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 한화가 공정위 입장 ‘정면 반박’한 사연은?

세종=박효정 기자 2023. 4. 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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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자진 시정방안 제출' 제도 미비로 오해
한화·산은 측의 '무조건 승인' 압박 해석도
[서울경제]

공정거래위원회가 3일 한화(000880)그룹의 대우조선해양(042660) 인수 관련 ‘조건부 승인’에 무게를 두고 독과점 해소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히자 유례 없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화 측이 입장문을 내고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 받은 바 없다”고 정면 반박한 것입니다. 공정위로부터 인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기업 측에서 일종의 반기를 든 모습은 이례적이라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한화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3일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주식 취득 건과 관련해 “현재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 방안 등을 (한화 측과) 협의 중”이라며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상 공정위는 처리 중인 사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 원칙’을 고수합니다. 하지만 이날 유럽연합(EU)이 기업결합을 승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정위의 결정만 남게 되자 이례적으로 언론에 심사 경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현재 공정위에서 한화-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심사의 핵심 쟁점은 한화가 함정 부품(전략무기)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함정 시장에서 경쟁사를 봉쇄할 가능성입니다. 한화가 함정 부품의 기술정보를 다른 조선 경쟁사에 차별적으로 제공하면 방위사업청에서 함정을 입찰할 때 경쟁사들이 불리한 평가를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화가 차별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조선 경쟁사들이 함정 입찰에서 불리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정위는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시정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가 되는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구조적 조치’ 또는 특정 기간 동안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 ‘행태적 조치’가 내려질 수 있습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요기요’ 운영사였던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달의민족’을 인수할 때 공정위가 “요기요를 매각하라”고 명령했던 것은 구조적 조치,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일부 노선의 운임 인상을 제한하고 일부 슬롯을 반납하도록 한 것은 행태적 조치에 해당합니다.

대우조선해양. 서울경제DB

그러나 여기에 한화 측은 “현재까지 공정위로부터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받은 바 없고 이에 대해 협의 중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특히 시정조치의 구체적 방안 관련 회사의 입장을 묻거나 관련한 의견을 제출해달라고 요청 받은 바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한화는 공정위의 자료 요구 관련 최대한 빠른 시간에 적극적으로 소명해 왔고 앞으로도 어떤 요구나 대화 요청이 있을 경우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한화그룹이 인수 승인 권한을 쥔 공정위에 반박한 것은 ‘자진 시정방안 제출 제도’가 개정 중인 데서 비롯된 오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현재 공정위는 기업결합으로 독과점 폐해 등이 우려될 때 해당 기업이 스스로 시정방안을 마련하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공정위가 기업에 시정조치를 부과했다면 앞으로는 기업이 직접 방안을 제출해 기업결합을 더 빠르게 마무리하겠다는 겁니다.

공정위는 이러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지난달 27일까지 입법 예고했지만 아직 개정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기업이 직접 시정방안을 제출하는 절차가 공식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위 측이 비공식적으로 방안 제출을 요청했으나, 한화 측은 이를 공식적인 시정방안 제출 요청으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연합뉴스

한화가 공정위에 ‘무조건 승인’을 압박한 것이란 해석도 나옵니다.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지적한 함정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 우려가 낮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방위사업청이 주도하는 무기 입찰 시장의 특성상 한화가 HD현대 등 경쟁사를 불리하게 대우할 경우 더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만큼 한화가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겁니다.

공정위 심사관이 시정 방안을 제시하더라도 최고 의결기구인 전원회의에서 ‘무조건 승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산은 관계자는 “내수에 국한돼 있는 해상 방산시장의 글로벌 경쟁력 육성 및 시장 확대가 필요한 상황에서 본건 투자유치가 신속히 종결되어 대우조선이 정상화된다면 경쟁업체와의 협력적인 경쟁 및 기술혁신, 공급망 다변화 및 안정화를 통해 국내 방산업의 양적·질적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대우조선 정상화의 국가경제적 중요성 등을 고려해 신속하게 승인하여 주기를 희망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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