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 한화, '너무 신중한' 공정위
한화, 공정위 결합심사 지연에 '반발'
인수시너지 '골든 타임' 놓칠까 우려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난관에 봉착하다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인수 자금 납입 등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가 끝나지 않아서입니다. 한화 입장에서는 빨리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영업 활동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결합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한화로서는 속이 탈 노릇입니다.
기업결합심사는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뿐만 아니라 해외 정부에서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하는 곳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총 8개국입니다. 튀르키예, 영국, 일본,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유럽연합(EU) 등 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제외한 7개국은 모두 조건 없이 승인한 상태입니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만 아직 결합 승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기업결합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EU 심사도 통과했는데 우리 정부만 아직 답을 내놓지 않고 있으니 한화는 애가 탑니다.
당초 한화는 4월 중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현 상황이라면 계획은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오는 6월에나 기업결합심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조만간 있을 수주전은 물론 하반기에 있을 잠수함 사업 수주 등에서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보여주겠다는 시너지를 낼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셈입니다.
공정위, 이유있는 '신중함'
공정위가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결합 심사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공정위는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달리 산업의 경쟁력보다 독과점 등 경쟁 문제를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부처입니다. 그렇다 보니 함정의 주요 부품 공급처인 한화가 함정을 만드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경우 방산 분야에서 독과점이 될 수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이번 기업결합심사를 깐깐하게 들여다 보는 것은 대우조선해양의 경쟁사에서 우려를 표명해 더욱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실제로 업계 등에 따르면 HD현대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경우 대우조선해양에만 차별적으로 기술 정보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공정위 입장에선 HD현대의 문제 제기도 신중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또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이종(異種)업계 간 기업결합심의 경우 3~4개월이 소요됩니다. 지난 2020년 HDC현대산업개발과 아시아나항공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반면 동종업계 간 기업결합심사는 1년 정도 걸립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심사에는 1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결국 방산을 영위하고 있는 한화를 동종업계로 볼 것이냐 이종업계로 볼 것이냐가 관건입니다.
한화, 이유있는 '반발'
최근 한화는 공정위의 방산 부문 경쟁 제한 우려에 대한 시정 방안 제출 요청에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기업결합심사의 키(Key)를 쥔 공정위에 심사 당사자가 반발하는 상황이 이례적이라는 반응입니다. 그만큼 한화의 반발이 의외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곧 한화가 기업결합심사결과 발표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이번 건에 대해 지나치게 신중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방산 자체에 대한 이해도 부족이 불러온 사태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방산의 경우 고객이 정부입니다. 고객이 지극히 한정적이고 특수한 시장입니다. 따라서 독과점 문제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업계의 생각입니다.
특히 함정 사업의 경우 해군과 방위사업청 등이 함정의 각 부문별로 분리해 발주합니다. 따라서 가격이나 거래 조건에서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입니다. 정부가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인 만큼 계열사 간 상호 정보나 가격 등의 공유가 어렵습니다. 모든 과정을 정부가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담합 등이 일어날 경우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 시장은 매우 폐쇄적이고 특수한 시장"이라며 "민간 기업과의 직접 거래도 정부가 모든 정보를 인지하고 있다.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이 한 팀으로 뛰게 되면 업계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보는 눈이 많은 만큼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은 각종 입찰과 수주 과정을 더 공정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화의 답답함, 그 이면은
그렇다면 한화는 왜 기업결합심사의 키를 쥐고 있는 공정위에 이례적으로 반발하는 것일까요.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따른 '골든 타임'을 놓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가 더뎌질수록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진행하려던 사업은 성과를 내기 어려워집니다.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도 물론입니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완료와 동시에 특수선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과 우선적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한화가 기존에 영위하고 있는 방산과 대우조선해양의 특수선 건조 능력을 결합한다면 더욱 높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 결과에 달려있습니다.
당장 수주전도 열립니다. 오는 5월 8000억원 규모의 호위함 수주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하반기에는 1조원 규모 차세대 잠수함 건조 사업이 예정돼있습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수주 건도 있습니다. 한화 입장에서는 공정위의 조속한 발표가 절실합니다. 키는 공정위가 쥐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궁금해집니다.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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