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중국 없는 공급망 만들겠다"…중국과 반도체 전쟁에 미국이 진심인 이유
안녕하세요. SBS 통일외교팀장 김수형 기자입니다. 저는 서울 정동에 위치한 구 주한 미국 공사관에 나와 있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건물이 지난 1884년 초대 주한 미국 공사였던 루셔스 하우드 푸트가 지은 공사관입니다.
명성황후의 친족이자 조선의 유력가였던 민 씨 일가의 저택 부지를 푸트 공사가 당시 2200달러에 매입해 공사관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건물 바로 뒤에는 나중에 지어진 주미대사관저가 위치해 있습니다. 옛 미국 공사관은 고풍스러운 조선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건물이어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에서 저는 오늘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이제 외교 안보 분야를 넘어 경제 분야까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미중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국의 군사 동맹이자 중국의 경제 파트너인 우리나라는 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하는 걸까요?
미국의 무역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통상 장관, '무역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캐서린 타이 USTR 대표의 단독 인터뷰를 중심으로 심층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보조금 받으면 중국 투자하지 마"…미국 반도체법
하지만 미국 돈을 받으면 중국에 투자하는 게 제한됩니다.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앞으로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돈을 주는 조건도 까다롭습니다. 생산시설의 현금흐름과 이익 등이 나와 있는 재무제표는 기본인 데다,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 가동률, 합격품의 비율을 의미하는 웨이퍼 수율 등 민감한 정보까지 내야 합니다.
그것도 산출 방식을 검증할 수 있는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하게 했습니다. 민감한 영업 기밀을 미국이 무더기로 요구한 것에 대해 우리 업계에서는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캐서린 타이 │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결국에는 기업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업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 (CHIPS and Science Act)에 따라 제공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겁니다. 일부 국가는 자국 기업에만 인센티브와 보조금을 제공합니다.
타이 대표는 이런 우려에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들의 선택에 달린 거라고 선을 그은 겁니다. 그런데 우리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반도체위탁생산 업체인 타이완의 TSMC도 미국의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 조건이 과하다는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TSMC도 보조금을 신청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인 겁니다.
권석준 │ 성균관대 화공과 교수('반도체 삼국지' 저자)
10나노 이하급의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산업은 TSMC가 사실상 거의 독점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이 보기에 가장 가지고 싶어 하고, 가장 약한 고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시스템 파운드리라고 볼 수 있는데 훨씬 더 생산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감내하고 미국에 가야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TSMC가 누려왔었던 수익의 상당 부분이 이제 비용으로 바뀌게 될 것인데 TSMC 입장에서 봤을 때 굉장히 불리한 측면이다.
'생산 기반 무너진 미국'…중국처럼 보조금 뿌리는 이유
캐서린 타이 │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더 넓은 맥락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급망이 교란돼 병목 현상이 발생하면서 컨테이너선이 제대로 도착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심각한 반도체 부족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세계 경제 공급망이 매우 효율적으로 설계됐지만, 매우 회복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산업 기반이 무너져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는데 미국은 마스크도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캐서린 타이 │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우리는 장갑과 마스크 같은 것들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능력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조 기업들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 모아야겠는데, 보조금을 주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통적으로 기업의 자유를 강조하던 미국에서 정부가 나랏돈으로 보조금을 주는 방식은 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중국을 비난하던 미국이 국 비슷한 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겁니다.
캐서린 타이 │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추구해 온 무역 정책이 미국에 상당한 불이익과 일종의 탈산업화를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많은 생산품이 해외에서 생산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반도체는 내줄 수 없다는 위기감
캐서린 타이 │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미국 반도체 지원법 (CHIPS and Science Act)은 미국이 반도체를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다양하게 생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의 일부입니다.
특히 중국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광물질을 틀어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습니다. USTR은 중국의 불공정 행위를 27차례 세계 무역기구 WTO에 제소해 모두 승소했지만, 중국은 잘못을 인정하지도, 시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캐서린 타이 │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우리는 중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중요한 원자재 공급을 지배하는 방식 때문에 지속적인 취약점이 생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을 상대로 승소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WTO 규칙에 반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게다가 반도체에서 우위를 점한 국가는 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패권까지 장악할 수 있게 됐다는 게 미국을 더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캐서린 타이 │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상무부는 특정 유형의 기술과 특정 최종 사용자, 특정 사용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권석준 │ 성균관대 화공과 교수('반도체 삼국지' 저자)
9세대 위치 제어, 자세 제어 칩이 들어간 미사일과 차세대 칩이 들어간 미사일의 명중률이 만약에 100배가 차이가 난다, 그러면 이 반도체라는 것은 전략 미사일 분야에서는 100배의 전략 승수 가치가 있다.
권석준 │ 성균관대 화공과 교수('반도체 삼국지' 저자)
미국이 적절한 시점에서 이러한 중국의 반도체 산업 그리고 기술의 진보 속도를 제어하지 않게 된다면,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정했었는데 그 대부분을 또 중국이 가져간다. 취약성으로 인한 피해를 대부분 미국이 받게 될 것입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무서운 이유
지난 1일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의 세부 규칙이 공개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했다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전기차를 북미에서 최종 조립해야 하는 불리한 조항은 여전하지만, 한국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 방식까지 지금 당장 뜯어고칠 필요는 없는 걸로 발표됐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업들은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 코발트, 흑연 등 핵심 광물 대다수를 중국에서 제련해 수입한 뒤 양극 활물질을 만듭니다. 이걸 미국에 보내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양극판, 음극판을 추가해 자동차 배터리를 완성하는 겁니다.
이번 세부 규칙 발표에서 미국은 양극 활물질은 북미에서 조립해야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배터리 부품으로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한 광물이어도 미국과 FTA를 맺은 우리나라에서 가공해 50% 이상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한 겁니다.
김수형 기자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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