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재명 재판, '요즘 골프 문화' 등장한 이유는?…"외국 골프장은 달라"
지난달 31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재판이 열린 법정 안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냉랭했습니다. 15년 동지였던 이 대표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피고인석과 증인석, 불과 몇 걸음을 사이에 두고 눈 한 번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9년 9월 대장동 의혹이 불거진 뒤 법정에서의 첫 대면이었죠. '15년 인연'이 '악연'으로 돌아온 이날, 법정의 공기를 <취재파일>을 통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골프장은 아침에 만나서 골프 치고 술 한잔하고 놀다가 후반전치고 같이 나가서 저녁 먹고 술 한잔하고 그러는데 이건 한국 골프장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입니다. 외국 골프장은 술 안 파는 곳도 많고 가서 그냥 골프 치고 운동하면 끝나고 오는 건데요. 그래서 국내 골프장에서 상상하는 그런 긴밀한 접촉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요즘은 친한 사람들끼리 (골프 라운딩) 안 가고 이런 방법으로도 (라운딩 멤버를) 만든다고 하던데…. 조인해서 골프 치면 그때 만나고 끝나는 사이니까 기억을 못 합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측 변호인)
이 대표 재판의 쟁점, 다들 잘 아시겠지만 이 대표가 대장동 사업 담당자였던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알았는지 여부입니다. 유 전 본부장은 이 대표의 측근 중 한 명이었고 과거 이 대표와 김 전 처장의 해외 출장에도 동행한 바 있어 둘의 관계를 입증할 핵심 증인이죠. 유 전 본부장에 대한 본격적인 증인 신문에 앞서 이날 오전 재판에선 검찰과 이 대표 측 간에 팽팽한 설전이 벌어졌는데요. 눈에 띄던 대목 하나를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김 전 처장과 호주·뉴질랜드 출장에서 골프를 치고 함께 찍힌 사진이 여러 개 있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안다'고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다는 이 대표 측. 이날 재판에서는 '요즘의 골프 문화'를 내세우고 나섰습니다. 이 대표 측은 "요즘은 친한 사람들끼리 골프치러 가지 않고 조인해서 (라운딩 멤버를) 만든다고 하던데 조인해서 골프를 같이 치면 그때 만나고 끝나는 사이니까 기억할 수 없다"며 "(해외 출장에서 골프를 친 지) 7년이나 지났는데 이걸 누구랑 쳤지 기억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 라운딩 문화와 해외 라운딩 문화는 전혀 다르다는 주장도 펼쳤는데요. 이 대표 측은 "한국 골프장에서는 아침에 만나서 골프치고, 술도 한잔하고 후반전치고 씻고 같이 저녁도 먹고 술도 먹고 하지만 외국 골프장은 술을 안 파는 곳도 많고 그냥 골프치고 운동하고 끝나면 오는 것"이라며 "국내 골프장에서 상상하는 긴밀한 접촉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장에 동행해 함께 골프를 쳤다는 이유만으로 '김 전 처장을 알지 못했다'는 말을 허위로 단정할 수 없다는 거죠.
"저도 제 처와 관계 좋은 편인데요. 그런데 처와 찍은 사진을 보면 촬영 기사가 강제 강요한 웨딩 사진 외엔 서로 눈을 마주치거나 대화하는 사진이 없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그런 (눈 맞춤) 장면이 없다고 친분 교류가 없다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눈을 마주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두 사람이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찍은 사진도 존재합니다." (검찰 측)
이 대표 측은 김 전 처장과 이 대표가 다녀온 출장을 '패키지여행'에 비유하기도 했는데요. "매일 같은 차로 이동하고 식사했다고 친한 건 아니지 않냐"고 말입니다. 검찰이 지난 재판에서 제출한 사진과 영상을 보면 두 사람이 대화하거나 눈 맞추는 장면도 없다며 같은 프레임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아는 사이다, 모를 수 없는 사이다'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거죠.
한때 '주군'으로 모셨다지만…재판 내내 "이재명 씨"
검찰과 이 대표 측의 치열한 기 싸움이 끝나고 오후 재판에선 본격적인 증인 신문이 시작됐습니다. 이 대표 재판의 첫 증인인 유 전 본부장. 유 전 본부장이 법정에 들어서자 이 대표는 고개를 들어 유 전 본부장 쪽을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유 전 본부장은 정면을 바라보며 이 대표가 앉아있던 피고인석을 지나쳐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한때 자신이 '주군'으로 모셨다던 이 대표를 재판 내내 '이재명 씨'로 지칭하며 이 대표에 불리한 증언을 쏟아냈습니다.
앞서 논박이 오갔던 해외 출장 관련 증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당시 이 대표 출장에 동행할 해외 출장자를 다른 공사 직원에서 김 전 처장으로 갑자기 교체한 경위부터 설명했는데요. 정진상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시장이 편히 여길 사람을 데려가라'고 지시해 김 전 처장을 출장자로 교체했다는 겁니다. 그는 "(정 전 실장이) 이재명 씨가 아무래도 불편해할 거 같으니 친한 사람을 데려오라고 해서 참석자를 김 전 처장으로 변경했다"며 출발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회상했습니다.
이 대표가 김 전 처장과 함께 골프를 칠 거란 사실도 미리 알았다고 주장했는데요. 생소한 사람이었다면 누구냐고 물었을 텐데 이 대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김 전 처장이 당시 골프장에서 2명만 탑승할 수 있는 카트를 몰아 이 대표를 밀착 보좌했고, 김 전 처장과 이 대표가 함께 요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했다는 증언도 했는데요. 당시 요트 대여료로 3,000달러를 냈고 바다낚시에는 이 대표와 이 대표 비서 그리고 김 전 처장 세 명만 함께 했는데 이 대표가 참돔을 잡았었다며 구체적 기억을 풀어냈습니다. 함께 골프를 치고 바다낚시까지 다녀온 사이인데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몰랐을 리 없다는 거죠. 반면 이 대표 측은 성남 시장 시절 해외 출장만 16차례 있었고 출장 때마다 성남시 공무원 10여 명이 갔는데 김 전 처장을 기억할 수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김 전 처장과 이 대표가 성남 시장 재직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지난 2010년 분당 리모델링 설명회에서 김 전 처장으로부터 당시 성남 시장 후보였던 이 대표와 통화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겁니다. 유 전 본부장은 "당시 이재명 씨와 김 전 처장 모두 참석한 걸로 알고 있다"며 "김 전 처장에게 이재명 씨가 온다고 하자 김 전 처장이 '자신도 통화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2009년 자신이 공동대표이던 성남정책연구원 주최 세미나에 이 대표와 김 전 처장 모두 참석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당시 성남의 한 아파트 리모델링 추진위원장이었고, 김 전 처장은 건설사에서 리모델링 관련 영업 부장을 맡고 있어 인연을 맺었습니다.
다음 재판도 유동규 증인 신문…이재명, 직접 문답할까
하정연 기자ha@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