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강력하다[영감 한 스푼]

김민 기자 2023. 4. 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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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자 니센바움, <신명, ‘어느 봄날’, 드레스 리허설> (2022)작가 및 뉴욕 안톤 컨 갤러리 제공. 사진: 토마스 바렛. © 알리자 니센바움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7일) 개막하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의 프레스 오픈에 다녀왔습니다.

지난번 이숙경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맛보기로 소개해드렸는데요. 전시장에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 또 어떤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서로 다른 것들도 물과 함께 흐른다

블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 작품과 ‘영혼 강림’(2022).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전시장에 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케이프타운과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작가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 작품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흙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고, 그 사이를 걸어가면 나무 그루터기 같은 의자와 그 위로 밧줄이 늘어트러져 있습니다. 늘어진 밧줄들은 자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정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더 깊숙히 들어가면 빔프로젝터가 물 위로, 두 벽으로 영상을 상영합니다. 영상 속에서는 여성이 흙과 땅을 비롯한 자연에 몸을 맞대고 소리를 듣는 듯 움직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작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 사이에서 영혼을 치유한다는 ‘상고마’ 전수자입니다. 영상 작품은 물 동굴 평야 등에 깃든 영혼을 상상하는 장면이고, 설치 작품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죠.

이 작품은 우리가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해왔던 서구 중심의 문명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수세기 동안 남아공에 살았던 선주민들의 전통적인 치유 방식도 서구 문명 만큼이나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또 그 치유 방식이 어쩌면 과도한 문명의 발달로 지구 온난화 등 자연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지금 대안이 될 지도 모릅니다.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의 첫 관문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주된 흐름에서 소외되어 가치 없거나, 다르거나, 열등하다고 여겨졌던 것들도 모두 가치가 있다. 탑을 쌓는 듯한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포용하고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힘을 갖자.

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숙경 감독의 말입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하고, 그것은 분열과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물의 은유를 사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광주 정신과 ‘예향’의 지역성

광주 북구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의 첫 번째 섹션 ‘은은한 광륜’에 말레이시아 작가 그룹 팡록 술랍의 목판화(중앙)가 오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왼쪽 벽면에는 아부다비 출신 작가 파라 알 카시미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광주=뉴시스


다만 이런 소외된 이야기와 문화, 선(先)주민과 디아스포라 등의 주제는 최근 동시대미술 전시에서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광주비엔날레만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이숙경 감독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광주라는 장소성을 출발점으로 삼고 싶었다. 광주 정신과 예향이라는 특성이 시작점이었고, 이를 통해 광주 밖 세계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는 저항, 불평등, 정의를 생각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보고자 했다.”

이러한 주제는 첫 번째 전시관 ‘은은한 광륜’에서 두드러집니다. 5.18 민주화운동 때 제작됐던 목판화에서 영감을 얻은 말레이시아 그룹 팡록 술랍의 작품(위 사진), 광주의 놀이패 신명의 모습을 담은 알리자 니센바움의 회화(첫 번째 사진)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엄정순, <코 없는 코끼리> (2023). 철판, 양모, 천. 300 × 274 × 307 cm. 작가 및 광주비엔날레재단 제공


이런 작품들은 참혹했던 현대사를 사실주의적으로 그렸던 강연균 작가가 검은 밤하늘에 흰 나무가 퍼진 듯한 형태로 그린 추상화 ‘화석이 된 나무’, 시각 장애 학생들과 함께 만든 엄정순의 ‘코 없는 코끼리’ 등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억압과 차별에 대한 저항은 광주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공명한다는 메시지로 확장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진정성 있다

장지아, 설치 전경. 작가 및 광주비엔날레재단 제공


그러면서 전시는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 개개인의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여성, 인종, 식민주의, 기후 환경 등 동시대에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수많은 주제들을 다룬 작품들이 펼쳐집니다.

여기서 방점이 찍힌 부분은 ‘개인’입니다. 선주민 출신인 작가가 자신의 민족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어릴 때부터 미술학교를 다니지 않고 할머니에게 배운 기술로 그림을 그리거나(막가보 헬렌 세비디), 영혼을 위로했던 전통 의식을 퍼포먼스 작업으로 재해석(노에 마르티네즈)한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막가보 헬렌 세비디, <인생은 어렵다> (1993). 종이에 파스텔. 75.5 x 56.5 cm. 작가 제공


결국 주류나 정해진 것에 억압되지 말고, 스스로를 깊이 파고들면 그것이 보편적인 세계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로도 풀어낼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것들은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더 멀리 퍼질 수 있다. 왜냐면 거기엔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작업은 일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의 ‘삶의 극장’(2023)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일본 작가지만 제국주의의 문제를 다룬 고이즈미는 이러한 이유로 일본 미술관에서는 전시가 잘 열리지 않아 보기 어려운 작가라고 합니다.

그는 광주 고려인마을의 현재와 과거를, 1932년 설립된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드러냅니다. 광주 고려인 공동체에 속한 청소년 15명이 고려극장의 사진 기록을 참고해서 연극적 장면을 연출하고 다양한 장면들이 서로 겹쳐서 영상으로 보여집니다.

등장 인물들의 일상적인 웃는 얼굴 아래로 역사 속의 장면인 듯한 이미지들이 무수히 중첩되면서,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얼마나 많은 역사의 시간과 다양한 지역과 문화가 들어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고이즈미 메이지로 ‘삶의 극장’ 2023.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 내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장소와 시간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나와 함께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로까지 넓혀 나아가는 것.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제가 얻은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소개되지 않은 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한 번 직접 경험해보세요.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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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의견
(지난주 에드워드 호퍼 작품에 관한 의견입니다)
🔸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 가기전에 미리 도움되는 내용이었어요. 서로 응시하지 않는 호퍼속 인물이 외로움이 아닌 고독으로 생각되었는데, 내면에 집중하느랴 그럴수도 있겠네요.어쩌면 새로운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는 호퍼가 시사하는 바도 큰 것 같습니다. 호퍼그림을 보면 색감과 구도가 꽤 신선한데요. 이부분도 언제 함 설명 들으면 좋겠습니다.(라나)

🔸 푸른저녁은 호퍼의 그림으로 처음 접하는 것이라 무언가 발견한 느낌과 함께 작가를 한걸음 더 알게되었다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호퍼의 그림들을 감상하며 늘 그 이미지와 상황 속에 자연스레 들어가게 되는데, 아마도 제 자신의 심상과 같은 주파수로 공명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작가, 작품들을 가끔 만나게 되더라구요.
특히 랄프 왈도 에머슨의 사상을 존경했다는 데에서 더욱이요.
이제 전시 오픈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이후에도 호퍼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세요!!! *^^(felix)

🔸삐에로도 인상 깊었지만 삐에로 맞은편에 모자에 담배를 문 턱수염의 남자가 빈센트 반고흐 같아서 인상 깊네여ㅎ

🔸개인적으로 호퍼를 너무좋아해 회사재직시절 목돈이 생길때마다 비록 카피본이지만 호퍼의 작품들을 사서 제 방에 걸어놓고 매일봅니다 특히 제가워낙 올빼미형이고 밤을 좋아하다보니 밤의 사람들은 제 침대바로 위에 놓여있을정도지요🤗 오늘소개한 작품들중 푸른저녁 과 비슷한작품으로 똑같은 옷차림으로 높은 무대같은곳에 올라가 관객들에게 커튼콜을 하듯 인사하는 작품이 있는데 저는 그작품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거의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과 역시 화가였던 와이프와 함께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에대한 인사처럼 느껴져서 말이죠😭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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