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인플레, 신뢰 깨진 연준[이슈한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둘러싼 ‘신뢰의 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연준의 정책 오판·소통 실패를 매섭게 파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급등하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잡겠다고 뒤늦게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려 세계 주식·부동산 시장 등 경제에 부정적 파급효과를 일으킨 ‘진앙’이라는 지적이 거세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너무 미시적으로 본다는 진단도 나온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발(發) 금융 불안정성·경기침체 가능성도 세계 경제 ‘콘트롤 타워’인 연준이 시장의 눈치를 보고 기준 금리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연준의 금리 결정을 바라만 봐야 하는 한국 경제로선 답답한 노릇이다.
‘푸틴 인플레이션’ 바로보기
주요국 기준금리 인상의 방아쇠를 당긴 인플레이션 상황을 보면, 미국은 지난 2월 현재 6%(연율)다. 올해 전체로는 3.5%를 전망한다. 유로존의 올해 인플레이션율 예상치는 5.6%다. 최근 몇 년과 비교했을 땐 수그러든 것이지만, 여전히 높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에 에너지 가격이 올랐고,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됐는데 올해엔 에너지 가격이 안정화해 ‘푸틴 인플레이션’이 줄어들 거라는 분석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완결무결하진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전인 2021년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4.7%였다. 연준이 목표로 삼는 2%보다 훨씬 높았다. 유럽은 같은 해 하반기부터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했다. 에너지 가격은 전쟁 전부터 크게 상승했기 때문에 ‘고(高)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전쟁에서만 찾는 건 단편적일 수 있다.
라르스 펠트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교수(경제학)는 인플레이션이 2차 효과 때문에 지속된다고 분석했다. 생산자 물가가 크게 올랐고, 명목임금이 인상돼 이런 비용을 고객에 전가하려는 기업의 움직임이 인플레이션을 높게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 터널에서 경제가 주저앉는 걸 막으려고 각국 정부가 빚을 내(국채 발행) 천문학적인 돈을 뿌리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이를 지원하기 위해 개입한 점이 고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고 봤다.
“정부가 빚 못 갚을 것 같으면 인플레 발생”
지난해 연준 부의장을 그만 둔 리처드 클라리다는 최근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에 낸 글에서 ‘물가수준에 대한 재정이론(fiscal Theory of the price level)’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존 코크레인 후버연구소 선임 펠로우는 지난달 내놓은 같은 이름의 책에서 가격(물가)은 정부 부채의 실질 가치가 지출을 뺀 세금의 현재 가치와 같아지도록 조정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정부가 부채를 완전히 갚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코크레인은 주장했고, 이 의견은 각광을 받고 있다.
클라리다 전 부의장은 2020년 이후 6조달러의 팬데믹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발행된 미 정부 부채의 엄청난 증가는 연준이 원하는 인플레이션율을 달성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라르스 펠트 교수는 이같은 상황 전개를 두고 ▷인플레이션은 거시 경제현상이기에 에너지 가격 등 특정 요소만 보는 건 불충분하고 ▷고 인플레이션은 적은 상품·서비스에 너무 많은 돈을 몰린 결과여서 더 지속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인플레이션에 대처하려면 통화정책이 제약적이어야 하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상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계 경제서 가장 중요한 기관, 길을 잃다
미국 월가의 대표 경제학자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기고 전문매체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올린 글에서 연준의 신뢰성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연준이 금리와 관련해 내놓는 ‘포워드가이던스(사전 안내)’를 시장이 무시하고 있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엔 시장 변동성이 전임자보다 3배 이상 높다는 등의 정황을 대면서다. 연준은 2021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판단을 고집했고, 뒤늦게 이를 오판으로 봤지만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다 작년 6월 이후 4차례 연속 0.75%포인트 금리를 올려 파장을 일으켰다고 그는 지적했다.
엘 에리언은 연준의 구조적 결함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연준의 집단사고(groupthink)를 첫번째 문제로 꼽았다. 관점의 다양성과 포괄적인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두 명의 독립적인 외부 투표 위원을 추가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연준 의장이 1년에 두 차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는 관행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언에 앞서 해당 분야 전문가가 의회에 보고하는 다른 실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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