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쓰레기에 미래 걸었다” 고물상까지 뒤지는 SK ‘이 기업’ 아시나요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계열사가 많은 기업이 어딘지 아시나요? 시가총액 1위 삼성도, 거대 플랫폼 카카오도 아닙니다. 바로 SK그룹인데요. 올해 2월 기준 무려 201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합니다. 200개가 넘는 회사가 반도체, 정유·화학·배터리, 정보통신 등 분야에서 저마다의 바퀴를 굴려 SK가 성장하고 있는 거죠.
8일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SK는 최근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서울 종로타워 꼭대기에 SK의 상징과도 같았던 주황색 대신 초록색 행복날개를 단 문패를 내건 겁니다. 넷제로(탄소 중립) 달성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의지이자 친환경 사업 전환에 속도를 내겠다는 포부로 읽힙니다.
오늘은 SK의 친환경 경영 선두주자인 SK이노베이션, 그중에서도 SK지오센트릭이라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SK이노베이션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유·화학 회사입니다. 수출입·유통은 물론 탐사·개발과 화학제품 생산까지 석유와 관련된 사업은 모두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역시 기름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야말로 돈 잘 버는 회사죠.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흐름 속에서 SK이노베이션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름집인 만큼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나선 거죠. “카본 투 그린(Carbon to Green)” 탄소 중심의 사업을 친환경 중심으로 혁신하겠다는 게 SK이노베이션의 비전입니다.
‘카본 투 그린’의 중심에 있는 기업이 바로 SK지오센트릭입니다.
SK지오센트릭은 석유로 화학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입니다. 옛 이름은 SK종합화학. 설립 10년 만인 지난 2021년 사명을 ‘지구 중심적(Geo Centric)’이라는 의미의 SK지오센트릭으로 바꿨습니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재활용 기반 화학회사로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의지가 담긴 선택이었죠.
SK지오센트릭은 종합화학 시절부터 해외에서는 SKGC(SK글로벌케미칼)라고 불렸다고 해요. 글로벌 파트너사가 워낙 많아 SKGC의 약자를 그대로 사용하기를 원했죠. 글로벌케미칼(GC)을 지오센트릭(GC)으로 바꾼 아이디어가 기발합니다.
지금까지는 올레핀·아로마틱 등 기초유분이나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과 같은 범용 화학제품을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면 이제 그보다는 플라스틱 함량을 줄인 고기능 소재 생산과 폐플라스틱 재활용에 방점을 찍겠다는 겁니다.
SK지오센트릭의 변신은 이제 시작이지만, 출발은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전반적인 화학 업황이 바닥이다 보니 실적이 좋다고 보긴 어려워요. 지난해 매출을 보면 13조9168억원으로 2021년(11조7041억원)보다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132억원에서 879억원으로 60% 가까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포트폴리오가 달라졌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고부가소재의 매출 비중이 에비타(EBITA·감가 상각 전 영업이익) 기준 2018년 2%에서 2022년 54%까지 늘어난 점이 대표적입니다. 올해는 업황 개선에 고기능 소재의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되면서 영업이익이 개선될 것으로 SK지오센트릭은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SK지오센트릭이 중점을 두고 있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까지 본격화되면 더 큰 사업구조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SK지오센트릭은 약 1조7000억원을 투입해 울산에 축구장 22개 크기의 종합 재활용 단지 ARC(어드밴스드 리사이클링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열분해, 페트(PET) 해중합,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등 3가지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기술이 모두 적용되는 재활용 단지는 전 세계를 통틀어 ARC가 처음이죠. 2025년 가동되면 연간 25만t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제품을 생산하게 됩니다.
열분해, 해중합, 고순도 추출… 이게 다 뭐냐고요? 모두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방식입니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크게 기계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으로 구분됩니다. 폐플라스틱을 수거·선별·세척·파쇄해 원료화 하는 게 기계적 재활용이라면, 폐플라스틱에 고온·압력을 가해(열분해) 또는 저온에서(해중합) 분해하거나 혼합 물질에 용매를 넣어 특정 물질을 빼내는(고순도 추출) 등의 방식으로 원료화 하는 것이 화학적 재활용이죠.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약 70%는 오염, 소재 혼합 등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계적 방식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하다고 해요. 그래서 대안으로 화학적 재활용이 떠오르고 있는 겁니다.
SK지오센트릭은 미국 퓨어사이클테크놀로지 등 글로벌 주요 기업과 손잡고 화학적 재활용 3대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열분해유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후처리(정제) 기술은 자체 개발했죠.
주목할 만한 점은 ARC 첫 삽을 뜨기 전부터 판매처를 확보하고 있다는 겁니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소비재 기업 3개사와 총 5만t 규모에 대한 선판매 계약을 체결 중이라고 해요. 다른 글로벌 기업 2곳에서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전체 생산 물량의 70%를 다 짓기 전에 팔겠다”는 게 SK지오센트릭의 목표인데요. 2년이나 앞서 20%를 채웠네요.
그래서 이게 얼마나 돈이 되냐고요? 화학적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는 아직 초기 단계라 수익성을 말하긴 이릅니다. 다만 기계적 재활용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 대비 1.5~2배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죠. 게다가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주요국에서 플라스틱 관련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 공급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지난해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피드(공급)를 찾느라 전국의 작은 고물상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향후 공급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 아무래도 유리하겠죠.
나 사장은 지난달 말 주주와의 대화 현장에서 “리사이클 비즈니스가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사업”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플라스틱 재활용 순환경제를 구축하는 게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죠. 이는 SK이노베이션의 친환경 포트폴리오 구축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도 이 자리에서 핵심 어젠다인 ‘그린 트랜스포메이션의 가시적 성과 창출’을 이끌 핵심 자회사로 SK지오센트릭을 지목했습니다. 김 부회장은 “SK지오센트릭은 모든 종류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글로벌리 유일한 회사”라며 리사이클 비즈니스의 본격 추진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앞에 꽃길만 놓인 것은 아닙니다. 당장 저조한 업황으로 현금창출력이 약화됐고 운전자본투자 부담 등으로 순차입금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쉽게 말해 재무안정성이 떨어진 거죠.
반면 돈 들어갈 곳은 많습니다. 일단 울산 ARC를 설립해야 하고 글로벌 주요 파트너사와 합작법인 설립과 지분투자, 공장 설립 등도 계획하고 있죠. 이미 프랑스의 폐기물 관리기업 수에즈 등과는 2027년까지 프랑스 생타볼 지역에 연간 7만t 규모의 재생 플라스틱 공장을 짓기로 약속했습니다.
SK지오센트릭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환경규제가 본격화되는 2025년 이후 완전히 다른 시장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몇 해째 적극적으로 뿌리고 있는 비즈니스 변화의 씨앗이 2025년 결실로 나타날지 주목됩니다.
“시장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SK지오센트릭의 진정성과 가치를 알아봐 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 재활용 소재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해결책을 제공하는 기업(Solution Provider)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나경수 사장의 신년 인터뷰에서)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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