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드러낸 ‘피해자 주변주의’의 민낯

신다은 기자 2023. 4. 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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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미안해, 기억할게> 36명 희생자 가정 모아보니
참사에 ‘피해자 중심 주의’ 전혀 지켜지지 않아
2022년 10월31일 정부가 국가 애도기간에 설치한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 쪽 분향소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희생자들의 위패와 영정은 없었다. 공동취재사진
2023년 4월 5일은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숨진 지 159일째 되는 날이다. 2022년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서 158명의 삶이 스러졌고 어렵게 살아남은 1명도 사회가 지키지 못해 허망하게 떠났다. 그 사이 몇 번의 경찰 압수수색과 국회 국정조사 질의응답이 있었지만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진상규명은 더디기만 하다. 참사 159일을 앞두고 유가족들이 독립 조사 기구 설립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자며 ‘진실버스’에 오른 이유다.
<한겨레21>은 159일째를 맞이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연재 인터뷰 기사 <미안해, 기억할게>에 실린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싣는다. <미안해, 기억할게>는 2022년12월부터 희생자 각 가정을 기자가 찾아가 인터뷰한 시리즈로 현재 36명의 희생자 가정이 참여했다. 재난 피해자이자 증언자인 유가족들의 시선으로 재난을 다시 바라본다. _편집자

송은지의 아버지 송후봉씨는 참사 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아졌다.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우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은지가 왜 참사 뒤 18시간이나 지나서 경기도 평택까지 갔는지, 유가족이 왜 맨땅에 헤딩하듯 여러 병원을 애타게 돌아다녀야 했는지, 참사 후 국가에서 왜 유가족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었는지, 55일 활동한 국정조사 결과를 어째서 언론을 통해서만 알아야 하는지….” 은지의 아버지는 정부에, 경찰에 수없이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송후봉씨의 질문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삶을 추모하는 연재기사 <미안해, 기억할게>로 만난 36명 희생자 가정의 문제의식을 압축해 보여준다. 정부는 참사 때마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피해자들이 재난 수습과 회복의 전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 <미안해, 기억할게>에서 유가족들이 제기한 쟁점을 <한겨레21>이 모으고 취재했다.

1. 거대한 정보격차

“새벽 3시께 원효로체육관에서 신랑을 발견했어요. 경찰이 ‘지금은 데려갈 수 없으니 나중에 연락주겠다’고 해서 일단 집에 왔는데 뉴스 보니까 병원으로 옮겼다는 거예요. 경찰은 어디로 옮긴지도 모르고… 다음날 오후3시까지 신랑을 못 찾았어요.”(최재혁의 아내 김아리씨)

2022년 10월29일 밤은 가족들이 희생자를 찾아 “미친 듯 오갔던” 시간이다. 수많은 희생자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순천향대병원으로, 임시영안소인 원효로체육관으로, 또다시 수도권 40여 개 병원으로 흩어져 이송됐다. 소방당국이 사태 초기에 상황을 오판해 희생자·부상자 80여 명을 순천향대병원으로 대거 이송했다가 병원이 마비되자 다시 수용할 곳을 찾아다니며 우왕좌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의 이송 상황을 가족에게 안내하는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가족과 친척들은 희생자를 찾기 위해 가까운 병원부터 일일이 들러야 했다.

가족들은 왜 희생자가 이곳저곳을 전전하고 수도권 각지의 병원으로 흩어졌는지 알고자 했다. 그러나 각 기관은 참사 2개월이 되도록 아무런 답변을 않다 2022년 12월29일 국정조사에서야 가족이 아닌 국회의원에게 그 배경을 설명했다. “시신이 길거리에 누운 모습이 시민들에게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어 일단 임시안치소(원효로체육관)를 설치했고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영안실로 모셨다”(김의승 서울시 1부시장)는 것이다.

2022년 12월 권진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책임 연구원 등이 발표한 ‘대규모 사회재난시 피해자 지원체계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과거 재난 때도 사고 현장으로 뛰어온 피해자 가족들에게 구조 상황을 전달하는, 소위 ‘현장 접수 센터’가 없었다. 소방당국은 지방자치단체에 사상자 수색 경과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고 지자체는 직원들끼리 역할 분담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권 연구원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순환보직인데다 재난 경험도 별로 없어 실제 재난 때 우왕좌왕하곤 했다” 고 보고서에서 분석했다.

2. 대답 없는 질문

“의사에게 ‘(딸아이) 심폐소생술은 했냐’고 물었더니 ‘아마 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딸의 검안서에 적힌 사망시각이 2022년 10월30일 자정이어서 ‘이 시각에 숨진 게 맞냐’고 물으니 ‘돌아가신 분들은 일괄적으로 0시로 적었다’고 하더군요.”(김산하의 아버지)

가족들은 희생자 각각의 세부적인 사망 경위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희생자들의 구조 과정이 제각기 달랐음에도 병원들은 사망 장소와 사망 시각을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 노상, 0시 추정(혹은 10시15분 이전 추정)’으로 일괄 작성한 검안서를 발급했다.

사라진 그날 밤의 행적을 가족들이 직접 복원하러 나섰다. 오지연의 어머니는 어렵사리 지연을 옮긴 구급차량의 번호판을 확인해 구급대원과 통화를 시도했다. 은지의 아버지 송후봉씨는 딸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참사 영상을 수십번씩 돌려봤다. 그러나 그날 밤 희생자들이 각각 어떤 경로로 이동했고 어떤 응급조치를 받았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사상자가 다수인 참사에서 개개인의 인적 정보를 전부 다 알기는 어렵겠지요. 그렇더라도 정부가 유가족의 질문을 듣고 최대한 알아봤어야 합니다. 희생자의 마지막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가족들이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고 가기도 해요. 이걸 유가족이 직접 알아보도록 두는 건 모두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입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의 박성현 활동가가 말했다.

일부 희생자는 옷이 완전히 벗겨진 채 가족을 만나기도 했다. 왜 희생자의 옷이 벗겨져 있었을까. “검시하거나 응급처치를 할 때 통상 변사자를 탈의한다. 검시 종료 뒤 옷을 도로 입히면 2차 손상이 있을 수 있어 도포로 덮은 뒤 유가족에게 인계한다.” 조대희 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이 3월28일 신현영 의원실이 개최한 ‘피해자 중심 재난대응 체계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패널들에게 설명한 내용이다. 병원에 도착한 희생자의 몸을 검사나 의사가 살펴보는 과정에서 옷을 탈의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참사 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이런 사실을 유족에게 제대로 설명한 기관은 없었다. 조 계장은 ‘이런 사실을 유족에게 설명했느냐’라는 송경용 생명안전시민넷 대표의 질문에 “국회에서 다 밝혔다”고 말했다. 송 대표가 “아니, 국회 말고 유족들에게 직접 해달라”고 하자 조 계장은 “필요하다면”이라고 답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가 2023년 3월28일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진상규명 서명을 요청하고 있다. 시민대책회의 제공

3. 가해자가 된 공무원

“그날 밤 이태원 가는 지하철이 다 끊겨서 아버지가 경찰에게 응급실 이송을 부탁했는데 거절당했어요. 1:1 매칭 공무원은 제가 직접 전화로 수소문했고 7시간이나 지나서야 연락이 왔어요.”(유연주의 언니 정씨)

참사 이튿날인 10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은 유가족과 공무원을 1:1 매칭해 “필요한 지원을 빈틈없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병원은 희생자를 수습해 집으로 데려가려는 가족들을 반나절씩 대기시켰고 경찰은 진술을 받겠다며 가족들을 경찰서로 수시로 불렀다. 희생자를 먼저 이송한 뒤 인계받는 병원에서 검안서를 발급하거나, 형사가 검시서를 직접 가져다주는 등의 행정 지원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조처는 없었다. 각 지자체가 재난안전법에 따라 수립하는 매뉴얼은 공통적으로 장례와 병원 이송, 심리상담기관 연결 등을 유가족 전담 공무원의 몫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의 주된 역할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장례비 지원 절차를 안내하는 것이다. “상중에 무슨 구청, 시청 다 전화 와서 ‘장례비 지원해줄 테니 영수증 챙기라’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 그랬다. 그런 전화가 발인하고도 또 왔기에 제가 ‘당신 같으면 지금 그러고 싶겠냐’고 하니까 ‘죄송하다, 행정안전부가 집행을 서두르라고 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오지연의 아버지)

1:1 공무원에게 배포된 교육자료부터 재정 지원 위주로 적혀 있었다. <한겨레21>이 확보한 12장 분량의 서울시의 ‘이태원사고 사망자 유족지원계획 직원 교육자료’를 보면, 1:1 공무원의 주된 업무는 ‘유가족 생활안정금 지급’ ‘장례비 지급’ 등 주로 재정 지원 안내였다. 첨부자료로 덧붙인 ‘이태원사고 관련 FAQ’도 질문의 절반 이상이 장례비 지원 관련이었다. 형식적으론 1:1 공무원의 역할이 ‘유가족과의 소통을 제일 우선해 가족의 요구사항을 수시로 파악하고 신속하게 해결’(직원 교육자료 중)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금전 지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원 업무는 안내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4. ‘혐오’를 조장한 정부

“저희가 잘못했대요. 차라리 그날 저도 (하늘나라로) 갔으면 이런 트라우마도 안 겪었을 텐데….”(참사 생존자가 양희준의 누나 현아씨에게)

정부의 책임 회피는 유가족을 향한 혐오세력의 공격을 부추겼다.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부르도록 호칭을 통일했고 “경찰 병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10월30일) 등 책임 회피성 발언이 이어졌다. 이에 가세해 보수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혐오발언을 했고 언론은 이를 제목에 그대로 인용해 실어날랐다. 극우단체인 신자유연대는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을 모욕하는 생방송을 송출하고 후원비를 받았다. 2022년 12월14일, 참사 생존자 이재현군이 숨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좀더 굳건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연구팀은 2020년 세월호 참사 관련 언론보도 등을 분석해 펴낸 ‘재난 피해자 혐오표현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재난 피해자 혐오의 확산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참사 초기엔 인터넷 공간에서 반인륜적 증오 표현으로 시작됐다. 그러다 기존 헤게모니 유지에 위기를 느낀 정치인들이 공식석상에서 혐오표현을 하고 보수단체가 정부 지원을 받아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언론은 혐오표현을 그대로 인용해 널리 확산시켰다. 무엇보다 재난 피해자를 향한 혐오표현이 중대한 인권 침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부족했고 이를 규제할 공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서울에 함박눈이 내린 지난해 12월1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광장에 보수단체 신자유연대가 걸어놓은 펼침막과 스피커를 단 차가 주차되어 있다. 곽진산 기자

5. 사회적 참사에 대한 인식

“예전에는 재난을 자연재해로만 생각해서 재난 수습을 피해자에게 시혜적으로 베푸는 행위로 인식했다. 그 인식이 계속 이어지니 사회적 참사가 더 많아진 지금도 공무원이 재난 피해자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못한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한 오지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법과치유)의 지적이다. 그는 피해자 권리와 지원 체계를 명시한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현행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이 재난 피해자 권리를 배제한 채 재난 수습만을 주로 다루고 있어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2020년 11월 우원식 의원이 대표발의한 생명안전기본법은 2021년 한 차례 소위원회에서만 논의됐다. 이에 4·16재단 등 시민단체들은 입법을 위한 운동본부를 꾸리고 4월5일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금처럼 피해자 지원체계가 완전히 공백인 상태에서는 재난 때마다 피해자가 (필요한 것을) 직접 요구해야 한다. 이대로 계속 갈 수 없다. 국민이 재난을 겪었을 때 당연히 가지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오 변호사의 말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2023년 4월6일 서울 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59일 시민추모대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으로 구성된 ‘4·16 세월호 합창단’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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