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국회’ 여파에 대통령 소속 위원회 통·폐합 ‘진퇴양난’[현장에서]
상임위원장들 野…기존 위원회도 ‘유명무실’
그나마 지방시대委 출범만 진전
집권 2년차 尹정부에 힘실어줄 때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대통령 소속 위원회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식물위원회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대통령 소속 위원회 통·폐합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인 정부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수개월째 이어져 온 ‘방탄 국회’가 해를 넘기면서 관련 법안들이 각 상임위원회에 6개월째 계류 중인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20개 법률명 묶어서 의안 제작
최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9월 30일 일괄 제출된 대통령 소속 위원회를 비롯, 정부 위원회 관련 정비 의안들은 총 27건으로, 지금까지 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 의안들은 220개의 법률명을 상임위와 부처별로 묶어서 만들어졌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9월 당시 20개 중 13개를 정비하는 내용의 대통령 소속 위원회 정비 방안을 발표했다. 8개 정도만 남기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6일에도 이 같은 내용의 정비안을 최초 발표한 바 있다. 국민들에게 전달한 시점으로 보면 9개월째 답보 상태에 놓인 것이다.
우선 국가교육회의와 4차산업혁명위원회, 북방경제협력위원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국가인적자원위원회는 소멸했거나 폐지된다. 대부분의 위원회는 2017년에 출범해 현재 해산했고, 2018년 9월 14일 출범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올해 9월 13일까지만 운영된다. 국가인적자원위원회의 폐지 내용을 담은 의안은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를 위한 과학·수학·정보 교육 진흥법 등 14개 법률의 일부개정에 관한 법률안’으로 현재 교육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또 국가지식재산위원회와 소재부품장비경쟁력강화위원회, 국가물관리위원회, 아시아문화중심도시위원회는 총리 소속으로 변경된다.
하지만 관련 위원회 정비 법안은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는 게 대통령실 주장이다. 예컨대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총리 소속으로 변경하는 내용은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를 위한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의 성과평가 및 성과관리에 관한 법률 등 7개 법률의 일부개정에 관한 법률안’에 포함돼 있다. 담당 상임위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다.
소재부품장비경쟁력강화위원회의 소속 변경 의안은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를 위한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등 15개 법률의 일부개정에 관한 법률안’으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발이 묶여 있다. 국가물관리위원회의 소속 변경안은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를 위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등 15개 법률의 일부개정에 관한 법률안’(환경노동위원회)에, 아시아문화중심도시위원회의 소속 변경은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를 위한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등 15개 법률의 일부개정에 관한 법률안’(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각각 포함됐다.
대통령실, 위원회 정비 후 수장 선임 예정
또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부처 소속으로 변경된다. 관련 의안도 각각 문체위, 국토교통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 위원회 통·폐합 안건만 담은 게 아니라 여러 위원회 정비 내용, 상임위 안건을 묶은 것은 물론, 각 법령 개정에 필요한 안건들도 포함시켜서 국회에 제출했다”면서 “하지만 국회의 비협조로 인해 시간만 흘러가고 기존 위원회 조차도 제 기능을 못해 ‘유명무실’화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설 위원회를 제외한 통폐합을 앞둔 위원회에는 새 위원장을 앉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실은 통·폐합 대상에 오른 위원회의 수장 선임은 정비 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기존 위원회를 사실상 방치하다시피하다 보니 세금은 세금대로 낭비되고 있다는 게 대통령실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소속 위원회 정비 의안이 제출됐지만 안건이 계류 중인 상임위의 위원장들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나타났다. 해당 상임위 위원장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정청래 의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윤관석 의원 △환경노동위원장 전해철 의원 △문화체육관광위원장 홍익표 의원 △국토교통위원장 김민기 의원 △보건복지위원장 정춘숙 의원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관계자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 통·폐합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 고위관계자도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한번도 관련 법안 논의 요청이 오지 않아 논의 대상에 오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여야의 정쟁으로 인해 각종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반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합치는 지방시대위원회 출범 작업은 그나마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관련 내용을 담아 지난해 11월 2일 제출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은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어야 본회의 안건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현행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두 위원회 업무를 통합해 수행한다.
한편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국가우주위원회,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는 현행대로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유지된다. 다만 향후 시대 상황에 맞게 기능과 거버넌스를 보완·개편할 계획이다.
여당도 최근 지도부를 새로 꾸리고 대통령실과 단일대오를 형성한 만큼 위원회 정비 작업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한 관계자는 “그간 방탄 국회로 윤 대통령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기 힘들었지만, 이제 새롭게 지도부를 꾸린 만큼 위원회 정비 작업 등 윤석열 정부의 행보에 힘을 보탤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총 636개에 이르는 정부위원회(대통령 소속 위원회 포함) 중 39%인 246개를 통폐합하면서 약 300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 예산을 줄이는 행보에는 여도, 야도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진 위원회는 이미 소멸됐거나 곧 없어진다. 전임 정부도 집권 초기 국정 운영에 힘을 보태기 위해 5년 임기로 하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아직도 정국이 경색돼 있긴 하지만, 국회도 이제는 집권 2년 차 윤석열 정부에 힘을 보태줄 때도 되지 않았나.
박태진 (tjpar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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