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과가 없어진다니…” 폐지안 발표된 명지대 바둑학과 재학생의 시린 봄날[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
드라마 ‘글로리’의 세계적인 히트로 또 한번 주목받은 스포츠(혹은 게임)가 있다. 바둑이다. 해당 작품에서 바둑은 주인공 동은(송혜교)의 복수를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장치였다. 온라인쇼핑몰에 따르면 글로리 방영 뒤 바둑 관련 상품은 지난해보다 134%나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인기는 ‘반짝 거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실제 바둑은 지속적으로 위기에 봉착했단 평가를 받아왔다. 그 흔했던 기원도 이젠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 특히 지난해는 바둑계가 심각하게 술렁인 해였다. 1997년 세계 처음으로 바둑학과를 개설한 명지대가 폐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국내외 바둑계 안팎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내후년부터 바둑학과는 신입생을 받지 않을 예정이다.
바둑학과 폐지가 옳은지 그른지는 잠깐 판단을 미뤄두자. 어느 쪽이건 각자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바둑의 위기’란 거대담론이 오고가는 와중에, 정작 제일 중요한 뭔가가 빠진 기분이 든다. 현재 바둑학과를 다니는 학생들, 바로 당사자들의 목소리다. 어릴 때부터 흑돌 백돌과 사랑에 빠져 전공마저 바둑으로 선택한 젊은이들. 그들은 자신이 몸담은 학과가 없어진단 통보를 어떤 심정으로 받아들였을까. 명지대 바둑학과 ‘17학번 복학생’ 고영훈 씨(25)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네, 안녕하세요. 명지대 바둑학과 고영훈이라고 합니다. 2017년 입학했고, 2018년 10월에 군대 갔다가 2021년 1학기 때 복학했어요. 지난해는 1년 동안 과 학생회장을 맡았었습니다. 원래 올해 4학년이 되는데, 따로 준비하는 게 있어서 지금은 휴학 중입니다.”
―대학생다운 소개네요. 바둑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7, 8살 때부터였어요. 2000년대 초반인데 그땐 산만한 아이들에게 바둑 가르치는 게 자연스러웠나 봐요. 부모님 말로는 제가 워낙 까불까불하고 어디 가서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했대요. 집중력이라도 키우라고 연년생 형이랑 같이 학원에 보냈답니다. 형은 2, 3년 다니다 관뒀는데 전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그때부터 재능을 드러낸 거군요.
“에구, 진짜 기재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프로기사들은 네댓 살 때부터 시작하니 늦기도 했고, 그냥 광주의 조그만 동네 학원에서 잘 두는 정도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상급학원으로 옮겼는데, 이미 그때 ‘벽’을 좀 느꼈어요. 저보다 어린 데 훨씬 실력있는 친구들이 많았죠. 근데 이상하게 낙담하기보단 바둑이 더 재밌어졌어요. 왠지 도전의식이 샘솟았다고나 할까요. 중학교 올라간 뒤엔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계속 바둑을 두고 싶었어요. 프로기사가 되긴 어렵더라도 바둑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싶단 생각을 했죠.”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쉽지 않은 선택인데.
“감사하게도 제 뜻을 존중해주셨어요. 현실적으로 프로기사가 되긴 어렵다는 걸 부모님도 아셨지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라고 격려해 주셨죠. 그래서 그때부터 명지대 바둑학과를 목표로 준비했어요. 그런데 운 좋게도, 중3 때 전남 순천에 한국바둑고등학교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가 2회 졸업생인데, 지금은 경쟁률이 치열하지만 그때는 신설이라 입학도 그리 어렵지 않았고요. 기숙사까지 있는 학교라 집중해서 바둑 실력 쌓기에 좋은 조건이었어요.”
“하하, 사람들은 그게 제일 궁금한가 봐요. 하루 종일 바둑만 두냐고 묻더라고요. 다른 학교랑 똑같이 국영수 등 정규 과목 다 그대로 배워요. 다만 주 10시간 바둑이 정규 수업에 포함돼있죠. 자유시간엔 바둑도 두고 축구도 하고 각자 하고 싶은 거 하고요. 대신 교내에 ‘리그전’이라는 게 있어요. 학생들끼리 바둑 둬서 그 성적으로 1군부터 6군까지 등급이 매겨져요. 아무래도 바둑이 주 목적인 학교니까, 바둑 실력이 중요하죠.”
―영훈 씨는 주로 몇 군이었나요.
“1, 2군을 들락날락했어요. 바둑은 특성상 4, 5군인 친구가 1,2군으로 가는 건 거의 드물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실력이 갑자기 늘지 않는데다, 상급자들일수록 더 열심히 하기 때문에 비집고 올라가기가 엄청 어렵죠. 다만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한번씩 등급이 요동쳐요. 나이 어린 후배여도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면 선배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죠.”
―요즘 드라마 ‘글로리’가 화제잖아요. 바둑고등학교는 학폭과는 거리가 멀겠어요.
“아무래도 바둑 특성화 학교다보니 그런 면이 있죠. 바둑을 제일 잘 두는 학생이 가장 인정받는 곳이니까요. 바둑 두는 사람들이 대체로 성격이 차분하기도 하고요. 제가 알기론 심각한 폭력이나 따돌림은 없었어요. 하지만 저희 학교도 서울을 포함해서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어 기숙사 생활을 하거든요.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모였으니 시끄러울 때도 없진 않죠.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다들 잘 지냈던 거 같아요.”
―바둑고등학교를 나오면 바둑학과 진학이 쉬운 편인가요.
“전혀 아니에요. 바둑고등학교라서 무슨 가산점이 있는 건 아니고, 각 지역 연구생들을 포함해 전국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요. 저 때도 입학 경쟁률이 3 대 1 정도 됐었어요. 게다가 바둑학과 지망생들은 여기가 아니면 대안이 없어요. 바둑학과 떨어졌다고 뜬금없이 다른 과를 갈 순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만약에 대비해서 고3 때 체대 입시를 같이 준비했어요.”
“다행히 바쁘게 사는 게 제 성향에 잘 맞았어요. 사실 바둑학과만 준비할 땐 오히려 고민도 많고 답답할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체대 입시 학원도 다니니까 시간은 빠듯했어도 뭔가 스스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1분 1초까지 쪼개가며 열심히 사는 게 저를 단련시키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거든요. 그래서 체대 학원 다니던 도중에 바둑학과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도 끝까지 계속 다녔어요.”
―이미 합격했는데 왜 굳이 학원을 계속 다닌 건가요.
“어…, 제가 합격했다고 중간에 관둬버리면 괜히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잖아요. 같이 열심히 준비하던 친구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요. 누가 빠져나가 버리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도 있고요. 나중엔 가까운 몇 명한테는 말했지만, 학원 쪽에는 아예 얘길 꺼내질 않았어요. 저로선 체력도 단련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책임감이 무척 강한 편인가 봐요.
“주어진 일이 있으면 피하지 않는 성격이긴 해요. 근데 그보다는 바둑에만 매몰돼서 외골수로 살지 않고 싶었어요. 바둑인이라고 하면 왠지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물론 실력이 좋아서 프로기사로 나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겠죠. 하지만 바둑을 매개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었기 때문에 뭐든지 열심히 경험해보려 했습니다. 대학 와서도 여기저기 정말 많이 참여했어요. 물론 바둑학과다보니 바둑에만 집중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지만, 전 이런 스타일이 잘 맞았어요.”
―군대 다녀와서 학생회장을 한 것도 그런 성향의 연장선인가요.
“일단 당시 학생회장 선배가 선거에 나가보면 어떠냐고 추천을 했어요. 원래는 제대 뒤에 교환학생을 목표로 토플 공부를 열심히 했었고, 코딩이나 영상 촬영 같은 것도 배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학생회장이 돼서 과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거죠. 저로서는 바둑학과가 좀더 나아지고 한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럼 한번 해보자’ 싶더라고요. 그런데 학생회장 하면서 (바둑학과 폐과라는) 그런 엄청난 사건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하필 학생회장 때라 더 힘들었겠어요.
“충격이 컸죠. 학생들을 위해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과가 없어진다니…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죠. 뭔가 낌새라도 느꼈으면 대비라도 했을 텐데, 정말 갑작스러웠거든요. 아시다시피, 저희 과는 좀 특별한 학과잖아요. 세계에서 유일하기도 하고. 한국 바둑계의 인재를 키워내는 산실 같은 곳인데, 처음엔 이게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인지 믿기지가 않았어요. 평생 쌓아온 뭔가가 타인에 의해 무너지는 기분마저 들었어요.”
(하편에서 계속)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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