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전에는 좋았잖아”...‘베프’라던 두 나라, 갑자기 멀어진 이유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3. 4. 8. 11: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7월 15일 알 살만 궁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지난 한 해 유난히 비쌌던 기름값에 세계가 어려움을 겪었던 거 혹시 기억하시나요?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19 유행 이후 되살아난 에너지 수요 등 여러 요인 탓에 국제유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었죠. 유럽 국가들은 겨울철 에너지 부족과 난방비 급등을 걱정해야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때 무려 1리터(ℓ)당 2000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어요.

다행히 지난해 상반기 배럴당 120달러를 훌쩍 넘겼던 국제유가는 하반기부터 조금씩 안정세를 찾았고, 올해는 3월 기준 60달러대까지 하락했어요. 그래서 사람들도 슬슬 기름값 걱정을 덜 하는 분위기였죠.

그런데, 며칠 전부터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어요. 며칠 만에 무려 10달러 가까이 올랐고, UBS 등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은 “올해 기름값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어요.

기름값은 왜 다시 오르는 걸까
최근 국제유가 급등은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가 이번 달부터 원유 생산을 줄이겠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하면서 일어났어요. 이미 지난해 10월에 OPEC+ 회의에서 대규모 감산을 결정했는데, 갑자기 또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에요.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장관(가운데)이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빈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산유국 협의체 OPEC+는 하루 원유 생산량을 이달보다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EPA = 연합뉴스]
추가적인 감산을 주도한 건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해요. 사우디는 연말까지 감산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며 “국제 원유시장의 안정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어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으로 연쇄적인 금융 위기 우려가 퍼지고 있어 수요 약세에 선제적으로 대비했다는 거예요. ‘앞으로 경제 안 좋아져서 기름 많이 안 팔리면 값이 내려가잖아. 그러니까 미리 생산량 좀 줄일게’ 쯤 되는 거죠.

사실 이번 감산은 단순히 기름값이 오르는 수준을 넘어서서 국제 정세에 큰 변화를 일으킬 만한 결정으로 평가돼요. 80여 년간 미국과 긴밀한 전략적 동맹 관계를 이어왔던 사우디가 중국·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소위 ‘신냉전’으로 불리는 ‘미국 vs 중국·러시아’ 구도가 심화하는 양상인 셈이죠.

80년간 끈끈했던 동맹
미국과 사우디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바로 옆 나라 못지않게 긴밀한 사이였어요. 사우디는 중동 국가 중 미국에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분류돼 왔을 정도죠. 하지만 ‘기름’을 두고 다툼이 시작됐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요. 기름값이 너무 비싸져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게 부담스러운 미국은 원유 생산량을 안 줄이길 원하는데, 사우디는 줄이려고 하거든요.

두 나라는 왜 가까웠을까요? 양국이 친해진 이유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석유’였어요. 사우디에 매장된 석유를 먼저 발견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국가가 미국이었죠. 1938년 사우디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미국의 석유기업들은 ‘아람코(Aramco)’라는 회사를 세워서 석유 개발에 나섰어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주아이마 정유 공장 전경 [사진 제공 = 아람코]
사우디 석유 개발로 미국 기업들은 큰돈을 벌었고, 사우디도 부자 나라가 됐어요. 아람코는 1980년에 사우디 정부가 지분을 모두 사들여서 사우디의 국영기업이 됐고요. (아람코는 지난해 5월을 기준으로 회사 전체 주식 가치의 합을 뜻하는 ‘시가총액’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어요. 애플과 꾸준히 1·2위를 다투는 회사예요)
달러에 힘주고 국력 키운 사우디
두 나라는 1945년에 정식으로 협력 관계를 맺었어요. 양국의 경제적 협력 관계는 1974년에 체결한 ‘페트로 달러 협정’ 이후로 더 강해졌어요. 이 협정은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책임져주는 대가로 원유를 사고팔 땐 달러만 쓰도록 정하자는 내용이에요. 막대한 양의 석유를 생산하는 사우디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의 협정으로 이때부터 모든 석유 거래에는 달러를 사용하게 됐어요.

이 협약은 달러가 사실상의 ‘세계 통화’로 자리 잡는 데에 큰 역할을 했고,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더 강해졌어요. 여전히 사우디와 아랍연맹 국가들은 석유 거래 시 모든 결제를 달러로 하고 있대요.

사우디가 세계 무기 시장의 ‘큰손’이라는 점도 양국의 우호적 관계에 영향을 미쳤어요.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인 이란과 대립하는 *수니파 사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무기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예요(2016∼2020년 기준.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집계). 이런 사우디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으로부터 사들인 무기는 미국이 수출한 전체 무기 중 4분의 1에 달했대요.

무기를 파는 미국도 좋지만, 사우디가 얻는 것도 많아요. 미국의 첨단 무기를 마음껏 수입한 덕분에 중동의 군사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니까요.

두 나라 사이가 안 좋아진 이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부터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어요. 바이든 행정부가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면서, 취임 직후 사우디를 ‘인권 탄압 국가’라고 비판했기 때문이죠.

이후 무서운 물가 상승세에 바이든 대통령이 잠시 태도를 바꾸긴 했지만, 오히려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더 멀어졌어요. 물가 안정을 위해 기름값이 하락하길 원하는 바이든이 사우디에 직접 찾아가면서까지 ‘생산량을 늘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사우디가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거든요.

바이든 대통령의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해 10월 산유국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는 대규모 감산을 결정했어요. 사우디가 이 결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미국 입장에선 뒤통수를 세게 맞은 셈이죠. 바이든 대통령은 “근시안적인 결정”이라는 비판을 쏟아냈어요.

급격히 멀어지는 미국과 사우디
지난해 7월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 참석차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만나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나선 중동 순방에서 원유 증산 협조를 구했지만, 사우디는 이를 거절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때부터 양국 사이 파열음은 점점 커졌어요. 미국 정부는 77년 동안 공고했던 전략적 동맹 관계를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고, 무기 수출은 물론 미국 기업의 사우디 현지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어요.

사우디도 미국에 지지 않고 대응했어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회원국과 더 똘똘 뭉쳐 한목소리를 내면서, 중국·러시아와 더 가깝게 지내기 시작했죠. 사우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빈 살만) 왕세자는 브릭스(BRICS) 가입을 희망한다는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만약 사우디가 브릭스에 가입하거나 러시아·중국과의 관계가 더 끈끈해지면,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하는 ‘페트로 달러’ 체계에도 균열이 갈 수 있어요.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거죠. 사우디가 중국 화폐인 위안화 등 다른 화폐로 결제하는 걸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중동에서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
중국은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멀어지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어요. 재빨리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작업들에 착수했죠. 가장 상징적인 일이 지난 3월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 것이었어요.

각각 이슬람교의 종파 *시아파와 *수니파를 이끌어 온 이란과 사우디는 몇몇 종교적 사건들로 인해 갈등이 심화하면서 2016년부터는 아예 외교적 관계가 끊어진 상태였어요. 그런데 중국이 양국을 중재해서 7년 만에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도왔죠.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 합의는 중국 베이징에서 이뤄졌어요.

지난달 10일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장(오른쪽)이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이날 사우디와 이란은 중국 베이징에서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사우디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중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 입장에선, 중동의 주요국인 사우디와 미국 사이에 중국이 갑자기 끼어든 게 아주 기분 나쁠 수밖에 없어요. 미국은 오래 전부터 이란과 사이가 좋지 않고 사우디와는 멀어져가고 있는데, 중국은 중동의 주요국인 이란과 사우디 양국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모양새가 됐으니까요.
“여전히 파트너” 사우디 눈치보는 미국
그래서인지 미국 정부는 사우디가 주도한 OPEC+의 기습 감산 결정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도의 언급만 했을 뿐,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비난했던 작년 10월처럼 강한 표현을 쏟아내지는 않았어요.

지난해에 이어 뒤통수를 두 번이나 맞은 셈인데도 “사우디는 지난 80년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전략적인 파트너”라며 “함께 계속 협력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고 발표하는 등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었죠. 경쟁자인 중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여요.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를 자극할 필요는 없잖아요.

다시 치솟기 시작한 기름값과 미국·사우디·중국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그 관계가 이제 좀 정리되셨나요? 80년 가까이 서로에게 이익을 안기며 공고히 다져온 두 나라와, 그사이의 균열을 파고들어 중동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려는 한 나라. 이게 바로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삼각관계라고 볼 수 있어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이 삼각관계, 앞으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매일경제 ‘디그(dig)’팀이 연재하는 ‘뉴스 쉽게보기’는 술술 읽히는 뉴스를 지향합니다. 복잡한 이슈는 정리하고, 어려운 정보는 풀어서 쉽게 전달하겠습니다. 무료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이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디그 구독하기’를 검색하고, 정성껏 쓴 디그의 편지들을 만나보세요. 아래 주소로 접속하셔도 구독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s://www.mk.co.kr/newsletter/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