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식물에게 새 가족을…‘식물유치원’의 경험을 나눕니다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이사를 와서 동네 산책을 하러 나갔는데, 걷다 보니까 공사장 같은 데가 있더라고요. 재개발 단지였어요. 뉴스에서만 보던 곳이 우리 집 바로 옆에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죠. 가서 보니까 의자를 비롯해 쓰던 가구가 버려져 있어서 몇 개 주워 왔어요. 이 의자도 그때 갖고 온 것인데요. 지금까지 잘 쓰고 있어요. 그런데 보니까, 식물이 엄청 많이 자라고 있는 거예요."
지난 2021년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으로 이사를 온 백수혜 씨는 마을 구경을 나갔다가 집 근처에 있던 재개발 단지를 접하게 됐습니다. 공사를 앞두고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들풀이 무성한 곳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골목 곳곳에는, 버려진 식물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여기 버려져 있는 식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문득 궁금증이 일었어요. 쓰레기는 당연히 매립지 같은 곳으로 보내지겠지만, 그러면 식물도 그냥 쓰레기장에 가게 되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잘 키우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데려와서, 소생시켜서 데리고 있어 보자 싶었고요. 시작하게 됐습니다."
백수혜 씨는 알로카시아를 비롯해 재개발 단지에 버려져 있던 갖가지 식물을 집으로 가져와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식물이 하나, 둘, 늘어났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분양에 나섰습니다. 버려진 식물을 내가 키워보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버림받은' 식물을 살려내고, 키워내고, 나눠준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백수혜 씨는 세상에는 자신처럼 식물을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습니다. '유기식물 구조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식물유치원의 탄생부터 운영, 성장까지, 그간 있었던 일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냈습니다. 책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죠.
아이들의 까르륵 웃는 소리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듯이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분양받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공덕동 식물유치원'으로 이름을 정했다.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 p30
취재진은 식목일인 지난 5일, 저자인 백수혜 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백 씨는 사람이 떠난 재개발 단지에는 간간이 버려진 식물만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가보면 오히려 진짜 자연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사람이 떠나간 재개발 단지에 가보면, 약간 다른 세계에 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고요해요. 식물이랑 동물만 있어서 일견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또 보면 되게 잘 지낸다,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넝쿨도 잘 자라고 있고, 온갖 들풀도 잘 자라고 있고, 이런 모습이 진짜 자연이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마치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과 숲속의 나무와 풀을 보는 것처럼, 사람 떠난 재개발 단지는 하나의 작은 자연 같아 보이기도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던 것이죠. 눈여겨보면, 그 사이사이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화분이나 돌봐주는 손길을 잃어버린 여러 식물이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이들 식물을 가져와서 다른 사람이랑 나눌 생각은 못 하고, 내가 그냥 잘 키워야지 했어요. 하지만 너무 많은 거예요. 정말 많이 '구조'했거든요. 그때가 2021년 여름이었는데, 날씨도 좋고 생육도 잘 되고 식물 덕으로 마당이 다 초록빛으로 물드는 건 좋았지만, 너무 많아져서 관심 있는 사람 있으면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트위터를 통해 식물 분양을 하게 됐습니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로 시작한 온라인 활동이 계속됐고, 이는 오프라인 모임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얼마쯤 지나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용기를 내 식물 스터디 모임을 개설하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모집하려고 보니 온라인 친구를 오프라인에서 만나도 될지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몇몇 분이 함께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우리는 이제 매주 만나 그간 접한 식물 관련 책이나 영화, 다큐멘터리 등에서 얻은 정보를 교환하고, 씨앗이나 식물, 과일과 책까지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 p32
버려진 식물을 구해와서 키워내고 분양까지 한 백수혜 씨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지역 등에서 누군가가 버린 식물을 집으로 가져와서 키우는 것이 힘든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얘기합니다.
혹여나 식물을 구조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방법을 공유해드릴게요.
· 버려진 식물인지 확인합니다. 주인이 있는 식물일 수 있으니 확인 필수!
· 손이나 작은 삽으로 뿌리 주변의 흙을 살살 팝니다. 목장갑을 끼면 더 좋아요.
· 식물의 뿌리를 캐내자마자 물에 젖은 키친타월 혹은 손수건으로 감쌉니다. 촉촉하게 유지해야 해요.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 p201
다만, 식물을 키운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면 주의할 점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길에 방치된 화분을 갖고 오거나 할 때는, 진딧물이나 벌레도 같이 따라올 수 있어요. 간단히 방역해주시면 좋고요. 꼭 농약이 아니더라도 샤워기로 물만 뿌려도 벌레들이 많이 사라지고 하더라고요. 흙 상태가 어떤지도 한번 봐주시는 게 좋고요. 그리고 너무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가짐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길에 버려져 있는 식물을 가져오면 처음에는 아무래도 시들시들한 느낌이 날 때가 많은데, 잘 돌본다고 해서 이들 식물이 바로 생기가 넘치는 것은 아니거든요. 조금 여유를 갖고 지켜보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백수혜 씨는 길에 버려져 있는 식물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기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초보 '집사'에게 한 가지 종류를 추천한다면 장미허브를 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식물을 길러본 경험이 적어서 걱정된다', 그런 얘기하시는 분에게는 장미허브를 추천해 드리고는 합니다. 장미허브는 잘 자라고요. 향기도 좋아요. 그러니 나중에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좋고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이어서, 장미허브를 키우는 것을 추천하고는 해요."
그러면서 식물 키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울 때처럼 여기에도 책임감이 따른다고 말했습니다. 식물마다 특성이나 개성이 있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식물을 키우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바람을 특히나 좋아하는 식물이 있는데, 통풍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물만 많이 주는 식으로 돌보게 되면 식물의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예를 들었습니다. 식물 '집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나름의 준비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현장에 버려져 있는 식물을 많이 봐온 백수혜 씨는 이 문제와 관련해 아이디어도 내놓았습니다. 개발로 인해 살던 집을 떠나거나 비우게 될 때 쓰던 물건을 내놓는 벼룩시장이 열리고는 하는데, 식물 벼룩시장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식물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게 됩니다. 백수혜 씨는 버려진 식물을 가져와 키우고 이를 나눠주면서, 식물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식물을 키우게 돼서 좋은 점은 자연이 굉장히 가까이 있다고 느낄 수 있고,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면 또 굉장히 뿌듯하고, 이 모습을 항상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
백수혜 지음 /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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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in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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