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진흙탕에서 피어난 꽃 ‘페이크’ [ESC]

한겨레 2023. 4. 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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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오늘하루운동 주짓수
숙련도·연기력까지 필요한 속임수
악법도 법, 치사한 전략도 전략
방식은 달라도 우아한 싸움 없어
지난 1월 서울의 한 주짓수 도장에서 양민영 작가가 남성 수련자를 상대로 오모플라타(다리를 이용해 상대의 어깨를 꺾는 기술)를 구사하고 있다. 박종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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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세계는 정정당당하다.’

한때는 이 말을 믿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운동해본 적이 없거나 그저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이들이 섬길 법한 말이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절반의 진실이랄까?

운동의 달고 맵고 쓰고 짠 맛을 수없이 먹어본 바에 따르면 스포츠는 룰을 위반하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만 정정당당하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비밀스러운 전략과 꼼수인 듯, 꼼수 같은, 꼼수 아닌 꼼수가 가득하다.

사전에서 ‘꼼수’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쩨쩨한’이라니, 주짓수의 성격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수식어가 또 있을까. 처음 주짓수를 접하고 이 운동에 관한 인상비평을 내렸을 때도 이런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들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공격과 방어가 하나같이 집요하고 처절해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싸움은 어차피 이판사판

그러다가 주짓수라는 깊은 물에 정수리까지 담그고 나서야 깨달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게 주짓수라는 걸. 또 그전에는 나에게 부족한 게 힘과 기술, 두 가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략이나 계략도 역부족이었다. 흔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고 하지만 그런 자세로 싸우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가? 스무고개 하듯 질문을 던져 보면 마지막엔 항상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맞닥뜨렸다. 40년 인생을 근거로 도출한 빅데이터에 따르면 너무 강하거나 굽히지 않는 여자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못 이긴 척, 모르는 척, 대가 없이 내 것을 내어주는 척, 연기라도 해야 그제야 선심 쓰듯 곁을 준다.

반면에 ‘삼십대 후반에 주짓수를 시작한 도전적인 여자’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출시한 새로운 정체성이었다. 두 가지 정체성이 보기 좋게 충돌했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이라도 발을 빼고 우아한 운동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누구보다 치사하게 싸워볼 것인가?

이때 내가 선보인 주특기가 신세 한탄이었다. 왕년에 주짓수 대회에도 출전했던, 싸움깨나 했던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이 늘어졌다. 그러자 친구가 코웃음을 쳤다. “민영아, 싸움은 힘이나 기술로 하는 게 아니야, 투지로 하는 거지.” 그의 한마디에 방황을 끝낸 나는 전과 다르게 싸워보기로 했다. 먼저 가능한 한 우아하게 싸우겠다는 터무니없는 이상부터 버렸다. 우아하게 싸운다고 박수칠 사람도 없거니와 그냥도 싸우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우아하게 싸우겠는가.

게다가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힘과 기술이 월등한 데다가 전략과 술수에서도 한참 앞서는 이들이었다. 예를 들어서 나는 분명 배를 발로 걷어차인 것 같은데, 그들은 태연하게 발로 밀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싸움이란 건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다음으로 한 일은 따라 하기,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꼼수에는 꼼수’다. 꼼수라는 꼼수는 죄다 수집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를테면 스파링의 시작을 뜻하는 콤바치(combate, 싸움·전투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스파링 상대와 손바닥을 마주친 후 주먹을 맞닿게 하는 동작) 다음에 찾아오는 짧은 공백을 기습적인 공격으로 메웠다. 또 버깅(bugging, 괴롭힘)이라고 해서 주먹 뼈로 상대의 경동맥을 짓누르고 방심한 이의 발을 야무지게 밟았다. 바로 어제 주짓수를 시작한 생초보의 자아도 사정 없이 깨부쉈다. 그러나 그처럼 안간힘을 써봐도 눈 뜨고 코 베인 꼴을 면하지 못했다. 꼼수라고 다 같은 꼼수가 아니며 꼼수 사이에도 나름의 우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생 치트키 ‘불확실성 속 반전’

한마디로 꼼수에는 한계가 없다. 한번은 바닥에 누웠다가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는데 도무지 일어나지지 않는 일이 있었다. 상대가 힘으로 눌렀느냐면 그것도 아니고 목이나 팔을 붙잡히지도 않았다. 한참을 버둥거리다가 눈에 들어온 건 도복 상의를 밟고 있는 상대의 발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풀어진 옷자락을 밟힌 거다. 어찌나 세게 밟혔는지 양손으로 힘껏 당겨도 소용없었다. 그러니 꼼수를 만만하게 보거나 무시하지 말지어다.

매트 위에서 갖은 풍파를 겪었더니 자연히 인간성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스포츠를 보는 시각도 완전히 달려졌다. 누워서 시간을 버는 침대 축구, 상대 팀의 사인을 알아내는 야구의 사인 훔치기, 급소를 가격하는 복싱의 리버 블로우(liver blow)는 과연 나쁘기만 한가? 이런 전략들은 비신사적이라고 비난받지만 악법도 법이듯 치사한 전략도 전략이다. 심판이 치사하게 이긴 자가 아니라 신사적으로 진 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이상 꼼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또 뜻밖의 순기능이라 할 만한 효과도 없지 않다. 꼼수라는 토양에서 피어나는 귀하고 아름다운 꽃, 그 꽃의 이름은 ‘페이크’(속임수)다. 가장 수준 높은 기술의 경지인 페이크에 이르려면 일단 그 기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또 누구든 속을 정도로 숙련되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고도의 연기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연기이면서도 연기가 아니다. 페이크는 진실로 어떤 기술을 시도하다가 즉시 전환함으로써 완성된다. 흔히 고수는 공격하면서도 방어를 생각하고 방어하면서도 공격을 생각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갈고 닦은 페이크를 적재적소에 선보이고 성공했을 때 기술의 화려함은 배가 되고 관중은 뜨겁게 환호한다.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이 그의 고향에서 이름을 딴 마르세유 턴(360도 회전하면서 수비수를 따돌리는 기술)을 선보일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가. 물론 모두가 열광하는 가운데 단 한 사람, 절대로 열광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바로 그 속임수에 번번이 속는 나 같은 피해자들이다.

정말이지 주짓수는 세상이 얼마나 짜증 나는 곳인지 가감 없이 가르쳐 줬다. 사람마다 싸우는 방식이 다르듯 사는 방식도 제각각이며 우리는 저마다의 고유한 전략으로 경기를 치른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전략을 쓸지, 직접 부딪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꼭 최악의 일만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 극적인 반전을 포함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흥미롭게 하는, 거의 유일한 치트키다.

양민영 작가

사회적기업 운동친구의 대표이며 「운동하는 여자」를 썼다. 페미니즘과 여성의 운동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못 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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