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산림 양극화의 역설, '산불의 습격'
지난 5일, 식목일에는 비가 내렸다. 사흘간 전국 53건의 동시다발 산불을 잠재운 단비였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란 말을 하기에는 화마(火魔)가 지나간 자리가 너무 참혹했다. 충남 홍성 산불이 유독 컸다. 정확한 피해는 여전히 조사 중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 면적은 1,454ha(헥타르), 가축 10만 마리 정도가 폐사했고 2백 곳 가까운 시설물이 잿더미가 됐다.
사실 도시 사람들은 산불의 무서움을 잘 알지 못한다. 뉴스로 보는 게 전부다. 큰 산불 소식은 늘 톱뉴스로 다뤄지지만, 불 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별 일 없이 지나간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산불 문제는 심각하다. 올해 3월까지 발생한 산불은 342건. 역대 최악이라 불렸던 지난해 301건 보다 많았다.
도시 사람들의 편의적인 생각은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를 연상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기후 변화로 봄이 유독 건조해지면서 나무는 메말랐고, 산을 훨씬 잘 타게 만들었다. 도시 언론은 이런 생각들을 반영한다. 이맘때쯤이면 산불 통계, 기후 변화 실태와 같은 데이터 파편을 긁어모아 꽤 괜찮은 기획 기사를 출고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파편화된 뉴스가 아닌, 이슈의 맥락을 읽어 내는 <뉴스쉽>에서는,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서 지금껏 소환되지 않았던 도시의 욕망을 마주해보려고 한다.
과연 우리 산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정확히는, 우리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근 10년 5,610건의 산불 전수 분석
역대 최악의 산불은 지난해 3월에 있었다. 경북 울진 산불은 피해 면적만 1만 6,302ha,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달했다. 강원 강릉 산불과 경남 합천 산불까지, 지난해는 1986년 산불 통계 집계 이후 산불 피해 규모가 가장 큰 해로 기록됐다.
그렇다면, 이는 통계적 '이상치'일까 아니면 '추세'일까. <뉴스쉽>은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동안의 산불 데이터를 한 데 모아 점으로 나타내 봤다. 총 5,610건의 산불이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최근이고, 위로 갈수록 큰 산불이다. 산불 피해 규모는 워낙 편차가 커서 0~10ha, 10~100ha, 100~1,000ha를 같은 크기로 나타냈다.
최근을 뜻하는 오른쪽 부분에 큰 피해를 준 산불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구체적 데이터로 다시 정리했다. 일반적으로 100ha 이상 피해를 주는 산불이 '대형 산불'로 분류된다. 최근 10년 100ha 이상 피해를 준 산불의 횟수다.
불과 10년 새, 대형 산불이 잦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20년 치 데이터로 외연을 넓혔다. 좀 더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취지다. 먼저 산불 횟수다.
추세선은 우상향이다. 전체적으로 증가 추세임을 나타낸다.
다음으로 산불 한 건 당 피해규모 평균을 계산해 그 추이를 살폈다. 총 피해규모를 횟수로 나누는 식이다.
다만, 1000ha 이상 피해를 준 초대형 산불은 통계적 이상치로 보고 제외했다. 가령, 지난해 울진 산불과 강릉 산불의 피해 규모는 각각 16,302ha와 4,190ha로 전체 평균치를 워낙 높여놨다. 이는 전체적인 추세를 분석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역시 추세선은 우상향 하고 있다. 불과 10~20년의 지표로도 산불의 평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불은 확실히 잦아지고 있고, 지독해지고 있다.
하지만, 산불 원인은 연도별 큰 차이가 없었다. 최근 10년, 산불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입산자 실화 34%, 쓰레기 소각 8%, 담뱃불 실화와 주택 화재 비화가 각각 7%였다. 한국의 산불은 대부분 사람 때문에 생긴다. 하지만 10년 새 사람이 더 사악해진 것도 아닐 것이다.
산림도 양극화되고 있다
도시는 더 높고, 더 넓은 개발을 원한다. 도시의 욕망은 고층 건물을 올렸고, 아파트 단지로 뻗어나갔다. 자연히 산림을 침범하며 세를 불렸고, 그렇게 산림은 도시가 됐다. 개발의 시대, 이른바 '산지 활용도'를 높이는 정책들이 앞다퉈 나왔다.
데이터 관점에서 보면 '산림면적 통계'가 그 욕망의 추이를 보여준다. 산림 면적은 우하향,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도시는 자연을 욕망했다. 숲이 더 울창해지기를 원했다. 잠시나마 도시에서 벗어나 나뭇잎 사이 스며드는 볕 아래 텐트를 치며 자연을 누리길 좋아했다. '산림욕'은 유행처럼 번졌다. 그렇게 도시는 지역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 담론은 나무가 많아져야 할 명분까지 제공했다.
데이터 관점에서 보면 '임목축적 통계'가 도시의 또 다른 욕망을 방증한다. 임목 축적은 산지에 뿌리를 박고 생육하고 있는 모든 나무의 부피를 뜻한다. 2005년과 2015년, 임목축적은 5억 600만㎥에서 10억 3800만㎥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그렇게 숲은 더욱 무성해졌고, 앞으로도 더욱 무성해질 예정이다. 2020년 정부는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산림을 통해 탄소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했다. 30년간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산림은 서서히 비좁아졌지만, 나무는 급속히 빼곡해졌다. 이제 산림마저 양극화되고 있다. 나무와 나무는 더욱 가깝게 이웃했고, 이파리는 함께 뒤엉켰으며, 낙엽은 한데 모이며 높게 쌓였다. 화마에 이 보다 좋은 연료는 없었다. 누군가 던진 나무꽁초에 낙엽이 탔고, 눈 깜짝할 새 나무줄기로 옮겨 붙었으며, 금세 다른 나무로 번져나가며 대형 산불이 됐다. 양극화된 산림은 크고 독해진 산불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더 넓고 더 높은 개발을 위해 산림을 침범했던 도시의 욕망, 그 맞은편에는 울창한 산림으로 여가를 꿈꿨던 또 다른 욕망의 문양이 공존하고 있다. 상반된 두 욕망은 거울상(像)이었다.
산불의 책임을 온전히 지구 온난화로 찾는 일련의 화법들은 이런 까닭에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간결하고 세련돼 보이는 진상 규명은 도시 언론이 글로 풀어내기 참 좋지만, 구체적일 수 있는 도시의 책임을 공동체 모두의 책임으로 뭉뚱 거리며 추상화시키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아니다. 나무가 밀집해 금세 번지니 그만 심자고 하는 건, 교통사고가 급증하니 차를 없애자는 말처럼 어리석은 말이다. 여전히 나무는 부족하다. 나무는 많아져야 한다.
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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