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브런치'의 모든 것[이용재의 식사(食史)]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2005년, 처음으로 브런치라는 걸 먹었다. 장소는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맨해튼의 한 카페였다. 브런치가 뭔지도 잘 몰랐던 터라 머뭇거리다 칠면조 햄을 넣은 오믈렛을 골랐고, 나는 이후 오래 후회했다. 프렌치토스트나 팬케이크, 에그 베네딕트 등 쟁쟁한 메뉴를 두고 하필 평범하디 평범한 오믈렛이라니.
그리고 약 20년, 브런치는 이제 하나의 장르이며 세계적인 현상이다. 원래 일요일의 식사였지만 이제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 오늘도 인스타그램에 딱 보기 좋은 사진으로 남길 기다리는 브런치는 대체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또한 앞서 언급한 것 같은 대표 메뉴들, 즉 프렌치토스트나 팬케이크, 에그 베네딕트에 블러디메리나 미모사 같은 음료는 각각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 식탁에서 화젯거리로 삼기 좋은 브런치의 총사를 살펴보자.
브런치의 역사
어쩔 수 없이 동어반복을 해야 한다. 많은 음식이 그렇듯 브런치의 기원도 딱 꼬집어 이것이라고 특정하기 어렵다고 말이다. 스미소니언 매거진 등의 매체에 의하면, 브런치의 기원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영국 기원설이다. 닭간부터 계란, 각종 육류, 베이컨, 생과일과 디저트 등 여러 코스로 나뉜 영국의 사냥 전 아침 식사가 오늘날 브런치의 원형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가톨릭 기원설이다. 가톨릭 신자는 미사의 절정인 성찬식을 위해 금식을 해야 하니 아침을 건너뛰어야 한다. 그래서 미사 후 점심쯤 거의 두 끼분에 가까운 식사를 한 것이 브런치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미국, 그것도 뉴욕 기원설이 있다. 맨해튼의 어퍼웨스트사이드와 인접 지역의 레스토랑에서 오늘날 통상적이라 여기는 각종 브런치 메뉴를 내놓은 게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음식에서 원조 논쟁이 그렇듯 단일 주체가 브런치라는 형식을 창안해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일요일에 종교적인 의무가 없는 유대인들이 베이글과 훈제연어 같은 전통 음식으로 차린 느긋한 아침 식사가 브런치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맨해튼 브런치의 명소인 '사라베스(Sarabeth)'의 소유주 사라베스 레빈이 창시자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에는 꼬리표처럼 '토요일 밤 클럽에서 질펀하게 놀고 난 다음 날 먹는 식사'로서의 브런치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이처럼 브런치의 기원은 특정하기 다소 애매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브런치(Brunch)'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이라는 것이다. 잘 알려졌듯 아침(Breakfast)과 점심(lunch)의 합성어인 브런치는 1895년 영국의 '헌터스 위클리(Hunter’s Weekly)'에 처음 등장했다. 작가 가이 베린저가 미사 혹은 예배 뒤 가능하면 식사를 가볍게 하자는 주장을 펼치며 등장했다. 그런 가운데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브런치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건 1930년대이다. 미국의 동서부를 오가는 기차가 시카고에 정차할 때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먹은 아침 식사가 브런치라는 형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후 일요일 오전 교회에 가는 미국인의 수가 줄어들면서 그 시각 즐길 수 있는 식사인 브런치가 힘을 받게 되었다.
당시의 브런치는 지금의 것과 많이 달랐다.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앉아 먹어야 하는, 정찬에 가까운 긴 코스로 이루어졌으며 메뉴도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들이었다. '사우어크라우트(독일의 발효 양배추 절임) 주스'나 '조개 칵테일', '마데이라 와인에 익힌 닭간 오믈렛' 같은 메뉴는 아무리 생각해도 식욕을 잠에서 깨울 만한 능력을 갖췄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경향은 1940년대를 넘어 1950년대까지 지속되다가 1960년대에 이르러 좀 더 캐주얼한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후 브런치의 역사는 각 대표 메뉴와 함께 살펴보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에그 베네딕트
잉글리시 머핀 위에 캐네디언 베이컨과 수란을 얹고 홀랜다이즈 소스를 끼얹어 마무리하는 에그 베네딕트에는 두 가지 기원설이 있다. 일단 뉴욕 로어맨해튼의 레스토랑 델모니코가 원조라고 주장한다. 1860년부터 만들어 왔으며, 셰프 찰스 랜호퍼가 1894년 '에그 아 라 베네딕(Eggs à la Benedick)'의 레시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1942년 주식중개인인 레무엘 베네딕트가 죽기 직전 자신이 고안한 음식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뉴요커' 지의 인터뷰에 의하면 1894년, 베네딕트가 유명한 월돌프 호텔에서 해장을 위해 '버터 바른 토스트에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수란, 홀랜다이즈 소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당시 호텔만큼이나 유명했던 지배인 오스카 처키(월돌프 샐러드를 고안한 장본인)가 이를 조금 바꾼 게 오늘날의 에그 베네딕트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베이컨 대신 연어를 쓰면 에그 애틀란틱, 스테이크를 쓰면 에그 오마르가 되는 등 브런치의 대표 메뉴답게 응용 메뉴도 다양하다.
팬케이크
지역에 따라 핫케이크, 그리들케이크, 그리고 플랩잭(flapjack)이라고도 불리는 팬케이크는 즉석빵(quickbread)의 일종이다. 붙박이 브런치 메뉴로서 팬케이크는 밀가루와 계란, 버터밀크(크림에서 버터를 분리하고 남은 신맛의 액체)에 베이킹소다와 같은 화학팽창제를 더한 묽은 반죽을 부쳐낸 것이다. 납작한 즉석빵은 세계 어디에서나 만들어 먹었으니 그 역사가 구석기시대(기원전 7000~17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운데, 오늘날과 같은 미국식 팬케이크는 대략 1800년대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우유나 크림 같은 유제품을 반죽의 액체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팬케이크는 1870년대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1880년대에는 메이플시럽이 단짝으로 가세했다.
굳이 미국식 팬케이크가 아니더라도 브런치 메뉴로서 납작빵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프랑스의 크레페이다. 미국식 팬케이크보다 더 묽은 반죽에 팽창제를 아예 쓰지 않는 크레페는 얇게 부쳐냄으로써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한편 미국식 팬케이크보다 더 폭신하고 높게 부풀어 오르는 수플레 팬케이크도 있다. 팬케이크의 주재료인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다음 흰자를 거품기로 휘저어 공기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머랭을 반죽에 더해 만드는 수플레 팬케이크는 일본이 원조 같지만 사실은 하와이이다. 1974년 일본계 미국인 젠과 제리 후쿠나가가 처음 고안한 뒤 2010년대에 일본으로 전파됐다.
프렌치토스트
빵을 계란물에 담가 지지는 음식의 역사는 적어도 기원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의 요리책 '아피키우스'에 레시피가 기록되어 있으니 오늘날의 프렌치토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후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에서 14세기에 만들어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유명한 프랑스의 요리사 타유방(Taillevent)의 레시피로도 남아 있다. 원래 하루 묵어 마른 빵으로 만들었기에 프랑스에서는 '잃어버린 빵(Pain Perdu)'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중반에 기차 식당칸의 메뉴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와플
팬케이크와 프렌치토스트의 중간 격이라 할 수 있는 와플은 메이플시럽 등의 소스가 고이는 격자무늬가 특징이다. 네덜란드어 '바플(wafel)'이 영어로 자리 잡은 와플의 기록은 172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와플은 크게 발효 반죽과 즉석 반죽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브뤼셀과 리에주, 즉 벨기에가 원조이다. 리에주식은 효모로 발효된 반죽을 구워 만드는데 18세기에 고안되었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더군다나 주 재료인 알갱이 설탕(펄 슈가)이 18세기에 존재했다는 근거도 없어 말 그대로 믿기 어렵다. 실제로 리에주식 와플의 레시피는 1921년이 돼서야 처음 등장했다. 한편 베이킹파우더로 부풀리는, 즉석빵에 속하는 미국식 와플은 팬케이크와 흡사한 묽은 반죽을 구워 만든다. 특히 미국 남부에는 와플을 치킨에 올려 먹는 '치킨 앤 와플' 문화가 있다.
블러디메리
전날 얻은 숙취를 달래기 위해 브런치에는 칵테일의 자리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블러디메리이다. 파리 소재 뉴욕 바의 바텐더 페르낭 프티오가 1921년 처음으로 만들었고, 당시 이름은 피 한 양동이(Bucket of Blood)라고 한다. 물론 현재의 명칭은 성공회와 청교도를 탄압했다는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로부터 따온 것이다. 보드카와 토마토주스, 레몬즙 3:6:1의 비율에 우스터소스 두세 방울, 타바스코 핫소스, 셀러리소금, 후추를 더해 저어 만든다.
미모사
미모사꽃처럼 노란색이라고 해서 이름 붙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의하면 마운트배튼 제독이 남프랑스 방문 때 처음 접하고 권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마시게 되었고, 이후 브런치 음료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동량의 오렌지주스와 샴페인을 더해 만든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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