는 스토리라는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아닌 농구 붐, 정확하게는 '슬램덩크 붐'이 일고 있는 타이밍도 《리바운드》의 운을 거든다. 지난 1월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500만 관객을 향해 가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국내 흥행 1위를 기록함과 동시에 식을 줄 모르는 관객 반응에 맞춰 아이맥스 포맷 개봉관까지 열린 상태다. 한마디로, 농구 열풍의 기운을 이어받기에 좋은 시기다. 연출작 《기억의 밤》(2017) 이후 장항준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쌓은 친근한 이미지도 영화엔 호재다. 뿐만 아니라 《공작》(2018) 등을 쓴 권성휘 작가에 이어 장항준 감독의 아내이자 스타 작가인 김은희가 시나리오에 합류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등 드라마는 여럿이지만, 그가 영화 시나리오에 참여한 것은 데뷔작 《그해 여름》(2006) 이후 처음이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힘
《슬램덩크》에 안 선생님이 있다면, 《리바운드》에는 강양현(안재홍) 코치가 있다. 영화는 부산 중앙고가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과정을 유머를 두른 경쾌한 리듬으로 따라간다. 슬럼프에 빠졌던 기범(이신영), 부상을 입은 후 선수의 꿈을 접다시피 했던 규혁(정진운), 길거리 농구 에이스 강호(정건주), 축구선수 출신 순규(김택), 누구보다 농구를 사랑하지만 정작 경기에는 등판해본 적 없는 재윤(김민), 자칭 '제2의 마이클 조던' 진욱(안지호)이 모인 농구부는 오합지졸에서 점차 패기 넘치는 팀의 구색을 갖춰간다.
제목인 《리바운드》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실전에 투입됐을 때 전매특허처럼 쓰던 것으로 잘 알려진 기술이다. 슈팅한 공이 골인되지 못하고 림이나 백보드에 맞고 튕겨 나오면, 그 공을 잡은 이에겐 공격의 기회가 주어진다.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리바운드 기술은, 최약체로 평가받던 부산 중앙고 6인의 선수 그리고 강 코치의 자세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맞이할 수 있는 역경은 삶 전체가 무너지는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돋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양현은 그 '가짜 실패'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숨이 턱끝까지 찬 선수들에게 진심을 다해 외친다. "네가 좋아하는 건 절대 포기하지 마."
다치고 망가져도 "그래도 내일은 농구할 수 있으니까!"를 외치는 선수들의 패기는, 언젠가 우리가 가졌으나 나도 모르게 놓아버렸을지 모를 반짝임이다. "우리가 신나는 거, 미치는 거, 다시 한번 해볼래? 농구?"라는 양현의 제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농구'가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토록 순진하고도 노골적인 다짐과 응원이,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분명 필요하다.
감동 실화의 힘만으로 승부하는 작품은 아니다. 실제 농구 경기를 보는 듯한 몰입감과 긴장된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며 적재적소에서 발휘되는 유머 감각은 《리바운드》의 무기다. 강양현 코치를 연기한 안재홍을 제외하면 이제 갓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청춘 배우들의 패기도 근사하다. 영화 후반, 출연진의 모습이 실제 인물들과 겹칠 때의 웃음과 감동은 영화가 자신만의 레이스를 끝까지 잘 다지며 달려왔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결승 지점에서의 달디단 열매다.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의 흥행 기세가 조금은 가라앉은 시기, '위기를 기회로' 삼는 《리바운드》의 등판은 어쩐지 운명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족구왕'이 자라서…
《족구왕》(2014)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차는 복학생 만섭을 연기했던 안재홍. 10년쯤 후에 《리바운드》에서는 팀을 이끄는 코치가 됐다. 《응답하라 1988》(tvN)을 통해 전매특허로 알려진, 통통한 몸매와 사랑스러운 재치를 갖춘 매력은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10kg 증량 후 촬영에 임한 그가 실제 인물인 강양현 코치로 분했을 때의 '싱크로율'은 놀라울 정도. 선수단을 엄하게 꾸짖은 후 홀로 벌렁이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심호흡하는 등 특유의 유머러스한 박자감을 선보이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좋은 숨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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